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국은 '규제 공화국'…해마다 1000건 '대못'
한국은 ‘규제공화국’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해마다 1000건씩 규제가 늘어난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100명당 한 건씩 부지런히 내놓는다. 지난 5년간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현실은 오히려 후진국 수준으로 뒷걸음질쳤다는 진단이 실제로 나왔다. 관료사회의 ‘규제 본능’ 탓에 남발된 규제가 ‘손톱 밑 가시’ ‘도로 위 전봇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각 부처가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한 규제 건수(시행일 기준)는 2008년 말 9753건에서 지난달 말 1만4977건으로 53.6% 급증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약 1000건씩 규제가 늘어났다”며 “이미 공포돼 시행을 앞둔 규제를 포함하면 지난달 1만5000건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규제 강도 갈수록 세져

규제 강도는 더 세졌다. 허가와 금지 등 ‘강한 규제’의 비중은 2009년 53.5%에서 지난해 54.5%로 높아졌다. 예를 들어 카지노업을 할 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허가를 받도록 하거나(새만금사업특별법) 지방대의 수도권 이전을 금지하는 것(수도권정비계획법) 등은 사전에 진입장벽을 만든다는 점에서 강한 규제에 속한다.

중앙 행정부처 공무원 1만명당 규제 건수는 2008년 192건에서 지난해 242건으로 26.0% 늘었다. 규제개혁 시스템이 부족한 지자체는 ‘규제 중독’ 수준이다. 지방공무원 1만명당 규제 건수는 1125건에서 1677건으로 49.0% 급증했다.

‘규제’란 ‘바람직한 사회질서를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기업과 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것’을 뜻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못 팔게 하는 것은 국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규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센 규제는 경제 활동을 옥죈다. 정부가 규제 개혁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전봇대 뽑기’를 외쳤고, 박근혜 정부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를 빼주겠다고 했다.

#경제규제가 더 심해져

지난 5년간 보건복지부에서만 규제가 385건 늘었다. 금융위원회(377건) 공정거래위원회(177건) 환경부(174건) 등도 부지런히 규제를 내놨다.

복지부와 금융위, 환경부, 고용노동부, 소방방재청 5개 부처가 전체 규제의 27.7%를 차지해 편중 현상이 지적됐다. 김 연구실장은 “노동과 금융 규제가 상대적으로 많은 게 특징”이라며 “이 분야의 국가경쟁력이 하위권인 이유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효율성이 중요한 경제 분야에서 규제는 더 심해졌다. 규제 강도에 따라 ‘약한 규제’(신고와 자료제출 등)부터 ‘강한 규제’(금지와 인가 등)까지 1~4점을 매긴 결과 경제적 규제의 강도는 평균 2.51점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규제(2.47점)나 행정적 규제(2.14점)보다 더 세다. 후진적인 규제에 속하는 ‘가격 규제’는 지난 5년간 188건(4.7%)에서 250건(5.0%)으로 늘어났다.

#'파킨슨의 저주' 끊으려면
왜 규제는 줄지 않는 것일까. 김 연구실장은 ‘공무원 수는 업무의 경중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늘어난다’는 파킨슨 법칙을 들었다. 그는 “정부는 관료 필요에 따라 확대되고, 규제는 공무원 권력과 연계돼 늘어나기 쉽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생리를 바꾸기 위한 규제개혁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공무원 규모와 규제 건수를 비교해도 드러난다. 중앙 행정부처 공무원 1만명당 규제 건수는 지난해 242건. 그런데 지방공무원 1만명당 규제 건수는 1677건으로 7배에 달했다. 중앙부처는 등록규제의 심사와 개혁을 전담하는 조직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에는 이 같은 시스템이 부족해 규제가 남발된다는 설명이다. 형식적인 규제일몰제도 문제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2010~2012년 8월 신설된 규제 가운데 존속기한이 설정된 것은 1.3%에 불과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규제 건수를 공무원 수에 연계해 제한하는 ‘규제총량 규제’를 제안했다. 영국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2010년 ‘기존 규제 폐지 없이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원인 원아웃(One In, One Out)’ 정책을 내놨다.

#1만5000건 전수 분석한 결과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이 평가한 지난 5년간의 규제 개혁 성과는 낙제점이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신설된 규제는 1650건으로 폐지된 규제 183건의 9배에 달했다. 내용을 봐도 규제 완화(75건)보다 강화(611건)된 것이 훨씬 많았다. 규제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돼 시행 중인 규제 1만4977건을 모두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각 부처는 소관 법령에서 규제가 생기거나 바뀔 때마다 이를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하고 있다. 김 실장은 “정부가 2009년 보이지 않는 규제를 발굴해 대거 등록한 것은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2010년 이후에도 규제 증가 속도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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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와 통제…자유주의자와 간섭주의자는?

[Focus] 한국은 '규제 공화국'…해마다 1000건 '대못'
규제는 곧 당국의 개입을 의미한다. 정부 규제와 간섭에 대해 크게는 두 가지 주의주장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간섭주의다. 자유주의는 시장이 결정하도록 놔두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간섭주의는 단기적 효과를 위해서라도 정부와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은 전통적으로 세이, 애덤 스미스, 바스티아, 미제스, 하이에크를 들 수 있다. 반대로 간섭주의 인물로는 가장 과격한 마르크스를 비롯해 비스마르크, 비버리지, 케인스가 포함된다.

바스티아와 미제스는 하이에크와 더불어 시장을 냉정하게 바라본 학자다. 바스티아는 불멸의 저서 ‘법’에서 정부의 개입은 언제나 장기적으로 개입 이전보다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이 읽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한 책이다. 폐병에 걸려 이른 나이에 숨진 천재적 저술가로 꼽힌다. 미제스는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와 간섭주의 등의 명저를 통해 정부의 통제경제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제자인 하이에크도 ‘노예의 길’에서 경제를 통제하는 조직이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지를 설명한다.

반면 케인스는 시장자유를 배제하지 않고 국가 개입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내놨다. 바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 그것. 국가가 재정정책 등을 활용해 적극 개입하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케인스의 간섭주의로 인해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주기적 실업사태가 빚어지고 있다는 공격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