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술 주제로서의 역사

[아는 만큼 쓰는 논술] (8) 역사 인식을 둘러싼 문제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역사 파트는 논술 주제로서 출제 빈도가 낮은 편이었다. 경제나 철학 파트에는 다양한 세부 쟁점들이 산적해 있고 그것을 통해 학생들의 사고력을 평가하기 좋았다면 역사는 암기과목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생들의 역사 지식 및 역사의식 약화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점점 ‘핫(hot)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시험에 자주 나오건 아니건 학창시절 교과목 중 어른이 되어서도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과목은 여전히 역사일 것이다.

논술 시험에서는 ‘지식으로서의 역사’는 출제되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사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정조의 개혁정치는 조선 후기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런 것들은 국사시간에 배우면 족하다. 논술에서 묻는 것은 ‘역사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이다. 즉 역사 인식의 방법론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이것들을 다룬 기출문제를 살펴보자.


2013 고려대 모의 (1번 문제) : 사실과 해석
2011 한양대 모의 2차 (상경계) : 역사의 상흔을 대면하는 역사가의 자세
2010 가톨릭대 수시 : 사극과 교과서에 나타나는 역사왜곡
2010 상명대 수시 : 역사 인물의 영웅화 문제
2007 이화여대 수시 1차 (5번 문제) : 역사 수정주의



▧ 객관주의·주관주의·절충주의

역사연구에 관한 주관주의, 객관주의, 절충주의는 역사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기본 틀이다. 각 관점의 이해를 위해 2013년 고려대 모의문제 1번 제시문 중 일부를 정독해보자.


1 19세기 근대 역사주의를 주창한 랑케(Leopold von Ranke)는 이전의 자의적인 역사 연구와 서술을 부정하고 엄격한 사료 비판에 근거한 객관적 서술을 지향하여 역사학을 과학의 경지로 끌어올리려고 하였다. 그는 17~18세기를 통해 발전되어 온 사료 비판의 방법을 종합하여 본격적인 역사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는 고문서 자료 등 1차 사료를 더 신뢰하면서 이를 면밀히 분석하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눈으로 당시를 바라볼 수 있다고 믿었다. 즉 과거에 ‘사실(fact)’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므로, 역사가는 그것이 기록된 문서를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역사가는 사료의 언어를 감정이입을 통해 이해함으로써 과거를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해, 콜링우드(Robin Collingwood)는 역사적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자료를 객관적으로 수집하고 탐구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과학이라면 역사는 이러한 과학과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이라는 과거는 역사가에 의해 구성되고 그 의미 또한 역사가에 의해 부여되기 때문이다. (중략) 역사가가 알 수 있는 과거는 사료를 통한 것이 전부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과거에 대해 매개적이고, 추정적이며, 간접적인 인식 이상을 가질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해 역사적 사실은 항상 오염되어 있어서 과학적 객관성을 획득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중략) 명백한 증거를 기초로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파악되는 역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는 역사가의 의식 속에서 재구성될 뿐이다.

카(E. H. Carr)에 따르면 역사가는 ‘가위와 풀의 역사’, 다시 말해 단순히 과거 사실을 기계적으로 편집하는 역사를 쓰거나,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 사실을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오류를 모두 피해야 한다.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간의 관계에서 역사가들은 외견상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즉 역사가는 무게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현재에 두는 역사관 사이에서 위험하게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보기보다는 덜 위태롭다. 역사가는 사실 앞에 비천하게 무릎 끓는 노예도 아니고, 사실을 지배하는 폭군적인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 사실 사이의 관계는 평등하다. 즉 주고받는 관계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이고,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단순화시켜 보면 역사적 사실이 먼저냐 역사가의 해석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주관주의자들은 역사학을 독립된 학문분과로 이해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콜링우드 본인의 본업은 철학자였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과거의 사실을 무슨 수로 복원할 수 있느냐, 결국 해석만이 남을 뿐이라는 것이 주관주의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역사 연구가 연구자의 감상이나 가치관에 좌우되는 낭만적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에 랑케의 실증주의적 역사학은 역사가 어떤 정치적 의도를 담은 채 기술되는 것을 거부하여 역사 자체의 독립성을 세웠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는 과거의 사실을 복원할 수 있다고 보고, 얼마나 객관적으로 복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해석은 불필요한 첨가물이 될 뿐이다. 하지만 실증주의 역사관도 오래지 않아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당파성과 무관할 수 없다는 역사학 자체에 내재한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무수한 개별적 사실 가운데 어떤 것이 역사적 가치가 있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결국 역사가의 가치관에 달린 것이다.

이어 출현한 절충주의는 사실과 해석을 조화롭게 긍정한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반반씩 섞는 그런 절충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 복원을 전제하고 그 위에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인 절충이다. 이러한 경과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결론적으로는 절충주의가 옳다고 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읽는 역사서와 역사 교과서 또한 절충주의의 전제 위에서 기술된 것들이다.

▧ 역사 수정주의

이 같은 학설의 대립은 학문적 의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여러 형태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편향되게 기술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사극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 도를 넘어서는 역사 인물의 영웅화 시도 등이 그것이다. 기출문제도 이와 같이 현실문제와 연관되는 역사 인식을 주로 다루고 있다.

역사 수정주의는 절충주의의 탈을 쓴 그릇된 역사인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을 다룬 제시문을 한번 보도록 하자. 2007년 이화여대 수시1차 5번 문제의 제시문이다.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교육학자인 후지오카 노부가쓰 교수, 독일 문학자인 니시오 간지 교수 등을 리더로, 인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를 광고탑으로 삼은 이 운동은 난징대학살과 종군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의 반일세력에 의한 ‘날조’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일본인은 패전에 의해 자국의 근대사를 죄악시하는 ‘자학사관’을 내면화시켜왔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일본인의 긍지’를 되돌려야 하고 자민족 중심의 ‘국민의 역사’를 회복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이 세력은 매스미디어를 교묘히 이용하여 정력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는 자국의 과거 잘못에 눈을 돌리기를 싫어하고, 주변 민족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등 민족주의적인 풍조가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위 제시문은 역사 수정주의의 예로 일본의 극우적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사실 인식 위에 그에 맞추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먼저 정해놓고 사실을 끼워 맞추거나 날조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절충주의와는 다르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식민지 지배는 정당했다’이다. 비슷한 예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은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였다’이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광개토왕비문을 훼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역사 수정주의는 정당한 역사인식론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객관주의, 주관주의, 절충주의,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역사 수정주의의 동기는 주로 과도한 애국심 내지는 잘못된 민족의식으로 볼 수 있는데, 파시즘이 다른 게 아니다. 히틀러도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포장하기 위해 자기네 조상이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들이었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