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독창적 자본론 개척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경제사상사 여행] "자본은 노동의 친구이자 번영의 열쇠"…마르크스 정면 비판
19세기 후반 들어 유럽 경제는 산업화 영향으로 전대미문의 번영을 이뤄가고 있었지만 카를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은 이윤과 이자 존재를 부정하고 ‘자본주의는 소외와 착취로 점철된 부정한 사회’라는 논리를 펼치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르크스 사상의 선전·선동에 전통 경제학은 속수무책이었다. 마르크스에 맞서 자본주의 발전과 성장·분배를 설명할 적절한 이론적 틀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시기에 마르크스 사상은 치명적 오류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준 인물이 오스트리아 출신 정치경제학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다.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던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뵘바베르크는 원래 법학을 전공했지만 마르크스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스승 알베르트 쉐플레 교수의 조언에 따라 독학으로 경제학에 입문했다.

오스트리아 재무부 장관을 세 차례나 지내면서 끊임없이 경제학 공부에 매진했던 뵘바베르크가 주목한 건 자본이라는 현상인데, 이것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개발한다면 마르크스 이론의 오류는 물론이고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저축 투자 기술 자본재 생산성 지식 등 모든 형태의 자본은 개인들의 행위와 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나는 결과이기에 인간행동 연구가 중요하다는 게 뵘바베르크의 주장이다. 그는 저축의 총합이나 자본의 총합 등 총합개념으로 이론을 도출하려는 거시경제학에 반대했다.

흥미로운 건 왜 이자가 생겨나는가에 대한 뵘바베르크의 인식이다. 이자란 시간선호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시간선호란 인간들이 동일한 품질의 자동차라고 해도 장래에 갖게 될 자동차보다 지금 가질 수 있는 자동차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현재 재화’를 ‘미래 재화’보다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려면 그 평가차이에 해당되는 프리미엄이 부여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게 이자라는 것이다. 이자가 플러스(+) 값을 갖는 이유는 현재 재화를 미래 재화보다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경제사상사 여행] "자본은 노동의 친구이자 번영의 열쇠"…마르크스 정면 비판
따라서 뵘바베르크는 이자는 돈의 가격이 아니라 시간의 가격이라고 주장했다. 이자가 금융투자에 대한 수익, 자본재 사용에서 생기는 소득이라는 전통적인 시각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이자 지급을 위한 기금일 뿐이라는 게 그의 통찰이다.

이자의 존재 이유가 시간선호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자를 착취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뵘바베르크는 주장했다. 이자는 자본주의에서만 등장하는 역사적·법적 범주가 아니라는 그의 지적도 흥미롭다. 이자 현상은 현재와 미래를 상이하게 평가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등장하는 그래서 체제와 무관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자본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슘페터가 뵘바베르크를 ‘부르주아 마르크스’라고 불렀던 것도 그가 마르크스처럼 자본을 분석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본을 노동의 적으로 여긴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은 노동의 친구요, 모든 계층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는 보편적 번영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의 분업과 근면이 아니라 절약과 저축, 자본 재투자가 번영의 열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 건물을 유지하거나 감가상각 정도의 저축을 넘어서 순저축이 없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다리나 수도관을 건설할 수도 없고 발명과 발견에 투자할 여력도 없다. 이런 사회는 겨우 기존의 자본만을 유지하기 때문에 번영하지 못한다. 소득 이상으로 소비하는 사회는 저축을 통한 자본 축적은 고사하고 있는 것을 갉아먹는 그래서 자본이 줄어드는 사회다. 그 결과는 빈곤의 악순환이다.

뵘바베르크가 주목한 건 소득 일부를 저축하는 사회다. 물론 저축 때문에 처음에는 소비가 줄어들지만 저축은 자본재 수요 증가로 이어져 줄어든 소비재 수요를 상쇄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발전된 국가에서는 자본 퇴장이 없고 저축은 전부 투자된다. 그 결과 자본 증가로 소득이 늘어나고 장차 소비재 수요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뵘바베르크는 소비는 생산을 위한 불가분의 조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저축은 일반적인 구매력 감소일 뿐이고 그래서 생산 위축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틀렸다고 일축했다. 저축은 나중에 자녀교육 노후 등에 지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연기된 소비지출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침을 놨다. 이런 자본론적 시각에서 뵘바베르크가 우려한 건 오스트리아의 높은 만성적 공공 부채였다.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공공 부채는 금융자본 시장을 위축시켜 번영의 싹을 자른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뵘바베르크는 자본과 이자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현실에 적합한 경제성장이론을 독창적으로 개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뵘바베르크 사상의 힘 조세개혁·금본위제 도입…경기변동이론 기초 마련


[경제사상사 여행] "자본은 노동의 친구이자 번영의 열쇠"…마르크스 정면 비판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는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던 마르크스 사상을 마르크스의 독보적인 ‘자본론’을 기초로 해 최초로 정면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너무도 강력해서 마르크스 추종자들은 직업을 찾기도 어려웠다는 게 역사가들의 보고다. 그의 비판은 착취이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착취이론은 노동 투입량이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보수는 가격과 일치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기업주는 가격만큼 다 주지 않고 이자, 이윤으로 제 몫을 챙기며 겨우 먹고살 정도의 임금만을 준다는 게 착취이론이다.

그러나 뵘바베르크는 가치를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소비자의 판단이기에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은 틀렸다는 의견에 동조하면서 이윤이란 기업가들의 위험부담에 대한 대가라고 봤다.

그에 따르면 기업가는 토지 노동 자본을 조합해 시장에서 경쟁할 완성된 재화를 창출하고 이에 대한 손익, 파산 등을 책임진다. 반면 정규적으로 월급을 받는 노동자는 이런 책임이 없고 기업이 망해도 그들이 잃는 건 월급일 뿐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따라서 생산한 걸 전부 노동자가 가질 수 없고 기업가의 이윤은 착취가 아니라 지극히 도덕적이라는 결론이다.

자본가가 챙기는 이자도 윤리적으로 당연하다는 게 뵘바베르크의 설명이다. 노동자는 생산하고 이후 이를 판매해 수익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노임을 받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 자본가가 현재소비를 억제하고 저축한 자본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뵘바베르크의 비판은 사회주의에는 가격이 없기에 소비나 생산을 위한 경제계산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미제스의 유명한 사회주의 비판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게 학계의 일반적 평가다. 1929년 발생한 세계 대공황을 설명한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거성 미제스와 하이에크가 경기변동이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뵘바베르크 자본론의 힘 때문이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