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의 교양] (14)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서양 철학사는 흔히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와 현대로 나뉩니다. 물론 각 시대의 구분점은 상당히 가변적입니다. 고대와 중세의 경계, 근대와 현대의 경계는 흐릿해서 구분하는 사람마다 말이 다를 정도니까요. 그나마 고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기준은 확실한 편입니다. 근대철학의 시작점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비교적 광범위한 합의점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자 앤터니 플루의 말을 들어볼까요?

“철학의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는 일은 언제나 그리고 피할 수 없이 다소 인위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 가운데 가장 덜 자의적인 것 하나는 고대 철학과 중세 철학에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근대 철학이 데카르트(1596~1650년)와 더불어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방법서설』이 출판된 1637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간결하고도 기막힌 선언문은 모든 점에서 앞으로 다가올 것들의 전조였다.”
-로버트 C. 솔로몬, 캐슬린 M. 히긴스, 『세상의 모든 철학』에서 재인용


근대철학의 출발점에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가 쓴 『방법서설』이라는 책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데카르트는 1596년 태어나 1650년 죽었습니다. 이 생몰연대는 꽤 중요합니다. (사실 모든 철학자가 그렇듯) 그의 사상은 그가 산 시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대의 변곡점을 산 사람입니다. 그가 살던 시기는 그야말로 모든 게 변화하던 때였습니다. 근대과학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유럽은 세계 전역에서 지리상의 발견을 거듭하며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는 종교 영역에서 일어났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가톨릭 교회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구교(가톨릭)와 신교(프로테스탄트) 사이의 극심한 갈등을 가져왔습니다. 그 갈등의 정점이 바로 구교와 신교 간의 전쟁인 30년 전쟁입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일생을 이 전쟁 속에서 보냈습니다. 30년 전쟁은 그가 22세가 되던 해(1618년)에 일어나 그가 죽기 2년 전(1648년)에 끝났으니까요. 그만큼 이 전쟁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철학자 강유원은 30년 전쟁과 데카르트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 데카르트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30년 전쟁 시기에 자신의 사색을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규범과 질서가 무너지고, 기존의 공동체가 해체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율적인 상태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30년이나 이어진 긴 전쟁의 끝은 ‘종교의 자유’ 였습니다. 구교든 신교든 자유롭게 믿자는 합의를 본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진보였지만 당시 사람들은 큰 불안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 가톨릭 교회가 담보했던 보편적 진리라는 게 사라져 버린 것이니까요. 본래 자유는 불안을 끼고 오는 법입니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그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이라는 사회심리학자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유와 함께 몰려오는 회의와 불안, 책임감 등을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자유를 회피하는 경향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죠. 여담이지만 차라리 독재 시절이 낫다는 말이 종종 들리는 데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인 듯싶습니다. 어쨌든 30년 전쟁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안정적인 세계는 끝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30년 전쟁이 가져온 불안과 불확실성에 맞서 또 다른 확실성의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유럽인들은 가장 확실한 것은 찾기 시작했고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가장 분명하게 대답한 사람 중의 하나가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확실성의 탐구인 것입니다.”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물론 데카르트는 확실성을 찾기 위해 다시 중세 가톨릭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그가 근대철학의 아버지일 수는 없죠. 그는 이제 확실성을 신에게서 찾지 않고 도리어 인간에게서 찾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데카르트의 가장 찬란한 업적입니다. 신으로부터 인간을 독립시킨 것이니까요.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갈대처럼 쉽게 변하는 인간이 어떻게 확실성의 근원일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가 확실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우선 그는 모든 것을 다 의심하기로 합니다. 일부러 의심하는 것입니다. 일단 의심부터 해보고 조금이라도 불확실해 보이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식이었죠. 그는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 너무나도 자명해서 어떠한 회의도 불가능한 것, 그것이야말로 진리요 확실성의 근거이다! 이렇게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의심이라고 해서 이를 ‘방법적 회의(methodical doubt,方法的懷疑)’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데카르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이제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앞에서 했던 것과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여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 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기하학적 문제에 있어서조차 추리를 잘못해 오류 추리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전에 증명으로 인정했던 모든 근거를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렸다. 끝으로,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 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데카르트, 『방법서설』

그는 모든 걸 의심합니다. 일단 감각이 미심쩍습니다. 바닷물은 멀리서 보면 파란색이지만 막상 가까이 가 보면 투명하죠. 시각이 우릴 속인 것입니다. 감각은 신뢰할 만한 진리획득 수단이 아닙니다. 수학적 진리 또한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곧잘 계산을 틀리는 등의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마저 부정해 버립니다. 우리의 꿈도 현실만큼 생생하기 때문이죠. 현실이 꿈이 아니라고 누구도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데카르트가 진짜로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를 찾기 위해 의심 가능한 모든 것은 다 진리의 영역 바깥으로 몰아냈을 뿐입니다. 이렇게 모든 걸 의심하고 부정하다 보니 불현듯 절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바로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었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 명제를 통해 존재의 확실성을 신이 아니라 인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 인간(의 이성)이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바야흐로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자 지배자가 되는 근대가 활짝 열리게 됐습니다.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살펴보겠습니다.)

김영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ysjad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