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민의(民意) 그 자체라면 국정감사는 국정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 ‘민의의 축제’다.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 국회의원이 행정부 권력은 물론이고 독립성이 보장된 사법부까지 견제하며 성역 없는 감사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국회 국정감사(국감)가 지난 14일부터 시작됐다. 다음달 2일까지 20일간 진행되는 올해 국감의 피감기관은 사상 최대인 628개에 달한다. 전·월세 대책, 세법개정안, 기초연금 논란 등 민생 및 경제 활성화 분야로 감사 분야가 넓혀지면서 여야의 치열한 공방전도 예상된다. 사전 준비가 부족한 모습이나 막말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 등은 국감의 고질적 문제점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정전반 감시·비판 역할
국정감사는 의회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1689년 영국 의회가 아일랜드 가톨릭교도의 폭동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한 특별조사위원회가 그 효시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국정감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헌법에 규정됐다. 제헌헌법(1948년 7월17일 제정)을 시작으로 1952년 제1차 개헌부터 1969년 제6차 개헌까지 국감이 이어졌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헌법에 의해 국정감사권이 16년 동안 삭제되기도 했지만 1988년 다시 부활해 26년째 시행되고 있다.
국정감사권은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를 비롯한 여타의 국가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권한이다. 현행 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권한으로 국정 전반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헌법 61조 1항에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문화돼 있다. 현행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만큼 국정감사권은 국정 전반을 ‘성역 없이’ 감시와 비판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권한이기 때문에 그 상징성 또한 크다.
#공기업 방만운영 등 '단골메뉴'
대체로 정부의 비리와 여러 가지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해 국감이 실시된다. 국가기관, 특별시 및 광역시·도, 정부투자기관, 한국은행, 농수축협중앙회, 본회의가 특히 필요하다고 의결한 감사원의 감사대상기관, 일반기업 등이 국정감사 대상이다. 국정감사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국회는 관련 서류 제출, 증인 출석, 청문회 개최 등의 권한이 부여돼 있고 누구든지 이에 협조해야만 한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신앙과 같은 순수한 사적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들은 모두 국정감사 영역에 포함된다.
매년 시행되는 국정감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른바 ‘단골메뉴’가 있다. 방만한 공기업 운영, 금융권 관치문제, 진료비 과다 청구, 주식시장 개인 투자자들의 작전 피해 등이다. 특히 올해 국감에서는 주요 공기업들이 무리한 해외자원 개발과 부실한 일 처리로 수조원의 국가 예산을 낭비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나오면서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자력 등이 국감 도마에 올려져 있다. 그동안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일부 공기업은 “해외자원개발을 핑계로 방만한 경영을 하며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도로·교량·터널 등 사회기반시설 부족으로 인한 사고와 더불어 대형 환경오염 사고로 인한 책임자 문책 등도 매년 국감장을 장식한다. 올 국감에는 일반 기업의 임직원들도 줄줄이 증인으로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호통·질문 되풀이…고질병 여전
국감 중 국회의원이 감사 대상이 되는 기관에 질의할 때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해 아까운 국감 기간을 낭비하는 것은 국정감사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주관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2008~2012년 최근 5년간 진행된 국감에서 13개 상임위 모두 514개의 사안에 대해 1703회나 같은 내용의 질의를 반복했다고 밝혔다. 즉 1개의 사안에 평균 3.31회 반복해 질의한 셈이다. 상임위별로 살펴보면 보건복지위원회는 111개의 사안에 대해 369개의 같은 질의를 계속해 중복 질의 문제가 심각했다. 정무위도 55개 사안에 대해 188개 같은 질의를 반복했고 외교통상통일위는 54개에 186개 질의를 되풀이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관료들에 대한 감사가 주를 이뤄야 함에도 기업인을 호통치기 바쁘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국정감사장에 가장 많이 불려나오는 이들은 국정을 담당하는 정부관료가 아니라 기업인이다. 2011년 국정감사 증인 171명 가운데 35.67%인 61명이 기업인이었다. 2012년에는 347명의 증인 중 기업인이 145명(41.79%)으로 늘어났고, 올해 400여명 증인 가운데 절반이 기업인이다. 더욱이 증인으로 출석하면 2~3시간 대기시키고 질의시간은 1인당 5분을 채 넘기지 않는다.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은 2시간여를 대기한 뒤 부품 사용 관련 질문을 받고 10초 답변 후 국감장을 떠나기도 했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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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선진화법'…몸싸움 줄었지만 쟁점법안 처리는?
지난 16대부터 18대 국회까지 국회에서 격렬한 몸싸움은 12년 동안 31번이나 발생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성숙한 정치문화를 보여줘야 할 국회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는 몸싸움과 폭력이 뜸해졌다. 지난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는 데 있다. 그동안 쟁점이 되는 법안이 처리될 때마다 날치기 처리, 몸싸움 등 물리적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여야가 대립하는 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여야 간 의견 충돌이 심한 쟁점법안은 여야 동수로 안건조정위를 구성해 최대 90일간 논의하고 조정안 의결은 상임위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도록 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 간 합의가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돼 있어 사실상 원천봉쇄했다. 따라서 현재 국회의원 총 298명 중 과반인 153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몸싸움은 줄었지만 야당이 쟁점 법안을 안건조정위에 회부해 법안 처리를 90일간 묶어두면 회기가 100일 이내인 정기국회에서 사실상 여야 합의 없이는 상임위에서조차 여당의 단독 법안 처리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로 제정됐지만 쟁점 법안 처리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정전반 감시·비판 역할
국정감사는 의회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1689년 영국 의회가 아일랜드 가톨릭교도의 폭동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한 특별조사위원회가 그 효시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국정감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헌법에 규정됐다. 제헌헌법(1948년 7월17일 제정)을 시작으로 1952년 제1차 개헌부터 1969년 제6차 개헌까지 국감이 이어졌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헌법에 의해 국정감사권이 16년 동안 삭제되기도 했지만 1988년 다시 부활해 26년째 시행되고 있다.
국정감사권은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부를 비롯한 여타의 국가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권한이다. 현행 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권한으로 국정 전반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헌법 61조 1항에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문화돼 있다. 현행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만큼 국정감사권은 국정 전반을 ‘성역 없이’ 감시와 비판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권한이기 때문에 그 상징성 또한 크다.
#공기업 방만운영 등 '단골메뉴'
대체로 정부의 비리와 여러 가지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해 국감이 실시된다. 국가기관, 특별시 및 광역시·도, 정부투자기관, 한국은행, 농수축협중앙회, 본회의가 특히 필요하다고 의결한 감사원의 감사대상기관, 일반기업 등이 국정감사 대상이다. 국정감사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국회는 관련 서류 제출, 증인 출석, 청문회 개최 등의 권한이 부여돼 있고 누구든지 이에 협조해야만 한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신앙과 같은 순수한 사적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들은 모두 국정감사 영역에 포함된다.
매년 시행되는 국정감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른바 ‘단골메뉴’가 있다. 방만한 공기업 운영, 금융권 관치문제, 진료비 과다 청구, 주식시장 개인 투자자들의 작전 피해 등이다. 특히 올해 국감에서는 주요 공기업들이 무리한 해외자원 개발과 부실한 일 처리로 수조원의 국가 예산을 낭비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나오면서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자력 등이 국감 도마에 올려져 있다. 그동안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일부 공기업은 “해외자원개발을 핑계로 방만한 경영을 하며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도로·교량·터널 등 사회기반시설 부족으로 인한 사고와 더불어 대형 환경오염 사고로 인한 책임자 문책 등도 매년 국감장을 장식한다. 올 국감에는 일반 기업의 임직원들도 줄줄이 증인으로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호통·질문 되풀이…고질병 여전
국감 중 국회의원이 감사 대상이 되는 기관에 질의할 때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해 아까운 국감 기간을 낭비하는 것은 국정감사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주관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에 따르면 2008~2012년 최근 5년간 진행된 국감에서 13개 상임위 모두 514개의 사안에 대해 1703회나 같은 내용의 질의를 반복했다고 밝혔다. 즉 1개의 사안에 평균 3.31회 반복해 질의한 셈이다. 상임위별로 살펴보면 보건복지위원회는 111개의 사안에 대해 369개의 같은 질의를 계속해 중복 질의 문제가 심각했다. 정무위도 55개 사안에 대해 188개 같은 질의를 반복했고 외교통상통일위는 54개에 186개 질의를 되풀이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국정감사는 말 그대로 관료들에 대한 감사가 주를 이뤄야 함에도 기업인을 호통치기 바쁘다는 지적도 계속 나온다. 국정감사장에 가장 많이 불려나오는 이들은 국정을 담당하는 정부관료가 아니라 기업인이다. 2011년 국정감사 증인 171명 가운데 35.67%인 61명이 기업인이었다. 2012년에는 347명의 증인 중 기업인이 145명(41.79%)으로 늘어났고, 올해 400여명 증인 가운데 절반이 기업인이다. 더욱이 증인으로 출석하면 2~3시간 대기시키고 질의시간은 1인당 5분을 채 넘기지 않는다.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은 2시간여를 대기한 뒤 부품 사용 관련 질문을 받고 10초 답변 후 국감장을 떠나기도 했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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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선진화법'…몸싸움 줄었지만 쟁점법안 처리는?
지난 16대부터 18대 국회까지 국회에서 격렬한 몸싸움은 12년 동안 31번이나 발생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성숙한 정치문화를 보여줘야 할 국회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는 몸싸움과 폭력이 뜸해졌다. 지난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법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는 데 있다. 그동안 쟁점이 되는 법안이 처리될 때마다 날치기 처리, 몸싸움 등 물리적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여야가 대립하는 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여야 간 의견 충돌이 심한 쟁점법안은 여야 동수로 안건조정위를 구성해 최대 90일간 논의하고 조정안 의결은 상임위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도록 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 간 합의가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돼 있어 사실상 원천봉쇄했다. 따라서 현재 국회의원 총 298명 중 과반인 153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몸싸움은 줄었지만 야당이 쟁점 법안을 안건조정위에 회부해 법안 처리를 90일간 묶어두면 회기가 100일 이내인 정기국회에서 사실상 여야 합의 없이는 상임위에서조차 여당의 단독 법안 처리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로 제정됐지만 쟁점 법안 처리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