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미제스가 그리워지는 이유
"시장은 스스로 경제력 남용 해결…대기업 규제는 '경제발목' 잡을 뿐
정부간섭 줄여야 발전할 수 있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미국, 유럽, 한국 등 전 세계가 깊은 경제침체에 직면하면서 국가주의 버릇이 되살아났다. 실업, 빈곤, 저성장이 시장 탓이라는 인식에서다. 환경, 복지 관련 지식인 관료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한 세계관과 확고한 사회이론이 없으면 사회혼란은 필연적이다.
여기에 큰 힘이 되는 게 올 10월 서거 40주년을 맞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의 사상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래서 영국,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그의 업적이 재평가되고 있음은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제스의 사상은 경기변동이론에서 빛이 난다. 미제스는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은 순전히 화폐현상이라고 말한다. 통화, 신용팽창에 따라 시중이자율이 낮아져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투자를 유도해 당장은 호황으로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불황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규제나 재정, 통화를 확대할 경우 정상회복을 방해해 또 다른 불황을 야기할 뿐이라는 게 그의 경고다.
미제스의 이론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잘 설명해준다. 케인스가 믿는 것처럼 유효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미국 중앙은행(Fed)이 돈을 풀어 인위적으로 만든 붐이 불가피하게 터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 불황이 전대미문의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도 기업과 노동에 대한 규제, 세금 인상 등 정부 간섭 때문이었다는 게 분명히 입증되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도 경제 불안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돈을 풀었던 게 주범이었다. 이자가 내려가면서 건설이 늘고 고용과 소비가 증가하는 등 붐이 일어났지만 그 호황이 저축을 통한 투자가 아닌 비정상적 붐이었던 게 문제였다. 게다가 대출조건 완화를 통한 자가주택 보유확대 정책까지 겹쳐 집값이 치솟자 미국 정부는 금리 인상에 나섰고 그 결과 거품이 꺼지면서 불황이 야기된 것이다.
미제스는 사회주의는 손익계산에 필수적인 자본재의 화폐가격이 형성될 수 없어서 그런 체제는 불가능하며 결국은 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새뮤얼슨 등은 사회주의도 번영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1989년 동유럽의 사회주의와 옛 소련 붕괴는 미제스의 사상이 정확했음을 입증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죽었지만 간섭주의는 살아있다. 미제스는 이것도 유용한 체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시장에 대한 간섭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 때문에 또 다른 규제와 간섭을 불러오는 등, 결국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제3의 길 같은 중도(中道)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스웨덴과 독일 등 복지국가의 실패가 뚜렷하게 입증한다.
미제스는 국가의 특혜나 인허가 등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이 없다면 ‘독점’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시장경제는 경제력 남용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정부가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을 규제하면 이는 경쟁보호가 아니라 기업 활동의 발목만을 잡는 경쟁제한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미제스는 결코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다.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원칙에 관한 한 그에게 타협과 양보는 없었다. 오늘날 자유주의 이념이 살아있는 것은 그의 불굴의 투지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무릅쓰고라도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고 주택과 건강, 교육 문제에서 간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미제스와 같은 원칙의 자유주의자가 그리워진다. 자유주의 경제학이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미제스의 서거 40주년을 새기는 이유도 그런 그리움 때문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한국제도경제학회장 kwumin@hanmail.net >
한국경제신문 10월 21일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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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기업이 급속히 쇠락해 간다는 경고
한국 기업의 체력이 급속하게 바닥나고 있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이 연구소는 ‘위기 후 5년 한국 기업경영의 현주소’라는 보고서를 통해 과거 위기일수록 빛나던 한국 기업의 저력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경종을 울렸다. 외환위기 5년 뒤 기업 실적은 위기 전 수준을 상회했던 반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후 5년이 지난 최근의 기업 실적은 위기 당시보다도 악화됐다는 것이다.보고서에 따르면 734개 상장사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10년 7.4%로 위기 직전인 2007년 7.1%를 잠시 뛰어넘었지만 이후 2년 연속 내리막을 타더니 지난해에는 2008년(5.6%)보다 못한 5.2%로 곤두박질쳤다. 노쇠했다는 일본(5.8%)에도 뒤졌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더 큰 문제는 위기불감증이다. 연구소는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이번 위기에는 경제주체 모두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당장 정부부터 그렇다. 현오석 부총리는 엊그제 국정감사장에서 “내년 3.9% 성장 전망은 중립적”이라고 밝혔다. IMF(3.7%) 한국은행(3.8%)보다 높지만 결코 낙관적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론 최근 금융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올 들어 기업실적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대 그룹 계열 45개 상장사의 2분기 영업이익은 수치상으론 19.4% 늘었지만 반도체 효과가 컸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빼면 오히려 8.2% 감소했다고 한다. 웅진 STX 동양그룹으로 이어지고 있는 기업 부실 문제가 어디까지 불똥이 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년 성장 전망을 3.1%로 낮춰잡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물론 기업 활력이 떨어진 데는 위기시 몸을 사리는 기업 스스로의 문제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 불감증에다 반기업정서,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엄청난 규제야말로 기업 의욕과 체력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기업이 더 힘이 빠지기 전에 마음껏 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경제신문 10월 18일자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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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카젠버그의 웃음
‘슈렉’과 ‘쿵푸팬더’ 시리즈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울리고 웃긴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애니메이션 대표.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그에게는 ‘카리스마버그’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스티브 잡스가 그를 찾아와 “이 컴퓨터가 애니메이션의 미래”라며 꼬드기자 “애니메이션은 내 거야”라며 고함을 지른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은 내 딸과 데이트를 하겠다는 소리 같은데 이봐, 난 총을 갖고 있어. 내 걸 뺏어가려 하면 총으로 네놈의 거기를 날려 버리겠다고.”
세계 최고가 되려면 이쯤 배포가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카젠버그의 성공 비결을 연구한 사람들은 의외의 분석을 내놓는다. 그것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웃음 코드’였다. 뉴욕대를 2학년 때 중퇴하고 파라마운트사의 우편발송부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7년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것도 낙천적인 기질과 창의적인 업무 스타일 덕분이었다.
34세에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사장으로 스카우트된 뒤 업계 최하위권이었던 디즈니를 10년 만에 연매출 45억달러의 ‘황금알 거위’로 키우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의 디즈니 동료들은 “카젠버그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뭐든지 금방 배우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고 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오직 현장 지식만으로 숱한 명작을 내놓은 배경도 마찬가지다.
아이스너 디즈니 회장과의 불화 끝에 ‘퇴출당하고 마음 속으로 칼을 갈던 시절’만 제외하고 그는 늘 웃었다. 훗날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드림웍스를 창업한 1994년을 회상하면서도 “한창 잘나가는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원했고 나는 직장을 얻었으니 최고의 궁합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익살의 힘이 ‘슈렉’ ‘쿵푸팬더’ 등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괴물이나 악당이 주인공이 되고 예쁜 공주가 때로는 난폭한 모습을 보이는 발상의 전환도 그의 유머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는 엊그제 세종대에서 대학생들과 만났을 때 “언제나 웃음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슈렉’이 그 대표작”이라고 소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도 “사람을 제외하고 가장 아름다운 건 웃음인데 전 아침마다 어떻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고 했다. 1년에 700시간 이상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에너지의 원천도 ‘일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드림웍스의 우리말 뜻은 ‘꿈 공작소’다. 그곳에는 일과 놀이의 경계도 따로 없다고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10월 21일자 A39면
"시장은 스스로 경제력 남용 해결…대기업 규제는 '경제발목' 잡을 뿐
정부간섭 줄여야 발전할 수 있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미국, 유럽, 한국 등 전 세계가 깊은 경제침체에 직면하면서 국가주의 버릇이 되살아났다. 실업, 빈곤, 저성장이 시장 탓이라는 인식에서다. 환경, 복지 관련 지식인 관료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한 세계관과 확고한 사회이론이 없으면 사회혼란은 필연적이다.
여기에 큰 힘이 되는 게 올 10월 서거 40주년을 맞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의 사상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래서 영국,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그의 업적이 재평가되고 있음은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제스의 사상은 경기변동이론에서 빛이 난다. 미제스는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은 순전히 화폐현상이라고 말한다. 통화, 신용팽창에 따라 시중이자율이 낮아져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투자를 유도해 당장은 호황으로 보이지만 필연적으로 불황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규제나 재정, 통화를 확대할 경우 정상회복을 방해해 또 다른 불황을 야기할 뿐이라는 게 그의 경고다.
미제스의 이론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잘 설명해준다. 케인스가 믿는 것처럼 유효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미국 중앙은행(Fed)이 돈을 풀어 인위적으로 만든 붐이 불가피하게 터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 불황이 전대미문의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도 기업과 노동에 대한 규제, 세금 인상 등 정부 간섭 때문이었다는 게 분명히 입증되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도 경제 불안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돈을 풀었던 게 주범이었다. 이자가 내려가면서 건설이 늘고 고용과 소비가 증가하는 등 붐이 일어났지만 그 호황이 저축을 통한 투자가 아닌 비정상적 붐이었던 게 문제였다. 게다가 대출조건 완화를 통한 자가주택 보유확대 정책까지 겹쳐 집값이 치솟자 미국 정부는 금리 인상에 나섰고 그 결과 거품이 꺼지면서 불황이 야기된 것이다.
미제스는 사회주의는 손익계산에 필수적인 자본재의 화폐가격이 형성될 수 없어서 그런 체제는 불가능하며 결국은 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새뮤얼슨 등은 사회주의도 번영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1989년 동유럽의 사회주의와 옛 소련 붕괴는 미제스의 사상이 정확했음을 입증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죽었지만 간섭주의는 살아있다. 미제스는 이것도 유용한 체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시장에 대한 간섭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 때문에 또 다른 규제와 간섭을 불러오는 등, 결국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제3의 길 같은 중도(中道)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스웨덴과 독일 등 복지국가의 실패가 뚜렷하게 입증한다.
미제스는 국가의 특혜나 인허가 등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이 없다면 ‘독점’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시장경제는 경제력 남용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정부가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을 규제하면 이는 경쟁보호가 아니라 기업 활동의 발목만을 잡는 경쟁제한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미제스는 결코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다.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원칙에 관한 한 그에게 타협과 양보는 없었다. 오늘날 자유주의 이념이 살아있는 것은 그의 불굴의 투지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무릅쓰고라도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고 주택과 건강, 교육 문제에서 간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미제스와 같은 원칙의 자유주의자가 그리워진다. 자유주의 경제학이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미제스의 서거 40주년을 새기는 이유도 그런 그리움 때문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한국제도경제학회장 kwumin@hanmail.net >
한국경제신문 10월 21일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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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기업이 급속히 쇠락해 간다는 경고
한국 기업의 체력이 급속하게 바닥나고 있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이 연구소는 ‘위기 후 5년 한국 기업경영의 현주소’라는 보고서를 통해 과거 위기일수록 빛나던 한국 기업의 저력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경종을 울렸다. 외환위기 5년 뒤 기업 실적은 위기 전 수준을 상회했던 반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후 5년이 지난 최근의 기업 실적은 위기 당시보다도 악화됐다는 것이다.보고서에 따르면 734개 상장사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10년 7.4%로 위기 직전인 2007년 7.1%를 잠시 뛰어넘었지만 이후 2년 연속 내리막을 타더니 지난해에는 2008년(5.6%)보다 못한 5.2%로 곤두박질쳤다. 노쇠했다는 일본(5.8%)에도 뒤졌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더 큰 문제는 위기불감증이다. 연구소는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이번 위기에는 경제주체 모두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당장 정부부터 그렇다. 현오석 부총리는 엊그제 국정감사장에서 “내년 3.9% 성장 전망은 중립적”이라고 밝혔다. IMF(3.7%) 한국은행(3.8%)보다 높지만 결코 낙관적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론 최근 금융시장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올 들어 기업실적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대 그룹 계열 45개 상장사의 2분기 영업이익은 수치상으론 19.4% 늘었지만 반도체 효과가 컸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빼면 오히려 8.2% 감소했다고 한다. 웅진 STX 동양그룹으로 이어지고 있는 기업 부실 문제가 어디까지 불똥이 튈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년 성장 전망을 3.1%로 낮춰잡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물론 기업 활력이 떨어진 데는 위기시 몸을 사리는 기업 스스로의 문제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 불감증에다 반기업정서,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엄청난 규제야말로 기업 의욕과 체력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기업이 더 힘이 빠지기 전에 마음껏 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경제신문 10월 18일자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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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카젠버그의 웃음
‘슈렉’과 ‘쿵푸팬더’ 시리즈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울리고 웃긴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애니메이션 대표.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그에게는 ‘카리스마버그’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스티브 잡스가 그를 찾아와 “이 컴퓨터가 애니메이션의 미래”라며 꼬드기자 “애니메이션은 내 거야”라며 고함을 지른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은 내 딸과 데이트를 하겠다는 소리 같은데 이봐, 난 총을 갖고 있어. 내 걸 뺏어가려 하면 총으로 네놈의 거기를 날려 버리겠다고.”
세계 최고가 되려면 이쯤 배포가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카젠버그의 성공 비결을 연구한 사람들은 의외의 분석을 내놓는다. 그것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웃음 코드’였다. 뉴욕대를 2학년 때 중퇴하고 파라마운트사의 우편발송부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7년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것도 낙천적인 기질과 창의적인 업무 스타일 덕분이었다.
34세에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사장으로 스카우트된 뒤 업계 최하위권이었던 디즈니를 10년 만에 연매출 45억달러의 ‘황금알 거위’로 키우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의 디즈니 동료들은 “카젠버그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뭐든지 금방 배우는 낙천적인 사람이었다”고 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오직 현장 지식만으로 숱한 명작을 내놓은 배경도 마찬가지다.
아이스너 디즈니 회장과의 불화 끝에 ‘퇴출당하고 마음 속으로 칼을 갈던 시절’만 제외하고 그는 늘 웃었다. 훗날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드림웍스를 창업한 1994년을 회상하면서도 “한창 잘나가는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원했고 나는 직장을 얻었으니 최고의 궁합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익살의 힘이 ‘슈렉’ ‘쿵푸팬더’ 등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괴물이나 악당이 주인공이 되고 예쁜 공주가 때로는 난폭한 모습을 보이는 발상의 전환도 그의 유머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는 엊그제 세종대에서 대학생들과 만났을 때 “언제나 웃음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왔는데 ‘슈렉’이 그 대표작”이라고 소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도 “사람을 제외하고 가장 아름다운 건 웃음인데 전 아침마다 어떻게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고 했다. 1년에 700시간 이상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에너지의 원천도 ‘일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드림웍스의 우리말 뜻은 ‘꿈 공작소’다. 그곳에는 일과 놀이의 경계도 따로 없다고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10월 21일자 A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