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개최한 것과 관련,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열린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원로신부는 이병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박 신부는 “NLL(북방한계선)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에요”라고 발언했다. 박 신부의 발언에 대해서는 모처럼 종교계가 제목소리를 냈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종교인 신분을 망각한 정치단체 일원의 행동과 다를 게 뭐냐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1970~1980년대 군부 독재하에서 시국 기도회 등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탄압과 폭압 정치를 고발하고 유신헌법 반대운동과 긴급조치 무효화 운동, 광주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등 과거 암울했던 시절 민주화운동과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신부의 발언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성직자 발언 문제 삼는 건 신앙 자유 침해"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건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사제단의 박 대통령 퇴진 요구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과 여당이 어느 측면에서는 자초한 일”이라고 사제단의 입장을 거들었다. 다만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한 언급에 대해서는 “신부들의 충정은 이해가 가지만 연평도 포격과 NLL에 대한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세상에 발언을 하지 않는 종교는 죽은 종교라는 건 세계적으로 결론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교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루는 만큼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답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의구현사제단의 발언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국목회자 정의평화협의회 등 26개 개신교계 단체로 구성된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기독교 공동대책위원회’는 “박창신 신부의 발언을 빌미로 종북 신부 운운하며 수사계획을 발표하는 등 대대적인 공안 몰이를 통한 탄압이 시작되고 있다”며 “성직자의 설교를 문제 삼는 것은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스님은 “고통과 문제가 있는 곳에 종교가 거기를 떠나서는 종교가 있을 곳이 없는 것 아니냐”며 이번 박 신부의 정치 발언을 사실상 옹호하는 입장이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소속 교무 300여명도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진상과 종교인에 대한 폄훼 사과, 박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반대 "종교인이라도 편향된 정치적 발언은 안돼"

보수 성향 단체들은 박 신부의 발언이 연평도 순국 장병을 모욕하는 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북한인권학생연대 등 6개 청년단체는 박 신부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순국장병을 모욕하는 행위”라며 해당 발언에 대한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보수단체인 ‘열린 세상 시민포럼’과 활빈단은 “정의구현사제단은 박 대통령에 대한 사퇴 요구와 북한 두둔 망언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한국자유총연맹과 바른사회시민회의, 시대정신 등도 성명과 논평 등을 통해 “사제단이 편향된 태도에서 벗어나 종교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는 사건 직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정치개입은 사제들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염 대주교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제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구조나 사회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며,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평도 주민들은 “북한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대변하는 사제단을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성일 연평주민자치위원장과 주민들은 “박 신부와 사제단은 “연평도 도발로 귀중한 생명을 잃은 장병들의 희생을 모독했다”며 “천주교사제단은 편향된 정치적 태도에서 벗어나 연평도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종교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라”고 촉구했다.

생각하기

박 신부의 발언을 두고 온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정치권이나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종교계는 같은 종파 내에서조차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극심한 혼란 상태다. 천주교 내에서도 진보적인 그룹과 보수적 그룹 간에 견해가 갈리고 불교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정교 분리에 대한 시민 의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종교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 물은 결과 찬성은 20.2%, 반대 67.1%, 잘 모름 12.8%로 나왔다. 70%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셈이다.

예수도 정치인이었다는 일부의 주장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종교야말로 사람 사는 모든 영역을 다루는 것이니 만큼 정치로부터 고립무원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것은 종교인들이 직접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나서는 것과 같은 좁은 의미의 정치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번 사건과 같은 시국 문제에 대한 종교인의 발언은 어떻게 봐야 할까. 다음의 발언을 참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종교인도 정치 참여를 할 수 있고 시국발언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박 신부의 발언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이 조작됐다는 것이다. 박 신부는 실수가 아닌 평소 생각 그대로 말했고 이런 사람을 종북이라고 하는 것은 종북몰이가 아니라 종북을 종북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혜인스님의 말도 들어보자. “종교는 국경이 없지만 종교인은 국가가 있고 국민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우리나라를 부정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북한을 이롭게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종교인의 정치참여 허용해야 할까요
과거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듯이 종교인의 정치 참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단순한 정치적 견해를 넘어 사실상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는 식의 발언이라면 그것은 곤란하다. 이는 종교의 자유와는 별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