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 여행] "열린 사회만이 전체주의 위협 극복"…마르크스주의와 '맞짱'

(25) 열린사회 이론 창시자 카를 포퍼

아버지가 유대계 변호사인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카를 포퍼(Karl R Popper)는 전체주의가 횡행하던 1920~1930년대 철학에 입문했다. 그가 고민했던 사회·철학적 문제는 인간들이 전체주의의 위협을 극복하고 자유와 번영을 누리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질서가 어떻게 가능한가였다. 그가 찾은 답은 열린사회였다.

그 이념의 출발점은 과학적 방법론이다. 경험에 비춰 각 이론의 오류를 입증, 제거하는 과정이다. 과학은 그런 반증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지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고 포퍼는 지적한다.

포퍼의 반증을 통한 방법론에는 지식은 늘 추측된 것이고 오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논박에 귀 기울이고 그 비판을 통해 잘못된 지식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론과 비판의 자유가 열린사회의 핵심인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가 자유를 억압하거나 개인과 집단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금기다.

흥미롭게도 포퍼는 이런 과학 분야의 작동 방식을 정치 영역에 확대적용한다. 과학의 과제와 마찬가지로 정치도 오류를 찾아내고 이를 수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오류는 빈곤, 실업, 소득상실 등과 같은 경제적 고통이다. 공공정책의 가장 긴급한 문제는 이 같은 인간의 고통이지 행복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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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는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 ‘점진적 사회공학’을 제안했다. 이는 법과 제도를 한걸음씩 개혁해 가는 방법이다. 이런 방식이 개혁의 오류를 찾아내고 학습할 수 있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거창한 청사진에 따라 사회 전체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에 반대한다. 전면적인 개혁은 지적 자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자유뿐 아니라 경제까지도 파괴한다는 이유에서다.

포퍼의 열린사회의 핵심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약자 보호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자유시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자본주의는 경제력 불평등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약자의 자유를 유린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포퍼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교육과 재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제적 실업연금보험도 촉구했다. 실업과 경제침체를 없애기 위해 재정지출 증대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정부 개입주의의 대표주자인 케인스에 가깝다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포퍼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중소상공인들을 위해 독점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도산할 위험성이 있는 기업을 국가가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산으로 야기되는 실업과 빈곤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포퍼의 사상과 논리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먼저 점진적인 개혁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법과 제도를 바꾼다면 원칙 없는 실용주의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원칙 없는 경제 개입 때문에 자유가 점진적으로 상실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포퍼가 주장한 독점 규제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런 규제가 중소상공인들에게 유익하다는 보장은 없다. 정부의 보호가 없는 한 독점 문제는 시장이 스스로 해결한다는 역사가들의 인식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산 위험에 처한 기업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인 책임을 도외시한다면 경제나 과학에서 기업가 정신이 소멸된다는 반론이 설득력을 갖는다. 도산할 기업을 도와주는 것은 시장 자율적인 메커니즘을 훼손한다는 얘기다.

포퍼는 과학적 지식을 매우 중시한다. 그것이 사회개혁의 이론적 기초라는 이유에서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사회과학 지식에 대한 그런 평가에 반기를 든 인물이 그의 친구인 하이에크다. 같은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대표적인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인 하이에크는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것은 과학 지식과 성격이 다른 ‘현장 지식’이라고 주장한다. 현장 지식이란 사적 사회의 곳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개개인들이 제각기 갈고 닦은 지식이다. 포퍼의 ‘열린사회’가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사적 사회보다 정치를 중시하는 열린사회 이론의 핵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관이다. 민주 정치는 정치적 경쟁을 통한 오류의 제거 과정이라는 게 포퍼의 해석이다. 민주 정치는 정치 권력의 남용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얘기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래서 다수결 원칙이 가진 결함을 간과했다고 비판도 받는다. 지난 세기에 독일, 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서 경제에 부담을 주는 정부 지출 증가와 자유를 제한하는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빈번히 등장했던 것도 민주 정치의 자정 능력이 완벽하지 못한 점을 보여준다.

포퍼의 열린사회 이론은 여러 비판의 여지를 남겼지만 그는 반증논리를 통해 경제학 발전에 기여했다. 과학적 방법의 관점에서 열린사회를 도출해 전체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길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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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와 세기의 논쟁

포퍼 사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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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포퍼의 사상이 등장한 시기는 러시아를 비롯 유럽과 심지어 미국까지도 자율적인 시장과 자유 사회가 나치즘과 파시즘, 마르크스주의 등 전체주의로 교체되던 때였다. 포퍼는 뉴질랜드로 망명해야 할 정도로 나치즘의 박해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시기에 포퍼는 ‘열린사회 이론’을 통해 집단주의의 포문을 열었다. 그가 대결했던 주요 이념은 역사적 필연을 내세우며 냉전의 한 축을 이뤘던 마르크스주의였다. 이념 전쟁에서 그가 가진 무기는 ‘경험을 통한 반증’이라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은 강력했다.

그런 지적인 무기 앞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속수무책이었다. 포퍼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토대를 바꾼다는 점을 들어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변화시킨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공격했다.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공산주의가 도래한다는 주장도 인간의 역사는 정해진 법칙에 따라 진행된다는 역사주의에서 도출된 사이비 과학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포퍼는 역사주의가 이상적인 청사진에 따라 사회 전체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유토피아적 계획 경제와 연결돼 있다고 진단한다. 그런 계획경제는 필요한 지식을 전부 알 수 없음에도 알고 있는 것처럼 전제하는 지식의 자만이라고 혹평하면서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폭력과 독재를 수반하는 ‘닫힌 사회’를 부를 뿐이라고 경고했다.

포퍼는 1960년대 초 마르크스주의 추종 세력인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벌인 세기의 논쟁에서도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전제주의를 부르고 지식을 자만하는 등 치명적 결함을 보여줌으로써 열린사회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국 1989년 옛 소련의 공산주의 몰락으로 포퍼가 옳았음이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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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사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사회개혁의 점진주의는 ‘우리는 모두 틀릴 수 있다’는 포퍼의 인식론에 영향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빈곤층에 대한 최소 생활 수준 보장이라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아젠다 형성에 미친 그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밀턴 프리드먼이 정부의 재량적 통화정책 대신에 준칙주의 정책을 제안했던 이유가 정부의 지적 자만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이것도 포퍼의 영향이었다.

민경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