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일자리 정책, 기본으로 돌아가자

일거리가 있어야 일자리도 생겨
중국에 제조업 다 뺏긴 상황에서 교육·의료 영리법인화 고려할 때


[오피니언] 일자리 정책, 기본으로 돌아가자
현대 분업사회의 사람들은 각자 생활에 필요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면서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일에 종사하며 살아간다. 시장 거래는 그 구체적 모습이다. 분업사회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 전체를 서로 분담해 조직적으로 수행한다.

현대사회의 일거리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인데,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일을 했거나 하고 있다. 내가 남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위해 일해주지 않는다. 시장경제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지 않은 지 오래인 사람은 살아남기 어렵다. 자급자족 사회가 일하지 않는 베짱이를 용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자리는 일의 성과가 팔리는 일거리에서 나온다. 따라서 일자리 정책은 일의 성과를 사갈 사람이 있는 일거리를 찾고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또 이 일거리에서 나오는 일자리를 해외의 구직자들이 탈취해 갈 수 없어야 한다.

기업의 성패는 제품이 잘 팔리는 일거리를 찾아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기업이 계속해서 좋은 새 일거리를 잡으면 번성하지만 새 일거리 창출에 실패하면 결국 쇠락하고 만다. 스스로 창출능력이 없는 기업은 남의 일거리를 부당하게 빼앗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방치되면 창출 의욕은 위축되고 나라 경제도 침체한다. 남이 개발한 일거리의 편취 행위를 적극 단속하는 일은 정부의 책임이다. 기업들이 스스로 좋은 일거리를 개발해 내는 환경을 보장해야 일자리 창출은 극대화된다.

기업이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창출하는 일거리의 최대치를 합한 것이 나라 경제가 가질 수 있는 일거리의 상한이다. 정부가 무능한 기업을 유능하게 개조하겠다고 나서면 규제나 남발해 기업의 성공을 훼방하는 꼴로 되기 십상이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규제 정비와 남의 일거리 부당 탈취 근절을 기조로 하면서 일거리와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알선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사람들이 환영하는 신상품 일거리는 대부분 창의와 혁신을 통해 개발된다. 그러므로 창의와 혁신에 성공하는 기업이 많으면 일자리도 그만큼 많이 늘어난다. 다만 창의와 혁신은 결코 쉽지 않고 장기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단기간에는 고용을 늘리는 효과도 작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의 일거리는 창의·혁신보다는 주로 선진국에서 개발한 상품을 더 싸게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자리는 우리보다 더 싸게 만드는 중국이 등장하면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조선산업의 경우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 쇄빙선, 그리고 고성능 해상 구조물 등 우리 기술이 개발한 첨단 상품을 제외한 일거리는 모두 중국에 넘어갔다. 이것이 추세이므로 단기적으로는 제조업이 주도하는 고용 확대는 비관적이다.

공산품은 해외 제품을 수입해 소비할 수 있지만 서비스 소비는 공급 현장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원하는 서비스를 국내에서 찾지 못하는 우리 국민들은 해외 공급자를 찾아 줄줄이 밖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의 교육열은 자녀 교육이라면 모든 것을 던진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기관만 나타난다면 사업체로서 크게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로 요약되는 교육 규제는 엉뚱하게 기러기 아빠만 양산했다.

기러기 가족의 조기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받는 수준의 교육 정도는 국내 교육 능력으로도 충분히 감당한다. 약 2만명에 이르는 조기 유학생들을 국내에 유치한다면 20개 정도의 학교가 새로 설립될 것이고 고용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 일자리는 저임금 중국 노동자가 탈취해 갈 수도 없다.

교육뿐만 아니라 의료와 관광도 마찬가지다. 국내 수요만으로도 관련 산업 수익성을 충분히 보장하기 때문에 안전한 일자리 창출 전망은 지극히 밝다. 그러나 교육 부문의 규제와 유사한 규제가 이들 서비스 공급을 억누르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얻지 못한 구매력은 해외로의 탈출을 계속하는 중이다.

교육과 의료의 영리법인화 문제는 대표적인 ‘부자위주 서민홀대’ 정책으로 치부돼 정치·사회적으로 배척당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 부자들이 과연 서민과 같은 평준화 서비스를 받고 있는가? 오히려 해외의 고급 서비스를 찾아 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일자리만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8월 12일자 A34면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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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바마는 삼성에 대한 ITC결정도 거부해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애플의 일부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제품의 수입금지를 최종 판정했다. 문제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결정이다. 그는 얼마 전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애플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라고 했던 ITC 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해 공정성 논란을 빚었다.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믿고 싶지 않지만 벌써 현지 업계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삼성전자 제품의 수입금지 판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도는 모양이다. 이렇게 된다면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공정성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미 정부가 자의적 권한 행사로 특허소송을 보호무역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세계적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침해한 삼성전자 특허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 특허사용 허가를 내줘야 하는 이른바 ‘프랜드(FRAND) 조항’이 적용되는 표준특허여서 삼성의 애플 상용특허 침해와는 경우가 다르다고 말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ITC가 삼성이 침해했다고 인정한 애플의 두 가지 특허 중 애플이 중요하다고 꼽는 휴리스틱스를 이용한 그래픽 사용자 환경 관련 특허야말로 이미 미 특허청으로부터 무효라는 예비판정을 받은 상태다. 무효가 될지 모를 특허 침해를 이유로 바로 수입을 금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명백한 과잉 조치다. 게다가 무효 가능성이 높은 특허는 보호받고 정작 특정기술의 구현에 필수적인 표준특허는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는 오히려 혁신에 역행하는 처사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특허소송 과정에서 남발되는 수입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애플 제품의 수입금지에 거부권을 행사할 때도 “미 경제의 경쟁 여건과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수입금지 남용이 경쟁에도, 소비자에도 해가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가 삼성 건에도 적용돼야 할 것은 당연하다. 애플의 가장 큰 경쟁자가 바로 삼성전자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삼성에 대한 ITC 결정도 거부해야 마땅하다. 한국경제신문 8월 12일자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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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장은 늙어가고, 기술력은 쫓기고…

한국 제조업이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고 한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섬유(42.7세) 철강(42.3세) 조선(42.2세) 기계(41.2세) 등 전통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나이가 지난해 이미 40대에 진입했다. 사무직을 빼고 생산직만 따지면 훨씬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생산직 평균 연령이 50세를 훌쩍 넘는 공장들이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제조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제조업인력의 고령화로 한국에 밀리기 시작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당장 생산현장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다. 그렇지만 대안을 찾기도 여의치 않다. 젊은이들은 지방공장 근무를 꺼리고, 경직된 노동시장 탓에 신규 채용도 어렵다. 정치권의 정년 연장 압박에다 인력 구조조정이 사실상 막혀 있는 점도 기업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게다가 자동화 등 공정 개선은 곧바로 강성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 일쑤다.

신규투자가 일어나면 고령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 역시 맘대로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젊은 인력이 원하는 수도권 지역은 규제 때문에 공장 증설마저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환경 안전 등과 관련한 온갖 규제를 통과하려면 언제 공장을 새로 지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업들로서는 동남아 등 해외로 나가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제조업은 기술까지 위협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주요국의 120개 국가전략기술을 대상으로 분석한 ‘2012년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의 턱밑까지 바짝 추격해왔다. 2010년 2.5년이던 한·중 기술격차가 1.9년으로 단축된 것이다. 잘나가는 스마트폰만 해도 이제는 중국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더구나 미래기술 중에는 오히려 중국이 우리를 크게 앞선 것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한마디로 노동, 투자, 기술 등 전 부문에서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한국 제조업은 이대로 추락하고 말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8월 14일 A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