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1)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세계 경제사] 저금리·서브프라임…정부실패가 낳은 버블, 월가를 삼키다
생글생글은 이번호부터 한국경제신문 매주 토요일자에 실리고 있는 기획 시리즈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을 연재합니다. 세계 경제의 물줄기를 바꿔놨던 주요 사건들의 배경, 파장, 의미를 집중 조명합니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서울부총장·경제학), 정기화 전남대 교수(경제학),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권혁철 자유경제원 전략실장,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2008년 9월15일.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 월가에 격렬한 파열음이 불거졌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투자 실패로 자산 6300억달러, 154년 역사의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됐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신용부도스와프(CDS·기업의 부도위험을 거래하는 파생상품)에 투자한 세계 최대 보험회사 AIG도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주가가 폭락하고 월가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검은 월요일’이었다. 월가의 금융위기는 미국 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고, 금융 불안으로 투자와 소비가 급랭하면서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했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징후는 일찍이 나타났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미 주택가격이 2006년 3분기부터 하락하다가 2007년 5월 마침내 폭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서브프라임 시장에서의 문제가 금융시스템으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며 주택가격 폭락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지자 이것이 시장의 실패 때문이라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로 인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번 미국 월가의 공황상태는 ‘공급주의 경제학’의 종언”이라 하며 “수요를 중시하는 케인스 경제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경제사] 저금리·서브프라임…정부실패가 낳은 버블, 월가를 삼키다
2008년 금융위기 원인에 대한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월가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 등으로 인한 시장 실패가 그 원인이라면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하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부의 시장 개입은 잘못된 처방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면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 도덕적 해이에 따른 월가의 과도한 이윤 추구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피상적인 관찰이다. 불완전한 인간 사회에서 탐욕과 도덕적 해이는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2008년 금융위기를 논할 때 가져야 할 의문은 ‘왜 그렇게 탐욕과 도덕적 해이가 비정상적으로 만연했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 부동산 시장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상식적으로 은행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고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는 결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은행이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많은 돈을 빌려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2008년 금융위기 원인을 찾는 출발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급증하게 된 것은 미국 정부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개입 때문이었다. 1990년 미 정부는 은행들의 지역개발 관련 대출 의무를 강화해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도록 1977년 제정된 지역재투자법을 개정했다. 게다가 1995년 정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유동화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은행으로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구입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은행들이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기지 대출을 하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모기지를 매각했다. 매각해서 얻은 자금은 다시 주택시장에 투입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역시 정부가 손실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위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은행들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구입해줬다.

아무리 위험이 높은 투자라고 해도 자신이 책임지는 경우는 도덕적이다. 그러나 그 위험을 제삼자에게 떠넘기는 행위는 도덕적 해이다. 사람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자신이 책임지는 경우에는 신중하지만 자신이 아닌 제삼자가 책임지는 상황에서 위험한 투자를 늘린다. 주택시장에서 금융회사들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가 비정상적으로 만연하게 된 것은 바로 정부 정책 때문이었다.

한편 주택가격 거품이 광범위해진 것은 바로 Fed의 방만한 통화정책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Fe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은 저금리 정책을 써 화폐 공급량을 증가시킴으로써 닷컴 붕괴 후 후퇴해가는 미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이 저금리 정책으로 엄청나게 많은 달러가 풀렸다. 2000~2007년 풀린 달러가 미 역사상 그 이전까지 발행된 달러보다 더 많았을 정도였다. Fed의 저금리정책으로 풀린 엄청난 자금이 정부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과 맞물려 주택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그에 따른 은행 및 모기지 회사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Fed의 방만한 통화정책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 거대한 거품이 터지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세계 경제사] 저금리·서브프라임…정부실패가 낳은 버블, 월가를 삼키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시장 실패가 아닌 정부 실패였다. 굳이 시장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것은 ‘자유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부가 개입한 시장’의 실패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고 경제적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억제해야 하고, 정부의 무분별한 통화팽창을 제어해야 한다. 정치적 압력에 취약한 지금의 중앙은행제도를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는 다른 화폐금융제도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현 중앙은행 체제에서 화폐가치 안정과 경제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준칙에 의한 통화정책이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서울부총장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