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커플링

최근 국내 증시의 변동성 확대는 대북 리스크 장기화 조짐과 엔화 약세 재개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고민은 선진국과 신흥국 간 주가 디커플링에서 출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글로벌 증시 흐름의 큰 틀은 미국 중심의 선진국 주가 강세와 신흥국 주가 약세로 대비되고 있다. - 4월10일 연합뉴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엇! 경기나 증시 흐름이 美·日과 거꾸로 가네
☞디커플링(decoupling)은 한 나라의 경기나 주식시장 흐름이 세계 경제나 다른 나라와 같지 않고 탈(脫) 동조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한 쌍’ 또는 ‘둘’을 의미하는 커플링(coupling)의 반대 개념이다. 경제에서 국경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상품과 돈(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세계경제는 갈수록 통합되는 추세다. 그래서 한 나라의 경제는 대체로 다른 나라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움직이게 된다. 가령 미국이나 중국 경제가 좋으면 한국의 경제도 좋고, 미국의 증시가 나쁘면 한국 증시도 비실대는 게 보통이다. 이를 커플링이라고 한다. 반면 미국 경제가 좋은데 한국 경제는 좋지 않고, 미국 증시는 강세인데 한국 증시는 약세라면 디커플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흐름은 요즘 미국이나 일본과 뚜렷한 디커플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1900선에서 비실대는 반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미국 증시가 오르면 한국 증시도 올랐던 예년 패턴과는 정반대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등 신흥국 국가의 증시가 대부분 약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무엇보다 먼저 경기 흐름이 다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를 딛고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이 뚜렷하다. 일자리는 아직 기대만큼 늘어나고 있진 않지만 주택 경기, 소비지출, 제조업 경기 등의 경제지표들은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2월 주택가격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2% 올라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2008년 이전 수준으로 하락했다. 2월 소비지출도 전월 대비 0.7% 증가하면서 5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는 3월 ISM제조업지수는 51.3으로 전달보다 2.9포인트 하락했지만 경기 확장을 뜻하는 기준선인 50은 4개월 연속 웃돌며 확장세다.

1991년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2011년까지 21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0.9%에 불과할 정도로 장기 침체에 빠져 있던 일본 경제도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 총리는 제로금리 유지와 매달 13조엔 규모의 자산 매입 등 무제한 금융완화 정책, 13조1000억엔 규모의 추경 편성 등 강력한 경기대책을 추진 중이다. 정부 돈(정부지출)과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무제한적으로 동원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엔화를 뿌려대면서 엔화 가치는 지난해 12월 이후 약 4개월간 달러 대비 20% 이상, 유로화 대비 35% 이상 떨어졌다. 이 같은 엔저는 도요타나 소니 같은 일본 수출기업들엔 그야말로 희소식이다. 앉아서 20~35% 이상 제품 가격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은 연초에 예상한 것보다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투자정보업체인 MSCI 일본지수에 포함된 상장사들의 앞으로 12개월 예상 실적을 바탕으로 한 EPS는 연초 대비 17.2% 늘어났으며 미국의 12개월 예상 EPS도 연초보다 2.7% 증가했다. EPS는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을 그 기업이 발행한 총 주식수로 나눈 것으로 1주당 이익을 얼마나 창출했느냐를 나타낸다.

반면 한국 경제는 좀체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총생산(GDP)은 7분기 연속 0%대의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엔화 약세, 북한 리스크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게다가 GS건설이 지난 1분기 5354억원의 영업 적자를 내는 등 상장사들의 경영 실적이 예상보다 훨씬 나쁜 ‘어닝 쇼크’가 진행 중이다. 거의 모든 업종에서 상장사들의 이익전망치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맥킨지는 최근 한국 경제의 현황과 전망을 다룬 ‘신성장 공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 경제는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물 속의 개구리 같다”고 진단했다. 성장률이 8%→5%→2%로 갈수록 떨어지고 가계부채는 해마다 악화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맥킨지는 “변화하지 않으면 한국도 죽어가는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구리’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저런 규제책을 내놓고, 대기업 경영인들을 백안시하는 요즘 분위기에선 누가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늘리려 할 것인가. 이러니 한국 증시가 미국이나 일본과 디커플링되면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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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감시한다고?

美 환율보고서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해 장중 1120원까지 내려갔다.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오후 2시9분 현재 달러당 1120.00원에 거래됐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의 ‘경고’가 원·달러 환율 하락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12일 의회에 제출한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원화 가치의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 15일 한국경제신문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International Economic and Exchange Rate Policies)는 미국의 나라경제 상황과 세계 경제 현황, 달러 환율 동향과 세계 주요국의 외환시장 동향 등을 담고 있다. 매년 한두 차례씩 부정기적으로 발표한다. 2011년엔 세 차례나 내놓기도 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엇! 경기나 증시 흐름이 美·日과 거꾸로 가네
올해 발표된 보고서에 언급된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유로 지역, 스위스, 영국, 브라질, 캐나다, 멕시코 등 총 10개국이다. 미국 정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는 이유는 이들 나라와의 교역 현황을 점검해 미국의 과도한 무역적자가 상대국 정부의 환율 조작에 의한 것이 아닌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정부는 상대국 정부를 대상으로 다양한 통상 압박을 가하는 게 보통이다. 올해는 환율조작국을 지정하진 않았다.

환율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시장결정 환율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이 원화 가치의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2008년에는 원화가치를 지지하기 위해 강하게 개입했으나, 2009년 초부터는 원화 환율 상승속도를 줄이기 위해 미 달러를 파는 식으로 개입하고 있다”면서 한국 당국의 개입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말 원화 가치가 금융위기 이전 2007년의 최고점보다 24% 저평가됐다고 지적하면서 실질실효환율에 비춰봐도 원화 가치가 5~20% 낮게 평가돼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 보고서가 사실상 한국의 원화 환율 절상폭이 커져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심중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엇! 경기나 증시 흐름이 美·日과 거꾸로 가네
미국의 환율보고서는 상대국 통화가치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자신이 달러를 마구 풀어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것은 괜찮고 다른 나라가 달러화의 대규모 유입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자구책을 쓰는 걸 트집 잡는 것은 기축통화국의 횡포라는 비판도 끊이질 않는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