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자유주의 수호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

[경제사상사 여행] “민주주의도 자유 위협…헌법으로 정부 권력 제한해야”
유럽 대부분 국가가 왕이나 귀족 중심의 중앙집권 관료가 지배하던 19세기 초반, 자유에 목숨을 걸고 자유주의를 수호하겠다고 나선 인물이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토크빌이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할아버지와 부모가 폭정의 제물이 되는 등 독재로 인한 끔찍한 경험 때문이었다. 프랑스 사회가 갈 길은 자유주의라고 선언하면서 모국에 필요한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비전이라고 믿었다. 유럽은 미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비전을 찾기 위해 그는 미국 여행길에 나섰다.

26세의 젊은 토크빌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목격한 건 신분에 따른 법적 특권이나 차별이 없는 수평적 사회였다. 신분적 차별을 핵심으로 하는 귀족 사회에서 자란 그에게 그런 사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느 누구도 어느 집단도 다른 사람의 신분을 결정할 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미국의 정의였다. 토크빌은 특권이나 신분적 차별이 없다는 의미의 평등이 지배하는 사회가 진정으로 자유주의의 참모습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토크빌은 그러나 신분적 차별이 없는 평등과는 달리 서로 다른 사람을 똑같이 만드는 평등은 자유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사람을 같게 만드는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자유에 대한 유럽인의 희망이 공허하게 됐고 자유를 향유할 절호의 기회를 상실했다고 개탄한다. 젊은 토크빌을 흥분시킨 것은 정부 규제 없는, 자유로운 미국인들의 상업 활동이었다. 가격을 통해 자유로이 형성되는 시장관계는 노예와 주인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이기에 서로가 적대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혁명과 계급갈등만을 봐온 그에게 자유사회야말로 평화의 질서임이 확실했다.

미국 기업들이 자유로이 이윤 추구에 몰두하는 모습이 통제와 간섭의 경제만을 봐온 그에게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그가 미국의 자유경제에서 발견한 것은 미국인들의 기업가정신이었다. 모험심과 혁신을 통해 자신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부단한 노력, 거래를 통해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한 활동 등은 토크빌에게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하게 보였다.

자유로운 미국사회에서는 신분 평등이 바탕에 깔려있기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을 개선할 수 있었고 부자도 될 수 있었다. 이게 토크빌이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미국 사회 시스템에선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자에 대한 시기나 질투도 없고 사회주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고 토크빌은 주장한다.

[경제사상사 여행] “민주주의도 자유 위협…헌법으로 정부 권력 제한해야”
토크빌은 사람들이 늘 동경하는 물질적 쾌락을 스스로 얻기 위해 경제자유가 중요하다는 걸 도덕적으로 설명한다. 상업은 인간을 독립적으로 만들고 인격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스스로를 타인들에게 유익하게 만드는 것을 의무이자 자신의 관심으로 여기는 것도 상업이라는 게 시장에 대한 그의 윤리적 인식이다.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국가나 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미국 개인주의의 핵심이라는 토크빌의 설명도 탁월하다. 미국인은 공동체정신도 없고 오직 물질만 챙기는 이기적 인간이 결코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사례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한 게 한두번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미국인은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기부를 통해 공공복지를 실행하거나 도서관을 짓는 등 공동체 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석하면서 그게 자유 사회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유는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유덕하게 만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토크빌이 미국 방문에서 놀랐던 것은 선조들이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자유롭게 개발해 전수한 종교나 전통, 법과 권리 등 그런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들을 존중하는 미국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것들은 자유를 침해하는 게 아니라 자유의 산물이요, 자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토크빌의 인식도 탁월하다.

미국인의 낙관과 자신감, 공동체감 등 무제한적 이기심을 억제하는 도덕과 도덕적 사회화 과정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시민정신을 고양시켜 이기적이고 원자적인 인간성을 극복했다는 게 토크빌의 미국문명 해석이다. 그가 직시한 건 그런 문명을 가능하게 한 미국인의 자유 사랑과 존중이었다.

토크빌은 이 같은 인식 아래 좋은 정부란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평화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정부라고 선언했다. 소득의 급격한 증대와 빈곤의 해소 등 성장하고 번영하는 미국사회 힘의 원천도 자유시장과 분권화, 제한된 정부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자유주의에서 인류 번영의 강력한 힘을 보았다. 자유를 사랑하는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희망이라고, 그래서 인류의 미래는 미국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며 미국 여행의 끝을 맺는다.

흥미롭게도 토크빌은 공동체정신으로 무장된 계몽된 이기심, 전통과 종교, 관습과 같은 자생적 질서, 제한된 정부 등으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는 이기심과 합리성, 원자적 인간 등을 전제로 한 프랑스(대륙) 전통의 자유주의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대신 애덤 스미스 등 영국 전통의 자유주의를 계승․발전시키는 데 매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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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기부문화 일깨워⋯‘토크빌 소사이어티’ 창설

토크빌 사상의 힘

[경제사상사 여행] “민주주의도 자유 위협…헌법으로 정부 권력 제한해야”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자유주의 사상은 반자유주의의 등장을 억누르고 자유 사상을 확산하기 위한 중요한 지적 무기였다. 그는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그들의 운명을 돌보겠다고 나서는 온정주의의 탈을 쓴 복지국가는 저주의 대상이 될 거라고 단언한다.

흥미로운 것은 집단적 의사 결정으로 이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토크빌의 생각이다. 토크빌은 다수의 지배도 소수나 절대자의 지배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비판한다. 자유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다수가 지지하는 견해는 늘 옳고, 그래서 그 견해는 보편타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민주 정부도 다른 형태의 정부와 똑같이 제한돼야 한다는 게 토크빌의 결론이다. 그의 사상은 정부를 우리 손으로 뽑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던 좌파사상의 논리에 치명타를 안겼다. 그러나 토크빌은 19세기 말 이후에는 잊혀졌다. 사람들은 비스마르크의 등장으로 미국이 미래를 장악하리라는 그의 예측이 빗나갔다고 여기고 독일이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현대적인 복지국가를 최초로 확립, 세계의 눈은 독일의 리더
십을 바라보고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인류 구원’이라는 믿음으로 사회주의는 세계로 뻗어갔다. 자유주의는 몰락했고 토크빌의 사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파시즘 나치즘 등 가혹한 폭정을 불러왔다. 그 이념은 20세기 동안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복지국가는 조세와 규제로 수억명의 인구를 빈곤과 부자유로 속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는 노예의 길이라고 예측해 적중시킨 하이에크가 20세기 중반 등장, 자유를 사랑하는 미국이 인류의 희망이라고 예측한 토크빌을 잠에서 깨운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도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으로서 토크빌 사상의 탁
[경제사상사 여행] “민주주의도 자유 위협…헌법으로 정부 권력 제한해야”
월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민주정부라도 정부의 권력은 헌법을 통해 제한해야 한다는 헌법주의의 등
장은 그의 강력한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사회의 기부문화와 자본주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1984년 설립한 ‘토크빌 소사이어티’다. 빌 게이츠를 비롯해 1년에 1만달러 이상 기부하는 회원만 수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자선단체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