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 아닌 치료적 성격… 인권 침해 아니다"

"인권 침해 소지 크고 범죄 억제 효과 미미"

[시사이슈 찬반토론]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는 옳을까요
지난 19일부터 화학적 거세 대상이 확대됐다. 종전까지는 16세 미만 피해자에게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적용했으나 이제는 19세 이상 성도착증 환자로 재범 위험이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 법무부가 마련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화학적 거세는 성도착증 환자에게 약물 투여와 심리치료를 병행해 성기능을 일정 기간 약화시키는 조치다.

법원이 지난 1월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 명령을 내린 데다 법 개정으로 앞으로 화학적 거세 대상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화학적 거세에 대해 인권침해 소지를 들어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성범죄 예방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본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집행돼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대전지법 형사12부는 개정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해 놓은 상태다. 화학적 거세를 둘러싼 찬반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임명호 단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성욕 과잉 환자 3명에게 약물을 적용한 결과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윤리적 문제와 비용의 문제만 극복한다면 성범죄 근절 차원에서 화학적 거세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우종민 인제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화학적 거세는 심각한 성폭력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적 대안”이라며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인의 인권 이면에는 피해자의 인권도 있는데 범인의 인권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 생각이고 비이성적이다”며 화학적 거세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법원이 화학적 거세 명령을 내린 사례를 들면서 “이번 사례의 경우 과거에도 이미 성폭력 강간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또 누범기간 중에 벌써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장기간 성폭력을 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왜곡된 성 의식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면서 “향후에도 계속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이니까 이런 경우는 화확적 거세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 네티즌은 “화학저 거세는 범죄자에 대한 징벌적 방법이 아닌 치료적 성격이 강하며 인권침해가 아니다”라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에서 2000~2004년 5년간 가석방된 성범죄자 134명 가운데 약물치료에 불응한 성범죄자의 재범률이 20%에 가까웠던 반면 치료를 받은 사람 중에는 재범죄자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사례를 인용하기도 했다. 효과가 입증된 만큼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화학적 거세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여겨지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화학적 거세를 하면 1년에 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 이 많은 돈을 들여서 할 만큼의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면서 “국가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은 효과가 있겠지만 그것이 진짜 범죄를 막을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화학적 거세가 유일한 성범죄 방지대책인 것처럼 접근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며 “화학적 거세는 다른 정책과 같이 시행돼야만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과도한 인권침해”라며 “성범죄를 억제하지 못하면서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는 제도”라고 혹평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성범죄는 여성을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성문화와 신고를 주저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주원인이지 특정인의 성욕은 주된 원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도 반대의견은 있다. 아이디 Dxx는 “애초에 성범죄자 재범방지를 위한 철저한 교육과 방법강화 등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지 화학적 거세는 오히려 성범죄자의 반감만 높잎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죄자에게 동의 여부를 묻지 않고 강제적으로 신체 기능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상실시키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했다.


생각하기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찬반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논의가 성범죄자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성범죄 피해자라고 봐야 한다. 이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의외다. 따라서 범죄 피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범죄자의 인권침해 주장은 설득력이 크게 약화된다고 생각된다. 물론 화학적 거세 대상자에서 초범은 제외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정해야 할 필요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에 반한다거나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 혹은 다른 성범죄 예방 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반대하는 의견은 수용하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는 옳을까요
실제 시행에 있어서는 일부 외국의 경우처럼 탄력적 운용을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성범죄자가 일정한 연수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경우 본인이 화학적 거세를 수용하면 형기의 일정량을 줄여주는 방식 등은 화학적 거세와 병행해 실행해볼 만한 제도다.

거듭 지적하지만 화학적 거세는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의사의 진단 등을 반드시 거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그런 기준이 세워진다면 무조건 범죄자의 인권만을 운운하며 반대하는 목소리는 많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