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쓰는 논술] (20) 진화론과 사회적 진화론
▧ 들어가면서…

몇몇 사람들은 현대사회를 적자생존의 시대이며, 승자독식의 약육강식 구조를 지닌다고 말한다. 동물세계에 포식자와 피식자가 있듯이 사람들 사이에도 약자와 강자로 나뉘기 마련이며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의 대상은 손쉽게 확장되어, 국가 또는 문명들 사이에도 강하고 우월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칙과도 같은 일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것을 ‘사회적 진화론’이라고 한다. 사회적 진화론의 문제점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지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사회진화론자들이 논리적 기반으로 사용하는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심히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간에 그것이 당연히 인간세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쟁점들을 다룬 최근의 기출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2013 숙명여대 수시 (인문 3) : 서구문명의 우월성
2012 경희대 모의 : 진화론과 사회성
2008 경희대 수시 2-1 : 적자생존과 신자유주의
2008 연세대 모의 : 자연선택과 사회진화론
2008 숭실대 정시 : 진화론과 사랑


▧ 진화론에 대한 오해

사회적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찰스 다윈(1809~1882)이 내놓았던 진화론을 든다. 그의 저서 ’종의 기원’(1859)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확장 적용시키는 것이다.

2008 연세대 모의 <제시문 1>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즉 변화하는 다양한 생존 조건 아래서 유기체들의 구조는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개체적 차이를 나타낸다. 또한 유기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일정한 나이나 계절 또는 해에 극심한 생존경쟁이 일어난다. 이 두 가지가 사실이라면, 모든 유기체들이 서로에 대해서나 생존조건에 대해서 맺고 있는 관계가 무한히 복잡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인간에게 많은 유용한 변이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각 생물에도 그 자신의 번영에 유용한 변이가 일어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유기체에 유용한 변이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러한 특징을 가진 개체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가장 좋은 조건에 놓이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확고한 유전의 원리에 따라 그 개체들은 비슷한 특징을 지닌 자손을 낳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러한 보존의 원리 또는 최적자의 생존을 일컬어 나는 ‘자연선택’이라고 부른다. 자연선택은 각각의 생물을 그 유기적·비유기적 생존 조건과의 관계에서 개량함으로써 그것들을 진보로 이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단순하고 하등한 형태들이 그들의 단순한 생존 조건에 잘 적응되어 있다면 이 형태들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여기서는 진화를 이루는 기본적 메커니즘이 서술되어 있다. 진화라는 것은 유기체를 변화시키는 일정한 과정을 말하고 이 과정을 일으키는 힘을 다윈은 ‘자연선택’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위의 글에서 종의 ‘개량’이나 ‘진보’라는 말이 잘못 읽힐 여지는 있겠지만,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이런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1820~1903)였다.

▧ 사회적 진화론의 배경

19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생겨난 엄청난 빈부격차로 인해 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해진 상태였다. 부유층이 사치와 여가를 즐기는 동안 빈민층은 생존마저도 위협받으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억눌린 민중들의 분노가 혁명이라는 분출구를 통해 폭발하리라는 불안감 속에서 경제학자였던 스펜서는 사회적 불평등을 설명하며 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경제적’인 방법을 진화론에서 찾았다. 스펜서는 사회가 생물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면, 사회의 발달 과정 역시 생물들과 마찬가지의 진화과정을 답습할 것으로 여겼다.

스펜서의 주장은 당시 지배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가 말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법칙은 국내적으로는 불평등을 사회제도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능력과 운명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국외적으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의 정당성 근거로 훌륭히 작동했다. 스펜서는 생물학에 대해서는 무식했기 때문에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명확히 이해했다기보다는, 그저 생물학 이론들을 차용해 현실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럴듯하게 합리화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진화론에 대한 오늘날의 이해

사실 진화론만큼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널리 오해받고 있는 과학이론도 드물다. 얼마 전까지도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기린의 목이 긴 이유가 오랜 세월 동안 대를 거듭해가며 목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用不用說) 같은 이론도 다윈의 진화론을 오해한 비과학적 ‘과학이론’이다. 용불용설이 맞다면 팔씨름 선수의 체세포에는 그의 선대와는 다르게 그가 획득한 형질인 ‘강한 팔’이라는 유전정보가 기입되어야 하는데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이론은 생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는 방향성 없는 변화에 가까운 개념이지, ‘더 나은’ 혹은 ‘더 강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아래 제시문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2008 연세대 모의 <제시문 2>

자연선택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시베리아 지역의 경우,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털이 거의 없는 코끼리와 상대적으로 털이 더 많은 코끼리 가운데 후자가 생존에 유리했고, 일반적으로 이 무리의 코끼리가 더 많은 자손을 남겼다.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시베리아에는 진화를 통해 코끼리에서 유래된 자손, 즉 털이 난 매머드들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털이 난 매머드가 털 없는 코끼리보다 전체적으로 더 낫거나 전반적으로 더 우월한 것은 아니다. 매머드의 ‘향상’은 전적으로 기후가 추워진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털이 거의 없는 코끼리조상은 따뜻한 지역에서 여전히 더 유리하다. … 이러한 국지적인 적응의 어떤 면도 일반적 진보(이 모호한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든지)를 보증하지 않는다. 국지적인 적응이 더 복잡하게 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생물은 해부학적으로 단순하게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기생생물인 사쿨리나 성체는 따개비의 계통인데 숙주인 게의 배 밑에 붙은 무정형의 생식기관 주머니처럼 보인다. 이것은 분명히 (적어도 우리의 가치 기준으로는) 추악한 기관이지만 배 밑바닥에 붙어 물속에서 다리를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따개비 종류보다 해부학적으로 훨씬 단순한 형태이다.

환경이 생물에 진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계속 변해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어느 지역에서건 지역적인 환경변화는 지질학적 연대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일어난다. 바다에 잠겼던 곳이 육지가 되기도 하고 육지가 물에 잠기기도 하며 날씨가 추워지기도 하고 더워지기도 한다. 생물이 자연선택에 의해 그 지역의 환경변화를 따라가는 것이라면 그 지역생물의 진화적 변화도 당연히 무작위적일 수밖에 없다.


스펜서가 주장한 사회적 진화론의 논리는 여러 방면에서 다채로운 파장을 일으키며, 마치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인 것처럼 인정받게 되었다. 찰스 다윈은 아직도 피곤하다. 죽은 지 1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창조론자들로부터 공격받고 있으며 사이비 진화론과도 싸워야 하고, 사회적 진화론도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항변해야 하니 말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