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한국사 학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대입 수능 시험에서도 한국사는 필수과목으로 지정될 정도이다. 생글생글은 사회의 역사 학습 분위기에 발맞추어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시리즈를 싣는다. <경제학자의 한국사>는 정치 사회 사건 중심으로 기술된 기존 역사서와 달리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역사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김재호 교수는 현재 경제사학회 편집위원으로서 경제사학자들의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하는 일을 책임지고 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총 34회 중 1~17회)

1. 왜 한국경제사인가?
2. 한국경제를 보는 눈
3. 한국경제사의 흐름: 시대구분
4. 선사시대: 농업의 시작
5. 고대국가의 경제와 재정
6. 우리나라에 노예제시대가 있었는가?
7. 고대의 교역과 화폐
8. 우리나라 중세는 서양의 중세와 어떻게 다른가?
9. 고려시대의 재정과 경제
10. 조선 건국의 의미: 단절과 연속?
11. 조선시대의 인구변동: 장기순환
12. 중세 농업의 발전방향: 소농경영을 향하여
13. 중세의 토지소유: 국유와 사유?
14. 조선전기의 재정제도: 공납제
15. 조선왕조 장기지속의 정치경제학
16. 대동법 - 공납제의 개혁
17. 조선시대의 화폐제도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 왜 한국경제사인가?
경제학과 한국사가 무슨 관계가 있지? 경제학은 누구나 잘 아는데, 한국경제사는 대부분 생소할 것 같다. 경제학 교수 중에도 경제사(Economic History)와 경제학설사(History of Economics)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경제사는 경제의 역사이고, 한국경제사는 한국 경제의 역사이다. 사람의 활동 영역을 보통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나누는데, 그 중에서 경제에, 그것도 과거의 경제현상과 경제적 변화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경제사이다. 경제사학자는 경제를 전문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는 경제학자인데, 과거의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역사학자이다. 요즘 각광받는 융복합형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종종 역사학자에게는 경제학이라고 하여 기피되고, 경제학자에게는 역사학이라고 경원시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경제학과 역사학을 겸비해야 하는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인 분야가 경제사이다. 비단 경제사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분야에는 역사적 연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역사연구는 이미 전통적 역사학의 범위를 벗어나 경제사를 비롯하여 정치사, 사회사, 문화사, 과학사, 철학사, 수학사, 의학사, 문학사, 미술사, 음악사와 같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인간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모든 지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학문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사는 남다른 역사학

특히 경제사는 경제학의 개념과 이론, 그리고 검증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역사학이 갖지 못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성질이 강하여 과거 경제현상의 분석과 설명에도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고, 수량적인 데이터를 처리하는 역량을 역사연구에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경제학은 20세기 후반부터 가족이나 기업과 같은 조직, 법과 관습과 같은 제도, 그리고 정치체제 변동과 전쟁과 같은 정치현상에 이르기까지, ‘경제학 제국주의’라는 악평을 들을 정도로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우리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많은 답이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너 자신을 알라.”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가 현재에 이르게 된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전혀 상관없이 자기 눈만으로 자신을 보는 사람을 철이 안든 사람이라고 한다. 사회도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미래도 매우 위태로울 것이다. 현재에 이르게 된 과정을 오해하고 있다면 미래도 그러한 오해에 기초해서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사는 한국인의 미래를 예측하는 시금석이다. 한국경제사는 한국사 중에서 뼈대와 기초에 해당한다.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사극의 소재가 되는 전쟁이나 궁중비사와 같은 정치사이지만, 역사의 저변에서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경제사이다. 땀을 흘려야만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이 지상의 삶에서 욕망의 충족에 필요하지만 공짜로 얻을 수 없는 것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유통과 분배와 관련된 모든 인간 활동의 총체가 경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경제활동을 제외하면 도대체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쟁의 승패나 왕조의 교체보다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게 하였던 식량생산의 거북이걸음과 같은 기술 변화가 과거 인간의 삶을 이해함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고 말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고조선과 같은 국가가 등장하고 삼국시대를 지나 조선시대, 그리고 개항(1876)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시대의 경제구조와 경제적 변화를 알아야만 할 것이다.

과거의 실패를 비추는 거울

다음과 같은 뜨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도 한국경제사 지식은 필수다. 왜 우리나라는 근대국가를 만드는데 실패하고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야 했는가? 그렇게 근대화에 실패하였던 나라가 어떻게 다른 수많은 후진국과 달리 급속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는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던 한국과 북한의 경제수준이 이렇게까지 벌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한국경제사가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것이지만 지극히 보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Daron Acemoglu, James Robinson, 2012)는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라는 경제학의 영원한 숙제에 답하면서 주된 논거를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찾았다.

미래를 설계하는 '바로미터'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 왜 한국경제사인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전망하고 대비하고 계획하기 위해서도 한국경제사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 과거에 의해 미래가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는 과거의 축적 위에 건설할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서 어떻게 경제성장을 바랄 수 있을까? 남북 간에 경제체제가 달라지고 생활수준의 차이가 벌어지게 된 과정과 그 이유를 알지 않고서 어떻게 통일을 준비할 수 있겠는가? 19세기 후반 이후 동아시아 경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없이 어떻게 동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할 수 있을까? 역사는 과거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식이며 그 지식은 미래를 만드는 데 사용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경제사를 배울 때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무엇보다 돌도끼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이 엄청난 경제적 변화에 대한 경이감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시스템이라는 말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던 인간의 영원한 친구 견공들과는 달리 사람은 생존을 위하여 복잡하기 그지없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어 내었으며, 지구상에 있는 무량수의 생명체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김재호 <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