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면 죽는다.’ 요즘 기업 생태계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거대 기업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게 요즘 지구촌 경쟁환경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다”를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죽었다 깨어나도 삼성은 따라올 수 없을 거라던 노키아와 소니가 몰락하는 현실은 ‘졸면 죽는다’를 잘 대변하고 있다.
#필름 수익성만 고집한 코닥
미국 코닥 얘기를 먼저 해보자. 조지 이스트먼이 1880년 설립한 이 회사는 필름 분야의 선구자였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애플 같은 혁신 기업이었다. 1934년 세계 표준이 된 35㎜ 필름을 출시, 아날로그 필름시장을 선도했다. 1975년엔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고 1969년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모습을 찍은 것도 코닥의 첨단 장비 덕분이었다. 보유 특허도 많아 특허료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라는 말까지 들었다. 시장 변화를 알고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것은 기막혔다.
하지만 코닥은 딜레마에 시달려야 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사업이 이른바 ‘코닥 패러독스’에 빠졌다.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를 주력제품으로 밀 수가 없었다. 코닥은 디지털 기술을 방치하기 시작했다. 필름 사업 때문에 디지털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하는 모험을 피한 것이다. 장기간 시장을 독주한 코닥에는 시장개척자 DNA와 야성이 사라졌다. 이어진 것은 쇠락이었고 2011년 1월 경영 위기로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작년 4분기 코닥의 순손실액은 4억2000만달러(약 4604억원)로 전 분기의 1억1700만달러보다 더 늘어나는 등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매출 역시 24% 떨어진 11억달러에 그쳤다. 소비자들이 필름 대신 디지털 사진에 눈을 돌릴 것이란 점을 알면서도 필름에 집착한 결과였다.
#스마트혁명에 무심한 노키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핀란드 노키아의 쇠락은 한 편의 드라마다. 삼성은 현재 애플과 함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만 한때 노키아를 닮지 못해 안달했다. ‘노키아를 배우자’ ‘노키아를 닮자’를 꿈에서도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노키아 분석보고서를 만들고 공유하느라 난리였다.
노키아는 어느 정도였을까.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의 40%를 지배했다.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노키아라는 한 개 기업이 맡을 정도였다. ‘노키아가 망하면 핀란드가 망한다’는 말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어느 날.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2009년 스마트폰을 내놨고 그것으로 노키아 왕국은 몰락의 길로 인도됐다. 애플의 아이폰이 나온 뒤에도 노키아는 왕국이 지속되리라 믿었다. 장기간 시장을 석권한 1위의 오만이 작동했다. 이런 오만은 어처구니없게도 일반폰(피처폰)의 생산라인을 늘리는 악수로 나타났다. 휴대폰 패러다임이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는 혁명의 시기에 구체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노키아 경영진의 그릇된 판단은 혹독한 역풍을 맞았다. 2010년부터 일반폰 시장이 급감했다. 뒤늦게 스마트폰 생산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시장은 애플과 삼성의 벽으로 둘러쳐진 뒤였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선 대만 HTC, 중국 화웨이, LG전자 등에도 밀리면서 7위권까지 추락했다. 삼성은 더 이상 노키아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
#옛 영광에 취한 소니·닌텐도
일본의 자존심, 소니의 몰락은 하이라이트다. 걸어다니는 전축, 워크맨 신화로 세계에 충격파를 던진 소니는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원인은 8년 연속 적자행진 중인 TV 부문의 몰락이다. 소니는 세계 최초로 OLED TV를 개발했다. 하지만 OLED TV를 대형화하는 과정에서 기술 개발을 게을리해 한국의 삼성과 LG에 덜미를 잡혔다. LCD TV도 곤두박칠치고 있다. “소니는 이제 TV 같은 하드웨어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브라운관과 프로젝션 시대를 지배했던 소니 TV의 몰락은 평면TV 상용화에서 한국업체에 밀린 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는 타이밍에서 일본이 템포를 잃었다는 평가다.
닌텐도도 좋은 사례다. 닌텐도는 세계 게임시장을 호령했다. 2009년 매출 1조4400억엔, 영업이익 5300억엔. 직원 1인당 매출은 10억엔에 육박, 도요타의 5배를 넘었다. 천문학적 이익으로 예금으로 8000억엔(약 11조1400억원)을 쌓아뒀다.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1년 닌텐도의 2분기 실적이 매출 939억엔, 영업적자 377억엔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사상 초유의 영업적자였다.
닌텐도가 못 본 것 역시 스마트 혁명이었다. 스마트폰의 특징은 개방성. 무료 게임앱 등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닌텐도는 전용 게임기를 고집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수많은 게임에 길들여졌고 닌텐도 같은 휴대형 게임기를 외면했다. 스마트폰에서 몇 번 터치하면 다양한 게임이 나오는데 20만원을 추가로 써가면서 닌텐도DS를 사는 멍청한 소비자는 없었다. 바로 닌텐도의 폐쇄성이 독이 된 것이다. 닌텐도의 독선은 앱스토어와 안드로이트마켓이라는 자유시장에선 독재로 비쳐졌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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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힘' …잘 나가는 삼성·현대차·IBM
‘마누라 빼고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약 20년 전인 1993년 6월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삼성 신경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삼성은 2년 뒤 품질을 강조하며 150억원어치의 불량 휴대폰을 불태웠다. 이후 삼성은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애니콜 인기는 현재 갤럭시S 등 스마트폰으로 이어져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에서 양강 구도를 이뤄냈다. 이 회장이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9조900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현재 384조원으로 커졌다.
현대자동차도 성공 사례다. 자동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전혀 없던 현대자동차는 사업 초기 포드와 합작을 꾀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이후 현대차는 독자 개발로 포니를 제작, 1974년 10월 제55회 토리노 모터쇼에 데뷔했다. 29년이 지난 작년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만 126만606대를 판매했다.
IBM의 변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11년 설립된 IBM은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컴퓨터 산업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주도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자 위기를 맞았다. IBM은 코닥과 다른 길을 모색했다. PC 등 막강하던 하드웨어 컴퓨터 사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인트라넷, 전자상거래 시장을 염두에 두고 소프트웨어 솔류션 사업에 주력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1069억달러 매출에 159억달러의 순익을 거뒀다.
#필름 수익성만 고집한 코닥
미국 코닥 얘기를 먼저 해보자. 조지 이스트먼이 1880년 설립한 이 회사는 필름 분야의 선구자였다. 오늘날로 비유하면 애플 같은 혁신 기업이었다. 1934년 세계 표준이 된 35㎜ 필름을 출시, 아날로그 필름시장을 선도했다. 1975년엔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고 1969년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모습을 찍은 것도 코닥의 첨단 장비 덕분이었다. 보유 특허도 많아 특허료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라는 말까지 들었다. 시장 변화를 알고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것은 기막혔다.
하지만 코닥은 딜레마에 시달려야 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사업이 이른바 ‘코닥 패러독스’에 빠졌다.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를 주력제품으로 밀 수가 없었다. 코닥은 디지털 기술을 방치하기 시작했다. 필름 사업 때문에 디지털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하는 모험을 피한 것이다. 장기간 시장을 독주한 코닥에는 시장개척자 DNA와 야성이 사라졌다. 이어진 것은 쇠락이었고 2011년 1월 경영 위기로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작년 4분기 코닥의 순손실액은 4억2000만달러(약 4604억원)로 전 분기의 1억1700만달러보다 더 늘어나는 등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매출 역시 24% 떨어진 11억달러에 그쳤다. 소비자들이 필름 대신 디지털 사진에 눈을 돌릴 것이란 점을 알면서도 필름에 집착한 결과였다.
#스마트혁명에 무심한 노키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핀란드 노키아의 쇠락은 한 편의 드라마다. 삼성은 현재 애플과 함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만 한때 노키아를 닮지 못해 안달했다. ‘노키아를 배우자’ ‘노키아를 닮자’를 꿈에서도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노키아 분석보고서를 만들고 공유하느라 난리였다.
노키아는 어느 정도였을까.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의 40%를 지배했다.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5%를 노키아라는 한 개 기업이 맡을 정도였다. ‘노키아가 망하면 핀란드가 망한다’는 말도 이때 나왔다.
하지만 어느 날.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2009년 스마트폰을 내놨고 그것으로 노키아 왕국은 몰락의 길로 인도됐다. 애플의 아이폰이 나온 뒤에도 노키아는 왕국이 지속되리라 믿었다. 장기간 시장을 석권한 1위의 오만이 작동했다. 이런 오만은 어처구니없게도 일반폰(피처폰)의 생산라인을 늘리는 악수로 나타났다. 휴대폰 패러다임이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가는 혁명의 시기에 구체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노키아 경영진의 그릇된 판단은 혹독한 역풍을 맞았다. 2010년부터 일반폰 시장이 급감했다. 뒤늦게 스마트폰 생산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시장은 애플과 삼성의 벽으로 둘러쳐진 뒤였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선 대만 HTC, 중국 화웨이, LG전자 등에도 밀리면서 7위권까지 추락했다. 삼성은 더 이상 노키아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
#옛 영광에 취한 소니·닌텐도
일본의 자존심, 소니의 몰락은 하이라이트다. 걸어다니는 전축, 워크맨 신화로 세계에 충격파를 던진 소니는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원인은 8년 연속 적자행진 중인 TV 부문의 몰락이다. 소니는 세계 최초로 OLED TV를 개발했다. 하지만 OLED TV를 대형화하는 과정에서 기술 개발을 게을리해 한국의 삼성과 LG에 덜미를 잡혔다. LCD TV도 곤두박칠치고 있다. “소니는 이제 TV 같은 하드웨어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브라운관과 프로젝션 시대를 지배했던 소니 TV의 몰락은 평면TV 상용화에서 한국업체에 밀린 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는 타이밍에서 일본이 템포를 잃었다는 평가다.
닌텐도도 좋은 사례다. 닌텐도는 세계 게임시장을 호령했다. 2009년 매출 1조4400억엔, 영업이익 5300억엔. 직원 1인당 매출은 10억엔에 육박, 도요타의 5배를 넘었다. 천문학적 이익으로 예금으로 8000억엔(약 11조1400억원)을 쌓아뒀다.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1년 닌텐도의 2분기 실적이 매출 939억엔, 영업적자 377억엔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사상 초유의 영업적자였다.
닌텐도가 못 본 것 역시 스마트 혁명이었다. 스마트폰의 특징은 개방성. 무료 게임앱 등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닌텐도는 전용 게임기를 고집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수많은 게임에 길들여졌고 닌텐도 같은 휴대형 게임기를 외면했다. 스마트폰에서 몇 번 터치하면 다양한 게임이 나오는데 20만원을 추가로 써가면서 닌텐도DS를 사는 멍청한 소비자는 없었다. 바로 닌텐도의 폐쇄성이 독이 된 것이다. 닌텐도의 독선은 앱스토어와 안드로이트마켓이라는 자유시장에선 독재로 비쳐졌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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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힘' …잘 나가는 삼성·현대차·IBM
‘마누라 빼고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약 20년 전인 1993년 6월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삼성 신경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삼성은 2년 뒤 품질을 강조하며 150억원어치의 불량 휴대폰을 불태웠다. 이후 삼성은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애니콜 인기는 현재 갤럭시S 등 스마트폰으로 이어져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에서 양강 구도를 이뤄냈다. 이 회장이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9조900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현재 384조원으로 커졌다.
현대자동차도 성공 사례다. 자동차를 만들어 본 경험이 전혀 없던 현대자동차는 사업 초기 포드와 합작을 꾀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이후 현대차는 독자 개발로 포니를 제작, 1974년 10월 제55회 토리노 모터쇼에 데뷔했다. 29년이 지난 작년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만 126만606대를 판매했다.
IBM의 변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11년 설립된 IBM은 198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였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컴퓨터 산업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주도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자 위기를 맞았다. IBM은 코닥과 다른 길을 모색했다. PC 등 막강하던 하드웨어 컴퓨터 사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인트라넷, 전자상거래 시장을 염두에 두고 소프트웨어 솔류션 사업에 주력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1069억달러 매출에 159억달러의 순익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