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피레프트와 논술문제

[아는 만큼 쓰는 논술] (17) 카피레프트
학생들은 주로 정보화 사회에 대한 교과학습시간에 카피레프트(copyleft)의 개념을 접했을 것이다. 카피레프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피라이트(copyright)를 알아야 한다. 둘은 본질상 다르다. 카피라이트는 현존하는 권리이고, 카피레프트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피레프트 주장이 나온 시점이 정보화 사회 도래와 맞물렸기 때문에 중요한 듯 보여도 이 주장이 반드시 정보화 사회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카피레프트를 다룬 논술문제는 ‘법과 정치’를 배운 학생들이 더 잘 푸는 경향이 있다.

2012 단국대 수시 - 2번 문제 : 지적재산권 제도의 필요 여부
2010 항공대 수시 - 1번 문제 :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2008 서강대 수시 (커뮤니케이션/사회과학부) - 2번 문제 : 카피레프트 선언의 취지
2008 서울대 예시 1차 - 문항 1 : 정보의 성격과 카피레프트

▧ 용어 이해하기

카피라이트니 카피레프트니 금시초문인 학생들도 문제를 얼마든지 풀 수 있으니 걱정 말자. 논술문제는 언제나 제시문을 통해 설명을 해주고 시작한다. 아래는 2008 서울대 예시문제의 제시문이다.

‘카피라이트(copyright)’는 지적 재산권이라는 뜻이다. 카피라이트 제도 아래에서는 저작자, 작곡가, 기타 창작자의 동의 없이는 창작물을 복제하거나 방송할 수 없게 된다. 이 제도는 창작자의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줌으로써 창조 의욕을 높이고 그에 따라 생산되는 정보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작자에게 배타적 독점적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있다.

‘카피레프트(copyleft)’란 ‘카피라이트’와는 정반대 개념으로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말한다. 1984년 미국 MIT 컴퓨터학자 리처드 스톨먼이 소프트웨어의 상업화에 반대해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하자는 운동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스톨먼은 인류의 지적 자산인 지식과 정보는 소수에게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작권으로 설정된 정보의 독점을 거부했다. 그러나 카피레프트 또한 창조의욕 저하와 품질 하락 등의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학생들은 먼저 ‘지적 재산권’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법과 정치를 배운 학생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담고 있는 권리를 재산권이라 하고, 크게 물권과 채권으로 나뉜다. 복잡하게 들어갈 것 없이 재산권의 핵심은 어떠한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지적 재산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물건이 아닌 정보를 소유한다는 점에서 카피라이트는 좀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물건에 대한 지배, 처분, 양도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보라는 대상은 사람이 그것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문제의 다른 제시문을 보자.

정보의 특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다.

① 정보는 남에게 전하거나 판매를 해도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② 정보는 대량생산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의 정보로써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③ 정보를 다른 정보와 합치거나 그 일부를 빼거나, 형태를 바꿈으로써 얼마든지 새로운 정보로 바꿀 수 있다. -고등학교 『도덕』

(나)에서는 정보가 무한복제 되고, 필연적 독점이 발생하며, 쉽게 변형될 수 있다고 그 특징을 밝히고 있다. 결국 정보는 자연적 제약을 받지 않기에 소유의 한계에서 벗어나 있으며, 하나로써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쉽게 변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소유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어려운 특징을 보이게 된다. 정보라는 특수한 상품은 재산적 가치는 있지만 기존의 재산권 개념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필요하지 않으며, 정보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카피레프트의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흔히 공기를 예로 든다. 위 제시문 (나)의 문장들의 주어를 모두 ‘공기’로 바꾸어보자. 공기는 전달하거나 팔아도 줄어들지 않고, 한 줄기 공기로 모든 수요를 충족시키며, 공기는 다른 공기와 합치거나 빼내도 얼마든지 새로운 공기로 바뀌지 않는가. 그래서 공기를 돈을 받고 팔 수 없듯이 정보를 돈을 받고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카피레프트 주장자들의 논거가 이 뿐만은 아니다. 저작자는 자신이 새로운 정보를 창출해냈다고 하지만 그 결과물이 100 퍼센트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일까? 비틀즈의 노래 가사는 폴 매카트니에게 저작권이 있지만 그 가사 속에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있고, 그리스로마신화의 문장도 있고, 성경의 문장도 있다. 그런데 왜 매카트니는 우리에게 저작료를 거둬가면서 과거의 창작자들에게는 돈 한 푼 지불하지 않는가라고 따진다. 그는 아마도 사도 바울이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았음을 주께 감사하며 “저리로 불법다운로드를 받은 자와 돈 주고 산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저작권협회를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됨을 고마워 할 것이다.

▧ 무엇을 선택할까?

카피레프트의 주장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다 보니 필자가 약간 치우친 경향이 있긴 한데, 카피라이트가 그저 저작자들을 부자로 만들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식재산권의 존재 이유에도 충분히 설득력은 있다. 저작자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그들의 노력에 보상은 반드시 필요하고, 이러한 보상이 유인동기가 되어 정보의 질을 높이고, 양을 풍성하게 하는 사회적 순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각종 저작권 침해와 불법 복제가 만연한 현재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지적 재산권의 보호 장치가 없다면 일반적으로 개발자, 창작자들의 의욕은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며, 관련 산업의 낙후는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무난한 수험생의 견해 정립은 지적 재산권의 권리 범위를 카피레프트의 주장을 활용해 적절히 제한하는 절충적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저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되, 1) 저작권의 시한을 정해 그 기한 이후에는 공동의 정보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 그리고 2) 상업적 복제와 판매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그 정보의 사용을 제한적으로 허가하는 것, 3) 지도나 국어사전, 백과사전, 교과서 등과 같은 기능적 저작물 등은 자유로운 열람과 복사가 가능하게끔 하는 것 등이 절충점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카피라이트를 옹호한다거나 카피레프트만을 지지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다. 논리적 근거만 충분하다면 어떤 방향의 선택도 충분히 좋은 답이 될 수 있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