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쓰는 논술] (19)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 창조적 파괴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 조세프 슘페터(Joseph A. Schumpeter)가 1942년 지은 책의 이름이다. 요제프 슘페터라고 읽기도 하고 미국식으로 조세프 슘페터라고 읽기도 하는데 어떻게 부르던 상관없다. 슘페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데 1906년 오스트리아 빈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관직과 요직을 역임하다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1932년 이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출간된 지 70년이 넘는 이 책이 고전의 반열에 이른 이유는 계급 모순과 그로 인한 정치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효과적으로 반박하였기 때문이고, 아울러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그 지속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경제학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책으로 언급되고 있고, 거의 모든 경제학 교과서는 슘페터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다수의 논술문제에도 등장한다.

2010 건국대 모의 - 창조적 파괴와 네거티비즘
2009 연세대 정시 - 창조와 파괴
2008 인하대 수시2 - 기업가 정신
2006 서울대 정시 - 경쟁의 공정성


▧ 객관주의·주관주의·절충주의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통해 접근해보자. 슘페터는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경제의 순환과정을 창조적으로 파괴함으로써 경제가 발전한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과정은 기술혁신을 의미한다. 기술혁신은 새로운 상품, 새로운 원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경영조직 등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것은 기업가이며, 그러한 노력의 이면에는 기업가가 손해를 보거나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뒤따른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여 성공할 때, 독점적 이익을 확보하게 된다. 기업가가 갖는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속성을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라고 한다. (출처 : 고등학교『경제』 교과서)

슘페터는 일단 ‘자본가’와 ‘기업가’를 구분한다. 자본가는 계급이지만, 기업가는 기능이다. 그리고 그는 ‘자본가’라는 말을 버리고 이 주체의 기능적 속성만을 경제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이 책에서 약 150페이지에 이르는 1부 전체를 마르크스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스승 마르크스’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를 놓고 충돌해 결국은 혁명을 통해 사회가 변화될 것이라 봤지만, 슘페터는 자본주의 안에 내재된 기능인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진화한다고 말했다. 마르크스와 슘페터의 이론을 비교하는 문제는 2009년 연세대 정시 논술문제에서 출제된 바 있다.

▧ 자본주의의 발전

건국대 기출문제의 제시문에는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과 사례가 보다 자세히 나와 있다. 여기서 ‘기술혁신’이란 과학기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유무형의 제도와 아이디어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다. 오늘날 ‘애플의 혁신’을 말하거나 ‘창조 경제’를 언급하는 것도 슘페터의 이론과 무관하지 않다.

슘페터에 따르면 발전을 이룩하는 추진력은 새로운 제품, 기존 제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 또는 다른 혁신을 도입하려는 기업가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그러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혁신에 따른 어느 정도의 독점력을 갖게 되어, 다음 세대의 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기업가에 의해 해당 제품이 대체될 때까지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진보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는 슘페터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19세기 초 중요한 혁신은 낮은 비용으로 미숙련 노동자를 이용하여 섬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보다 저렴하게 의류를 구입할 수 있게 된 소비자에게 기술 진보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중략)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 보다 최근의 예로는 소매업계의 강자인 월마트의 예를 들 수 있다. 소매업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업종이지만 실제로는 지난 몇 십년 동안 상당히 빠른 속도로 기술진보가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월마트는 보다 나은 재고관리, 마케팅, 인사관리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전통적인 소매업체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더 나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이런 변화는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 소비자와 이윤을 배당받을 수 있게 된 월마트의 주주들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자기 상점 근처에 월마트가 개점할 경우 이와 경쟁하여야 하는 소규모 구멍가게에는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창조적 파괴의 희생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존의 기업들은 새롭고 보다 효율적인 경쟁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곤 한다. 최초의 러다이트들은 정부가 새로운 섬유기술 확산을 억제하여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호해 주길 원하였다. 최근 들어 미국지역 소매업체들은 이와 유사하게 월마트가 자신들의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토지사용을 규제하도록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진입을 제한할 경우 기술진보 속도를 늦추게 하는 비용이 수반된다. 미국보다 진입규제가 더 심한 유럽의 경우 월마트와 같은 대규모 소매업체가 출연하기 어렵다. 따라서 소매업계의 생산성 성장도 훨씬 더디게 진행된다. (출처:맨큐,거시경제학에서)

대장간 화덕을 파괴하고 용광로를 창조하는 것, 역마차를 파괴하고 기차를 창조하는 것, 물레방아를 파괴하고 수력발전소를 창조하는 것 등을 보면 ‘창조적 파괴’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오래된 것을 부수며,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의 모습이 불안정과 변화라는 점은 마르크스의 말과 같지만 슘페터는 그 불안정과 변화로 인해 자본주의가 지속한다고 보는 것이다.

▧ 독점기업 옹호


슘페터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반박하기도 했지만, 애덤 스미스의 이론 또한 반박했다. 그는 특히 경쟁시장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독점시장의 폐해를 말한 스미스의 견해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데, 이 부분은 서울대 기출문제에 나온 적이 있다.

<제시문 3>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 형태의 경쟁이 아니라 신상품, 신기술, 신공급원, 신조직 형태 등과 관련한 경쟁이다. 이 경쟁은 비용 또는 품질에서 결정적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기업의 이윤이나 생산량의 다과(多寡)를 좌우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토대 및 생존 자체까지 좌우한다. 이런 종류의 경쟁은 다른 경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어떤 사업자가 자기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외부에서는 경쟁압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늘 경쟁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결국 완전경쟁 상태와 마찬가지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경쟁이 독점보다 언제나 바람직하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적인 혁신자가 차지하는 독점이윤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슘페터는 독점에 대한 전통적 이론에 수정을 가하여, 독점기업도 잠재적인 경쟁자와 신기술 등 혁신을 둘러싼 경쟁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이른바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사회경제 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독점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장을 규제하고 경쟁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이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슘페터의 이론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론을 입맛에 맞게 발췌해서 소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그는 자본주의의 지속성을 인정하면서도 영원히 지속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 자본주의는 살아남을까

교과서에 소개되지 않는 부분은 책의 후반부이다. 그는 거대 기업의 출현을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로 가는 징후 정도로 보았다. 또한 이러한 사물의 변화에 의해 인간의 정신도 점차 사회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슘페터는 사회화의 전진으로 사회주의의 가능성도 그만큼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변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와 관료가 주역을 담당하지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즉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를 사멸시키는 것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합리주의이다. 이렇게 봄으로써 그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실패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공에 의해 사멸하고 그 자리를 사회주의에 내어줄 것이라는 역설적 주장을 전개했다. 굉장히 먼 미래예측에 해당하는 이런 내용은 논술문제로는 출제되지 않으니 참고로만 알아두자.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