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또 다른 책의 제목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과연 존재할까?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정신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그럼 일단 반대로 생각해보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모든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된 것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관계, 호의, 협력 같은 사회적 미덕이나 정의, 우정, 사랑 등 인간의 도덕적 가치들은 어떨까.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지 않을까. 아직은 단정하지 말자.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이런 것들이 거래되고 있으니 말이다.
2014 동국대 수시 기출 : 경제적 인센티브와 인간 행동의 변화
2014 한양대 모의 논술 : 산술방정식과 도덕방적식
2013 고려대 수시 기출 : 시장의 도덕적 한계
2012 성균관대 수시 기출 : 인간 행위의 특성
2011 서강대 예시 논술 :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화
▧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거래의 대상이 된다. 상품화는 이미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음 제시문을 통해 어떤 것들을 사고 파는지 확인해보자.
내게 ‘결혼식 하객 도우미’ 아르바이트가 생겼다. 거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신랑 아버지의 친구다. 결혼식 장소는 ○○이고, 도우미들은 토요일 오후 1시30분에 집합하기로 되어 있다. 일당 1만5000원에 7만원짜리 점심도 대접한단다. 신랑 측은 도우미 회사에 내는 돈까지 해서 나 같은 짝퉁 하객 한 명당 10만원씩을 부담하는 셈이다. <고려대 2013 수시 기출>
고객은 ‘인성 시장’에서 상업적 가면을 쓴 존재를 만난다. 따라서 고객은 백화점 판매원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면서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단지 판매원의 친절과 호의에 대해 값을 지불하면 된다. (중략) 판매원은 상품들을 전시하고 그것들을 고객이 구매하도록 설득할 뿐이다. 바로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 판매원은 자신의 인성을 사용한다. 언제나 고객에게 친절과 봉사를 제공해야 한다. <고려대 2008 수시 기출>
비키 디아즈는 34세로서 다섯 아이의 엄마이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 교사를 하다가 여행사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서 비키는 로스앤젤레스의 비벌리힐스에 있는 부유한 가정의 가정부 겸 두 살짜리 아들의 보모로서 일한다. 비벌리힐스의 그 가족은 비키에게 주급 400달러를 지급한다. 그리고 비키는 다시 필리핀에 있는 자기 가족의 가정부에게 주급 40달러를 지급한다. <서강대 2011 논술 예시>
결혼식에서 나를 축하해 줄 친구의 우정, 백화점에서 고객을 향한 점원의 미소와 친절, 아기를 위한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 이런 것들마저도 오늘날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치들이 거래되면서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함께 발생했다.
▧ 시장의 도덕적 한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상품으로 유통되면서 거래의 불공정성과 도덕적 가치의 훼손이라는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의 사례에서 후진국 여성인 비키 디아즈는 돈 때문에 부모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고 선진국 가정의 육아를 대신 해주고 있다. 즉, 사랑과 양육이라는 숭고한 행위조차 돈에 좌우된다. 또한 선진국의 고용주는 최대한 값싼 비용을 치르고 이러한 가치를 구매하려고 하는데 이 과정은 불평등하다. 일하려고 하는 후진국 보모는 얼마든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 하객 도우미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인간관계를 과시하기 위하여 친구 사이의 우정을 단돈 몇 만원에 구입한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관계에 의한 소중한 정신적 가치들이 시장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백화점 점원의 미소와 친절은 어떠한가. 감정의 상품화라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훼손한다.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면서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우선적으로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자기감정으로부터 유리되는 현상을 경험하며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 역시 생계유지가 절박한 사람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거래의 공정성이 문제되고, 친절과 호의라는 긍정적 가치들이 매매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도 발생시킨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미국의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 교수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하나의 실험을 진행했다. 컴퓨터로 아주 단순하고 따분한 과제를 하나 설정하고, 이를 다수의 실험참가자에게 수행하도록 했다. 첫 번째 실험참자가들에게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 5달러의 보상을 주었고, 두 번째 참자가들에게는 그보다 적은 50센트의 보수를 주었다. 마지막 세 번째 참가자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조금 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사회규범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행위하도록 한 것이다. 세 집단의 실험참가자들은 따분한 과제를 얼마나 열심히 수행했을까. 시장원리에 따라 5달러를 받은 집단은 평균 159개의 작업을 해냈다. 10분의 1 수준인 50센트를 보상으로 받은 집단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평균 101개를 성공했다. 시장논리에 따른 당연한 차이였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호의와 자율성만으로 이 작업을 수행했던 마지막 집단은 평균 168개를 성공했다. 5달러를 받은 사람들보다도 조금 더 높은 성과였다. 사회규범이 시장규칙보다 더 큰 행위의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실험이었다.
이스라엘의 한 유치원에서 있었던 실제 사례는 위의 가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정해진 퇴원 시간보다 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들 때문에 유치원 운영에 문제가 생기자, 유치원은 지각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매기는 방법을 고안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지각하는 부모들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돈으로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벌금을 냄으로써 도덕적 의무감은 사라져 버렸고, 기존에 있던 자발적 규범의식도 앗아갔다. <성균관대 2012학년도 수시>에서도 인간 행위의 특성과 관련해 유사한 사례가 제시되었다. 스웨덴에서 자발적으로 헌혈하려는 사람들에게 50크로네(약 8500원)를 지급하려고 하자 헌혈지원자가 현저히 줄어드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도덕이나 윤리 같은 가치를 시장논리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양대 2014 모의논술>에서는 시장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같은 인간의 행동을 ‘도덕방정식’으로 칭하고 있다. 독일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파비안』이라는 소설이 소개되었는데, 고향을 떠나 낯선 외지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주인공 파비안의 집에 어머니가 방문하게 되는 장면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 해 줄테니 언제든 힘들면 돌아오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서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을 엿볼 수 있다. 파비안은 기차역에서 그런 어머니를 배웅하며 어머니의 가방에 몰래 20마르크를 넣어두고 돌아온다.
책상 위에는 꽃이 꽂혀 있었다. 그 옆에는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그는 봉투를 열었다. 20마르크짜리 지폐 한 장과 종이쪽지가 들어 있었다. ‘약소하나마 사랑의 마음으로 엄마가…’라고 거기에는 적혀 있었다. (중략) 그는 20마르크를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 어머니는 기차 속에 앉아 있고 얼마 안 가서 그가 핸드백에 넣어놓은 20마르크짜리 지폐를 발견할 것이다. 산술적으로 보아서는 이 결과는 0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전과 같은 액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행은 차액 계산을 거부한다. 도덕방정식은 산술방정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20마르크를 썼고 다시 20마르크가 생겼으니 40마르크의 이득이 생긴 셈이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자각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발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의 논리나 상품화의 그늘 속에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는 성찰의식이 필요하다.
이지나 <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또 다른 책의 제목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과연 존재할까?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정신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그럼 일단 반대로 생각해보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모든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된 것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관계, 호의, 협력 같은 사회적 미덕이나 정의, 우정, 사랑 등 인간의 도덕적 가치들은 어떨까.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지 않을까. 아직은 단정하지 말자.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이런 것들이 거래되고 있으니 말이다.
2014 동국대 수시 기출 : 경제적 인센티브와 인간 행동의 변화
2014 한양대 모의 논술 : 산술방정식과 도덕방적식
2013 고려대 수시 기출 : 시장의 도덕적 한계
2012 성균관대 수시 기출 : 인간 행위의 특성
2011 서강대 예시 논술 :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화
▧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거래의 대상이 된다. 상품화는 이미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음 제시문을 통해 어떤 것들을 사고 파는지 확인해보자.
내게 ‘결혼식 하객 도우미’ 아르바이트가 생겼다. 거기서 내가 맡은 역할은 신랑 아버지의 친구다. 결혼식 장소는 ○○이고, 도우미들은 토요일 오후 1시30분에 집합하기로 되어 있다. 일당 1만5000원에 7만원짜리 점심도 대접한단다. 신랑 측은 도우미 회사에 내는 돈까지 해서 나 같은 짝퉁 하객 한 명당 10만원씩을 부담하는 셈이다. <고려대 2013 수시 기출>
고객은 ‘인성 시장’에서 상업적 가면을 쓴 존재를 만난다. 따라서 고객은 백화점 판매원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면서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단지 판매원의 친절과 호의에 대해 값을 지불하면 된다. (중략) 판매원은 상품들을 전시하고 그것들을 고객이 구매하도록 설득할 뿐이다. 바로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 판매원은 자신의 인성을 사용한다. 언제나 고객에게 친절과 봉사를 제공해야 한다. <고려대 2008 수시 기출>
비키 디아즈는 34세로서 다섯 아이의 엄마이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 교사를 하다가 여행사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서 비키는 로스앤젤레스의 비벌리힐스에 있는 부유한 가정의 가정부 겸 두 살짜리 아들의 보모로서 일한다. 비벌리힐스의 그 가족은 비키에게 주급 400달러를 지급한다. 그리고 비키는 다시 필리핀에 있는 자기 가족의 가정부에게 주급 40달러를 지급한다. <서강대 2011 논술 예시>
결혼식에서 나를 축하해 줄 친구의 우정, 백화점에서 고객을 향한 점원의 미소와 친절, 아기를 위한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 이런 것들마저도 오늘날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치들이 거래되면서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함께 발생했다.
▧ 시장의 도덕적 한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상품으로 유통되면서 거래의 불공정성과 도덕적 가치의 훼손이라는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위의 사례에서 후진국 여성인 비키 디아즈는 돈 때문에 부모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고 선진국 가정의 육아를 대신 해주고 있다. 즉, 사랑과 양육이라는 숭고한 행위조차 돈에 좌우된다. 또한 선진국의 고용주는 최대한 값싼 비용을 치르고 이러한 가치를 구매하려고 하는데 이 과정은 불평등하다. 일하려고 하는 후진국 보모는 얼마든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 하객 도우미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인간관계를 과시하기 위하여 친구 사이의 우정을 단돈 몇 만원에 구입한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관계에 의한 소중한 정신적 가치들이 시장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백화점 점원의 미소와 친절은 어떠한가. 감정의 상품화라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훼손한다.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면서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우선적으로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자기감정으로부터 유리되는 현상을 경험하며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 역시 생계유지가 절박한 사람들을 이용하기 때문에 거래의 공정성이 문제되고, 친절과 호의라는 긍정적 가치들이 매매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도 발생시킨다.
▧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미국의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 교수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하나의 실험을 진행했다. 컴퓨터로 아주 단순하고 따분한 과제를 하나 설정하고, 이를 다수의 실험참가자에게 수행하도록 했다. 첫 번째 실험참자가들에게는 시장의 규칙에 따라 5달러의 보상을 주었고, 두 번째 참자가들에게는 그보다 적은 50센트의 보수를 주었다. 마지막 세 번째 참가자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조금 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사회규범의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행위하도록 한 것이다. 세 집단의 실험참가자들은 따분한 과제를 얼마나 열심히 수행했을까. 시장원리에 따라 5달러를 받은 집단은 평균 159개의 작업을 해냈다. 10분의 1 수준인 50센트를 보상으로 받은 집단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평균 101개를 성공했다. 시장논리에 따른 당연한 차이였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호의와 자율성만으로 이 작업을 수행했던 마지막 집단은 평균 168개를 성공했다. 5달러를 받은 사람들보다도 조금 더 높은 성과였다. 사회규범이 시장규칙보다 더 큰 행위의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실험이었다.
이스라엘의 한 유치원에서 있었던 실제 사례는 위의 가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정해진 퇴원 시간보다 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들 때문에 유치원 운영에 문제가 생기자, 유치원은 지각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매기는 방법을 고안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지각하는 부모들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돈으로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벌금을 냄으로써 도덕적 의무감은 사라져 버렸고, 기존에 있던 자발적 규범의식도 앗아갔다. <성균관대 2012학년도 수시>에서도 인간 행위의 특성과 관련해 유사한 사례가 제시되었다. 스웨덴에서 자발적으로 헌혈하려는 사람들에게 50크로네(약 8500원)를 지급하려고 하자 헌혈지원자가 현저히 줄어드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도덕이나 윤리 같은 가치를 시장논리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양대 2014 모의논술>에서는 시장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같은 인간의 행동을 ‘도덕방정식’으로 칭하고 있다. 독일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파비안』이라는 소설이 소개되었는데, 고향을 떠나 낯선 외지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주인공 파비안의 집에 어머니가 방문하게 되는 장면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 해 줄테니 언제든 힘들면 돌아오라’고 말하는 어머니에게서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을 엿볼 수 있다. 파비안은 기차역에서 그런 어머니를 배웅하며 어머니의 가방에 몰래 20마르크를 넣어두고 돌아온다.
책상 위에는 꽃이 꽂혀 있었다. 그 옆에는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그는 봉투를 열었다. 20마르크짜리 지폐 한 장과 종이쪽지가 들어 있었다. ‘약소하나마 사랑의 마음으로 엄마가…’라고 거기에는 적혀 있었다. (중략) 그는 20마르크를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 어머니는 기차 속에 앉아 있고 얼마 안 가서 그가 핸드백에 넣어놓은 20마르크짜리 지폐를 발견할 것이다. 산술적으로 보아서는 이 결과는 0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전과 같은 액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행은 차액 계산을 거부한다. 도덕방정식은 산술방정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20마르크를 썼고 다시 20마르크가 생겼으니 40마르크의 이득이 생긴 셈이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자각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방법을 발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의 논리나 상품화의 그늘 속에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는 성찰의식이 필요하다.
이지나 <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