소니가 몰락하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과 혁신의 상징이던 소니는 최근 주력 사업이던 PC사업을 매각하고 TV사업을 분사하기로 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최근 소니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정크)으로 강등시켰다.

소니는 지난해 100억엔(약 1조17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TV사업부는 지난 10년간 총 75억달러(약8조9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소니는 구조조정을 통해 5000명을 감축하기로 하는 등 자구책도 내놓았다. 일본 TV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맏형 소니가 무너진 이유는 뭘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외신은 ‘사일로(Silo)’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사일로는 곡식을 저장하는 첨탑형 창고. 탑처럼 높은 조직 간 경계를 허물지 못했던 게 소니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독립채산제가 '사일로'로 변질

소니의 사일로를 만든 건 1994년 도입한 독립채산제다. 독립채산제는 사내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와 달리 부서 내 이윤을 독점하려는 풍토를 키우며 기술 공유를 어렵게 했다. 내부 정치 싸움은 심해졌고, 수익은 쪼그라들었다.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도 소니의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소니는 1968년 트리니트론(Trinitron) 방식의 브라운관을 개발, 세계 TV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 1개의 전자총으로부터 3개의 전자빔을 내는 방식으로, 기존의 브라운관보다 화질이 훨씬 좋았다. 이 기술로 브라운관 TV의 원조인 미국 RCA를 무너뜨렸다. 소니는 1996년 평면 브라운관을 개발해 또 한 번 시장을 흔들었다. 하지만 성공이 독이 됐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경쟁사들이 빠르게 LCD TV로 전환하며 도전장을 내미는 상황에서도 소니는 평면 브라운관을 고집했다. 소니는 2000년대에 브라운관의 퇴조를 인정하고 뒤늦게 방향을 전환했다. 음악 사업도 비슷했다. 소니는 1955년 업계 최초의 트랜지스터형 라디오를 내놨다. 이어 1979년 세계적인 인기 상품인 ‘워크맨’을 출시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났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워크맨을 대체할 MP3 플레이어가 등장했을 때에도 소니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소니가 내놓은 MP3 플레이어는 독자적인 방식의 파일만 재생이 가능했다. 결국 애플이 개방형 소프트웨어 아이튠스를 앞세운 ‘아이팟’이 나오면서 소니의 MP3는 ‘추억 속 낡은 기계‘로 전락했다.

#문어발식 확장의 쓴맛

다급해진 소니는 사업 확장에만 급급했다. 단기 경영 이익을 내려고 사업을 무리하게 다각화했다. 1995년 CEO에 취임한 이데이 노부유키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강한 회사를 목표로 ‘소니 재창업’을 선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미국 콜럼비아픽처스와 유니버설스튜디오 인수에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투입된 자금이 선순환되지 못했고, 재무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자금 압박은 연구개발(R&D) 투자 축소로 이어졌다. 소니의 자부심이던 ‘기술력’도 이제 빛이 바랜 것이다. 소니가 지난 3년간 R&D에 쓴 돈은 4~5조원 정도로 같은 기간 삼성전자(11~12조원)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또 ‘글로벌 소니’를 외치며 미국식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사업 부문을 25개 회사로 분리한 것도 실패의 원인다. 경영진이 단기 성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강화하자 기술자들이 “소니는 더 이상 기술회사가 아니다”며 대거 이직하기도 했다. 소니는 TV 시장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후에도 기술자 출신이 아니라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가인 하워드 스트링어를 2005년 CEO로 선임했다. 스트링어 회장은 기술직 직원들과 계속 충돌했다. 소니 기술의 핵심인 A3연구소를 2008년 해체시켰다. A3연구소 해체는 단순히 연구소 폐쇄가 아니라 소니의 기술 노하우가 외부로 모두 유출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회생 카드는 스마트폰

[Global Issue]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소니…스마트폰이 돌파구 될까?
2012년 CEO에 취임한 히라이 가즈오 사장은 지난 6일 “향후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니는 애플은 물론 삼성전자보다 스마트폰 대응이 늦어 일본 시장에서도 아이폰에 크게 밀리고 있다. 소니 스마트폰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3.5%로 세계 7위에 불과하다. 이미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과 애플이라는 양대산맥이 장악하고 있고,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소니가 적자 탈출에 혈안이 돼 스마트폰 이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성장세 둔화가 예고되고 있다. 소니의 구조조정 방안에도 이미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개인용 PC 부문 매각도 선제적 구조조정이라기보다는 수익성 확보를 위한 자산 매각 방식의 구조조정이라는 평가다. 소니가 결국 제조업을 포기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온다. 소니는 2013년 4~12월 결산에서 금융(1330억엔)과 음악(422억엔)에서만 큰 흑자를 냈고 제조업은 대부분 적자였다.

파나소닉은 '부활 신호탄'…백색가전 과감한 포기

소니, 도시바와 함께 일본 TV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파나소닉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있다. 파나소닉의 지난해 3분기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20% 급증한 737억엔(약 791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166억엔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3배, 시장 전망치의 2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파나소닉이 과거 영광의 상징이었던 플라즈마TV 등 백색가전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동차, 태양광 패널, 기내 영상장비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틈새 비즈니스에 투자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올해 2년째 임기를 맞은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은 수익성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경쟁에서 크게 밀린 스마트폰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반도체 제조공장의 지분을 이스라엘 업체에 매각했다.

PDP TV 사업도 철수했다. 대신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와 건설사업, 태양광 패널 등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했다. 이미 지난해 9월까지 파나소닉 전체 매출에서 TV와 디지털카메라, 백색가전 등 기존 주력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그쳤다. 반면 태양광 패널과 리튬이온 배터리, 자동차 부품 등의 비중은 약 60%에 달했다.

현재 파나소닉은 ‘배터리업계의 다크호스’로 불리며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사인 미국 테슬라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2016년까지 설비투자를 포함, 자동차 부품 분야에 1200억엔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 파나소닉의 자동차 부문 매출은 1조엔으로 2009년(5700억엔)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과거의 유산이라고 다 버린 것은 아니다. 쓰가 사장은 1989년 작고한시타 고노스케 회장이 도입했던 ‘사업부제’를 12년 만인 지난해 부활시켰다.

김보라 한국경제신문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