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논술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는 꽤 다양한 종류가 있어요. 그중에서 전 우리의 삶을 위한 논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교 공부에도 도움이 되면서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공부! 전 그런 논술공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술 시험은 글쓰기, 글읽기가 포함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논술은 깊은 생각을 길어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와 함께 할 이 연재는 한 문장을 통해 글을 읽고 쓰는 재미를 느끼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함께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한 문장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한 문장의 교양] (1)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우리의 근본 결점은 위대한 종교가 없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백 가지 폐가 간난에 있다 하지만 간난 중에도 심한 간난은 생각의 간난이다. 철학의 간난, 종교의 간난, 우리나라는 우선 물자의 간난 때문에 못사는 나라 아닌가. 중국 평원을 우리에게 주어보라. 미국의 자원을 우리에게 주어보라. 그래도 못살 것인가. 금수강산 이름은 좋지만 이 마른 뼈다귀 같은 산만을 파먹고는 힘이 날 수도, 생각이 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래도 생명은 물질의 주인이지. 물자 간난의 원인은 인물 간난에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어려워진 것은 당파싸움으로 인물을 자꾸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베인 나무는 10년이면 다시 설 수 있으나 인물은 죽으면 백 년 길러도 다시 얻기 어렵다.


왜 그렇게 어려운가. 정신이란 귀한 것이요 생각은 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재목은 숲에서야 나고 인물은 종교의 원시림에서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종교가 본래 깊지 못하다. 이것은 몽고민족의 통폐다. 원나라가 세계를 휩쓸었으나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가고 만 것은 깊은 정신문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리스는 손바닥 같은 반도지만, 그 문화는 아직 살지 않나. 일본이 크게 못 된 것도 그 종교의 작고 옅음에 있다. 만주족이 중국을 온통 정복해 300년을 갔지만 깊은 것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우리의 고유한 종교가 시원한 것이 없이 않은가. 화랑도라 하지만 그 윤리적철학적인 내용은 다른 데서 배운 것이요, 그 외의 것은 이른바 화랑으로 그치고 말지 않았나. 화랑도로 역사를 살리지는 못할 것이다. 너무 옅다. 너무 평면적낙천적이다.

그러면 우리의 역사적 숙제는 이 한 점에 맺힌다. 깊은 종교를 낳자는 것, 생각하는 민족이 되자는 것, 그러면 625의 뜻도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깊은 종교, 굳센 믿음을 가져라. 그리하여 네가 되어라. 그래야 우리가 하나가 되리라.”

-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중에서


여기서 종교란 높은 수준으로 고양된 정신을 뜻하는 것이지 특정 종파를 일컫는 것은 아니에요. 위대한 종교를 낳자는 것은 위대한 생각을 길어내자는 말이에요. 인간의 놀라움은 눈앞에 있는 난관에 굴하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여 결국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데 있지 않나요.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죠. 인간은 생각하는 힘을 갖고 있어 문제가 생기면 기어코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내곤 하죠. 그런 문제 해결 과정이 축적되면 문명과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고요. 가령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기, 타고 다니는 자동차, 몸이 으슬으슬 떨릴 때면 먹는 감기약 등은 다 생각의 열매들이에요. 그러니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조금 비틀어 이렇게 얘기해도 좋을 것 같군요. ‘생각이야말로 힘이다.’ 생각이 멈추면 우리의 문명도, 진보도 함께 멈춥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의 의미도 여기에 있어요.

논술은 바로 생각하는 힘을 평가하는 과목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 문제거리를 던져 주고 학생들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얼마나 참신한 대안을 제시하는지 확인하는 시험이죠. 그러니 논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해요. 아마 지금 이렇게 입을 삐죽거리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누가 생각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도 모르는 줄 아나? 어떻게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그렇죠. 그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요? 멋진 근육이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죠? 체력 단련장에 가거나 아령을 사죠. 정신의 근육을 기르는 일도 마찬가지에요. 정신을 단련할 수 있는 정신 전문 단련장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이 쓴 탁월한 글! 좋을 글을 읽고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는 것만큼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어요. 조금 어렵지만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을 한번 들어볼까요.



“필립 네모_ 생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자기 자신에게 생기는 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물음에서 시작되는가? 아니면 먼저 어떤 책이나 사상을 만나 시작되는가?

엠마누엘 레비나스_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슨 충격이나 더듬거림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분리나 폭력 장면 또는 지독하게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책 - 꼭 철학책이 아니라도 - 을 읽으면서 그러한 충격들이 물음이 되고 문제가 되어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국민문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문학을 통해, 단순히 말을 배우는 문제가 아니라 ‘참다운 삶’ 곧 지금 내 앞에 없어도 결코 유토피아만은 아닌 그런 삶을 본다. 흔히 책을 정보창고나 지식을 얻는 도구 또는 지침서로 생각하지만 사실 책은 우리의 존재양식이다. 책의 존재론적 성격을 무시하면 안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 - 또는 정치 - 을 넘어서는 것이며, 우리 자신에 집착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이다. 억지로 영혼을 아름답게 하려는 의도나 이상적인 규범을 찾으려는 의도가 없이도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 엠마누엘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 중에서



인생을 살며 겪은 여러 경험이 독서과정을 통해 깊은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소리에요. 레비나스의 말처럼 좋은 글은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탁월한 문장에는 탁월한 생각을 길러 내는 힘이 있어요. 논술시험에서 제시문을 주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제시문은 여러분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들이죠. 글을 읽을 수 있는 독해력,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좋은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사고력이야말로 논술에 있어 꼭 필요한 능력들이에요. 난 은율 학생이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에요.

그래서 오늘부터 매주 좋은 문장을 하나씩 소개하려고 해요. 은율 학생이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을 만한 문장을요. 깊은 생각을 담은 글, 우리를 깊은 생각으로 초대하는 글, 우리가 깊은 생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글, 그런 문장을 소개하는 것이 이 편지의 목적인 셈이에요. 재밌는 예를 들어볼까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너무나 유명한 말이죠. 하지만 이 문장의 본뜻이 무어냐 묻는다면 의외로 대답하기 쉽지 않을 거에요. ‘무슨 뜻이긴, 예술은 시간을 거슬러 생명력을 갖는 가치 있는 것이라는 말 아니겠어? 예술을 찬양하는 것 보니 보나마나 어느 예술가가 한 소리겠군’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나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지가 않아요. 저 말의 주인공은 히포크라테스라는 의사예요. 서양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죠. ‘인생은 짧지만 기술(의술)은 길다’ 이것이 그가 본래 의도한 의미에 가까워요. 그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의 위대함을 찬양했던 것이죠.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이제 저 문장을 읽을 때 이런 고민을 하게 되지 않겠어요? 인간의 삶에서 기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기술과 문명의 발전이란 어떤 가치를 갖는가? 이처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부분 본뜻을 오해하고 있는 문장을 뽑아 그 의미를 살펴보고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 이게 매주 우리가 함께 할 일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목표란 ‘생각하며 글읽기’ 혹은 ‘글 읽으며 생각하기’ 정도 되겠군요.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은율 학생에게 나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거나 심지어 주입하는 것은 결코 이 편지의 목적이 아니라
[한 문장의 교양] (1)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는 것이에요. 내가 소개한 문장들을 읽고 은율 학생이 스스로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에요. 은율 학생 주변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죠.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생각하는 힘이 필요해요. 성실한 정신의 노동만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죠. 책상 앞에서 흘리는 굵은 땀방울만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에요. 좋은 삶이란 늘 좋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는 말처럼요.

김영수 S·논술인문대표강사 ysjad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