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쓰는 논술] (4) 인간의 합리성

▧'합리적 인간'에 대한 생각 뒤집기

이번 시간에 다뤄 볼 주제는 인간의 합리성이다. 우리는 대개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성’의 전제 위에서 개인의 삶이 존재하고 사회가 유지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합리성이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합리성만을 추구하는데도 비합리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며,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사회적 합리성’ 속에서 개인은 엉뚱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과학이나 수학의 합리성과는 달리 인간의 합리성이 심리적이고 경제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어떻게 출제될까

논술문제는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그러한 행동들의 결합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문제가 출제될 이유가 없다. 인간의 합리성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는지, 그 한계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가 출제의 쟁점이 된다. ‘합리성’을 다룬 최근의 기출 경향은 다음과 같다.


2012 국민대 수시2차 (오전) : 개인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충돌
2012 서강대 수시 (사회과학계/경제학부) : 고전경제학과 행동경제학
2012 한양대 모의(1차-상경) : ‘호모 이코노미쿠스’ 개념의 한계
2011 홍익대 수시 : 사회적 합리성과 과학적 합리성
2011 연세대 모의 : 합리적 의사결정의 의미와 한계
2010 서강대 수시 1차 (사회과학부/경제·경영학부) : 합리적 경제인과 야성적 충동


사회가 발전하고 학문이 고도화되면서 과거에는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합리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 제기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합리와 비합리가 공존하는 모순덩어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적이라고 여겼던 사회적 기준들이 다양한 문제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성적 인간'의 한계


다음의 사례를 보자.

1963년 스탠리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에 참가할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지원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선생 역할을, 다른 한쪽에는 학생 역할을 맡기고 학생에게는 암기해야 할 단어, 선생에게는 테스트할 문제들을 주었다. 그리고 선생은 문제를 틀린 학생에게 15볼트의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한 후 오답이 나올 때마다 전압을 15볼트씩 높이도록 했다. 실험실 내부를 가른 칸막이 때문에 학생과 선생이 서로를 직접 볼 수 없었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한 상태였다. 실험이 시작되자 칸막이 너머에서는 비명과 욕설, 심지어 ‘불길한 침묵’이 계속됐지만 실험은 강행되었다. 엄격한 실험주관자는 망설이는 선생들에게 계속 지시대로 수행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선생 역으로 하여금 인간에게 치명적인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리게 했던 이 실험은 사실상 사기였다. 학생 역은 지원자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틀린 답을 말한’ 실험팀의 일원이었고, 전기충격과 칸막이 너머의 고통 반응은 연기일 뿐이었다. 실험의 진짜 의도는 ‘징벌을 당하는 학생의 학습효과’를 연구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징벌을 가하는 선생의 윤리적 태도’를 연구하고자 한 것이었다. 실험팀은 원래 150볼트 이상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실험을 거부하리라 추정했으나 결과적으로 지원자의 65%가 권위자의 지시를 끝까지 따랐다. 밀그램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성이 아무리 정의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시민들이 만약 옳지 않은 권위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들 역시 인간의 야만성과 비인간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2012학년도 이화여대 모의 논술문제 제시문


우리는 이 심리학 실험에서 65%의 사람들이 타인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정도의 비합리적 명령에 쉽게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수의 사람들은 윤리적 이성과 문명의 탈을 권위적 명령이라는 조건 하에 너무나도 쉽게 벗어던진다.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었던 나치의 장교들이나 난징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했던 일본군들이 태생적으로 악했다거나 악마적 세뇌를 받은 인간들이 아니라 전쟁 전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경제적 인간'의 한계


기존의 경제이론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해온 행동경제학은 이런 믿음을 흔들고 있다. 인간은 감정적이고 변덕스럽고 다른 사람들과 주변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때 현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이상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행동경제학에서 종종 언급하는 실험이 있다.

미국 방역 당국은 정글 모기가 퍼트리는 신종 전염병에 맞서고 있다. 이 병을 방치하면 600명이 목숨을 잃게 된다. 당국은 두 가지 전략을 마련했다. 예상되는 결과는 다음과 같다.

A안에 따르면 - 200명이 살게 된다.
B안에 따르면 - 600명이 다 살 확률이 3분의 1, 아무도 살지 못할 확률이 3분의 2다.


이 물음에는 응답자 대부분이 A안을 선호했다. 200명의 목숨을 확실히 구할 수 있는 A안보다 결과가 불확실한 B안을 꺼리는 위험회피 성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말을 바꾸어 물어보니 결과는 달라졌다.


A안에 따르면 - 400명이 죽는다.
B안에 따르면 -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3 600분의 1명이 다 죽을 확률이 3분의 2다.


이번에는 대부분 B안을 선호했다. 400명이나 확실히 목숨을 잃는 걸 지켜보느니 차라리 가능성은 낮지만 모두를 살릴 수도 있는 모험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위험회피적이던 응답자들이 갑자기 위험추구 성향으로 바뀐 것이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물음에서 200명을 확실히 살리는 A안을 택한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면 두 번째 물음에서도 같은 A안을 택해야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같은 문제라도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다른 상황을 보자.

사람들에게 당장 10만원을 받겠는가, 내일 11만원을 받겠는가 물으면 당장의 10만원을 선호한다. 그러나 100일 후 10만원과 101일 후 11만원 중에서는 하루 더 기다려 만원을 더 받는 쪽을 택한다.

1만원 하는 책을 사려다 한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든 철수는 다른 서점으로 20분을 걸어가 10% 할인된 값에 책을 구입했고 1000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는 같은 곳에서 10만원 하는 게임기도 샀다. 20분만 걸어가면 1000원 싸게 살 수 있었지만 기껏 1% 할인받으러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열거한 실험들을 놓고 보면 사람들은 완벽히 합리적이 아니라 일정 정도만 합리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은 눈치보고, 귀찮아하고, 싫증내고, 조급한 우리들의 일상생활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 맺음말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인간은 비합리적이다’라는 성급한 결론을 도출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 또한 올바른 결론이 될 수는 없다.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이득을 볼까,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인간만큼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도 없다. 다만 인간의 합리성은 언제나 제한적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과학적·수학적 합리성에 끼워 맞추어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인정하고 사회와 규칙을 그에 맞게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일 것이다.

이지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curitel2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