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관세청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기업에 대한 관세조사를 1년간 유예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국세청 역시 올해 세무조사 대상 대기업 수를 연초 계획(1160개)보다 10%가량 줄인다고 발표했다. 기업을 과도하게 압박하지 않겠다는 것이 국세청의 발표 요지였다. 그로부터 석달 후, 정부의 ‘세금 쥐어짜기’에 기업들이 비상이다. 세정당국의 이런 약속이 무색하게 기업들은 “바뀐 게 없다”거나 “되레 압박 강도가 더 세졌다”고 한다. 정부 부처들의 릴레이 압박으로 재계는 세수 부족 충당을 위한 것이라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세정·사정당국 '릴레이 압박'

현 정부 복지 예산 재원 135조원 마련을 위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란 얘기다. 최근 국세청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세정·사정 부처들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와 세금 과징금 벌금 등 각종 준조세 부담을 가중하고 있어 과중한 세금 압박을 호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것은 국세청 세무조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대기업은 34곳에 달했다. 거의 매달 3~4개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세청이 4월 세무조사 인력을 400명 증원했다”며 “(국세청은) 과거보다 세무조사 빈도가 늘어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훨씬 심해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세무조사를 받은 기업들은 세무조사 강도가 예전보다 세졌다고 답했다. D사 관계자는 “보통 2~3개월이면 끝나는 세무조사가 올해는 5개월째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 더 연장된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국세청뿐만이 아니다. 올 들어 거의 모든 세정·사정당국(국세청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기업에 대한 조사를 늘리는 추세라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공정위는 내년에 기업에서 거둘 벌금 과징금 목표액을 15%나 증액했다. 관세청도 기업에 대한 관세 부과 조건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저인망식' 세금 과징금 부과

사정·세정당국이 세금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되고 있다. 대표 사례가 동부하이텍이다. 이 회사는 3월 국세청으로부터 “2007년 동부한농과 동부일렉트로닉스가 합병해 동부하이텍으로 상호를 바꾸는 과정에서 차익이 발생했다”며 778억원의 법인세를 부과받았다. 이에 동부하이텍은 “실제 합병 차익은 없고 법대로 회계 처리를 했다”며 서울행정법원에 778억원 법인세 추징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까지 냈다. 이 회사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세금을 추징당할 것에 대비해 4분기에 거액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항공업계도 세금 문제로 고민 중이다. 안전행정부가 내년 말까지 적용하는 항공기 취득세와 재산세(지방세) 감면 혜택을 종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지금까지 항공기를 ‘자산’이 아닌 ‘투자’로 봐서 새로 들여오거나 보유 중인 항공기에 대해 취득세 100%와 재산세 50%를 감면해줬지만 이 혜택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항공업계는 이 혜택이 없어지면 매년 655억원의 세금을 더 내야한다. 재계 관계자는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데 감면 혜택을 없애고 세금을 더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 기업을 압박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부처에 제대로 전달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심사'에 걸린 정유사들

최근 관세청은 국내 정유사들이 수년간 관세 환급금을 부당하게 돌려받은 혐의를 포착, 강도 높은 ‘기획심사’를 끝내고 각 회사에 추징금을 통지했다. 원유 등 원재료를 수입한 뒤 가공해 수출하는 정유사들이 관세환급제도의 허점을 활용해 세금을 덜 내고 있다고 판단, 관세청이 기획심사한 것이다. 가령 두바이산 원유는 5%의 관세를 물고 북해산 브렌트유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들여온다. 그후 석유 완제품을 수출할 때 모두 두바이산으로 신고해 세금을 내지 않은 북해산 브렌트유 부분까지 과다하게 관세를 돌려받는 식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유사들은 전체 산업의 관세 환급금 5조1469억원 중 40%에 달하는 2조원 이상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정유사들은 관세청의 추징금 부과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석유협회 등을 통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 정유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명확한 규정이 없어 모든 정유사가 관행처럼 해오던 것을 갑자기 문제 삼은 것”이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이태명 한국경제신문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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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불복 급증…환급액만 1조원 넘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기업에 부과하는 추징세액이 갈수록 늘면서 기업들의 세금 불복 규모도 커지고 있다. 기업이 제기한 대규모 불복 소송에서 국세청이 패소하는 비율 또한 높아져 세금 환급액도 급증세다.

최근 국세청이 발표한 기업 세무조사 건당 추징세액은 2010년 8억원에서 2011년 9억5000만원, 지난해 10억9000만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만 13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세법상 대형 법인(수입금액 500억원 이상)에 대한 건당 추징세액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0년 26억원에서 2011년 29억원, 지난해 38억원으로 늘어난 뒤 올 상반기에는 47억원에 달했다. 불과 3년 만에 건당 추징세액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추징세금에 반발하는 조세 불복은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 건수는 완만한 증가세지만 금액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조세 불복 금액은 2009년 5조3012억원, 2010년 8조8499억원, 2011년 10조330억원, 지난해 12조3097억원 등 3년 새 두 배 넘게 급증했다. 조세 불복을 해도 국세청이 정당하게 과세한 것으로 밝혀지면 문제가 없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세심판원 인용률(국세청 패소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23.5%였던 국세청 패소율은 올 상반기 41.7%로 뛰어올랐다. 국세청 패소율이 높아지면 세금을 추징했다가 환급한 금액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추징세액 불복으로 국세청이 지난해 환급한 세액은 1조508억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