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을 읽는 것은 꽤나 곤혹스럽습니다.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니고 두께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책을 쉽게 즐길 만한 학생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빡빡한 수업, 보충수업, 자율학습, 학원, 내신 대비, 수행평가, 수능 준비 등에 정신없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도 미안합니다. 논술 문제를 풀기 위해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을 선뜻 권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생각해보면 독서는 매우 필요합니다. 교과서 지식만을 달달 외운 학생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기호에 맞게 꾸준히 자기 노력을 한 학생은 분명 책을 읽을 겁니다. 어떤 면접이든 책에 관한 질문이 한두 개씩 끼어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논술 문제 출제의 방향이라고 한다면 탄탄한 독서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풍부한 사유를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시험이 객관식 답을 맞히는 다소 테크니컬한 선택문항이라면 논술은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차별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서울대 정시의 1번 문제는 이런 점에서 매우 ‘정통적인’ 논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12학년도 서울대 정시 기출문제 중 1번
제시문은 존 스타인벡의 1939년작 <분노의 포도>에서 발췌된 것 하나뿐입니다. 아쉽게도 서울대에서 추천한 청소년 권장도서 100선에는 들어있지 않은 작품입니다. 제시문은 원작의 첫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중략이 들어있긴 하지만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발췌하고 있지요. 우선 문제조건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제시문은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일부이고, 위 그림은 제시문 전반부의 주요 배경이 된 지역의 기후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과 그림을 참고하여 다음의 논제에 답하시오. (세 논제를 모두 합하여 2200자 이내)
논제 1. 제시문에 나타난 상황들의 원인을 분석하여 설명하시오.
논제 2. 주민들이 원거주지에서 살기 어렵게 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근거를 들어 논하시오.
논제 3. 제시문에 나타난 ‘이주’와 ‘잔류’의 행위를 비교하여 논하시오.
그리고 문제는 해당 지역의 기후가 온난 반건조 기후(온대 스텝)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도 한 장을 통해 “건조한 계절에는 불모지로 변한다”는 지식까지 알려줍니다. 강수량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한 장 나오지만 들쭉날쭉 고저를 가로지르는지라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좀처럼 알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대공황이 1929년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1930년대 중반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강수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눈치챘겠지요. ‘아하, 비가 오지 않고 있구나’라고 말이지요.
첫 번째 논제는 제시문에 나타난 상황들의 원인을 분석하여 설명하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들>이라는 것에 있지요. 당연히 여기서 나타난 상황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제시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이 음울하고 비관적인 분위기는 딱 봐도 문제상황입니다. 상황과 원인을 보여주는 몇 부분을 보여드리지요.
그러나 빗기를 머금은 구름은 한두 방울 비를 떨어뜨리다가는 곧 다른 쪽으로 옮아갔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햇살을 뿌렸다. 빗방울이 두들겼던 토사 위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곰보가 나고 옥수수 잎새마다 맑은 빗방울이 맺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바람은 벌판을 쓸었고 사방에 정적이 깔렸다. 먼지 섞인 공기는 안개나 구름보다도 들판의 소음을 더욱 완전히 감싸 버렸다. 집 안에 갇힌 채 누워 있는 사람들은 바람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지 폭풍이 멎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조용히 밤의 적막에 귀를 기울였다. 먼지는 하루 종일, 그리고 그 다음날에까지 걸쳐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것은 마치 부드러운 담요인 양 땅 위에 고루 깔렸다. 옥수수 위에도 울타리 위에도, 그리고 전깃줄 위에도 소복하게 쌓였다. 지붕마다 먼지가 입혀졌고 잡초와 나무들도 뿌연 담요에 감싸여 있었다. (중략)
지주 대리인들은 차 안에 탄 채 소작인들에게 설명을 해댔다.
“땅이 몹시 메말라 있다는 건 잘들 아실 거요. 목화가 땅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니까 이렇게 황폐해 가는 거요. 참 용케도 오래 버티셨소. 안 그렇소?”
쭈그리고 앉은 소작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어찌하면 좋을지를 아는 것은 아니어서 어리둥절한 채 그저 먼지 바닥에다 낙서만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만약 먼지만 날아가지 않는다면, 먼지가 그냥 땅바닥에 붙어 있어만 준다면 농사가 그렇게 안 되지는 않을 텐데.
“당신들도 알다시피 땅이 점점 피폐해 가지 않소? 목화가 땅으로부터 자양분과 피를 다 빨아먹으니 그럴 수밖에.”
쭈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도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작물을 윤작만 할 수 있어도 토양에 자양분과 기름기가 어느 정도는 유지될 수 있을 텐데. (중략)
“아, 놈들 얘기야 근사하지. 그동안 우리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알아? 먼지바람이 불어와서 모든 걸 죄다 망쳐버리는 바람에 농사가 형편없었지. 개미 똥구멍을 막을 만큼도 안 됐으니까. 그래서 다들 식품점에 외상을 지고 있었어. 너도 알잖아. 그런데 지주들은 소작인을 둘 여유가 없대. 소작인들하고 나눠 먹으면 자기들한테 남는 게 없다는 거야. 땅을 하나로 합쳐야 간신히 수지가 맞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놈들이 트랙터를 갖고 와서 소작인들을 전부 쫓아낸 거야. 나만 빼고 전부. 난 절대 안 떠날 거야. 토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태어날 때부터 날 봤으니까.” (중략)
이주민들은 도로를 타고 계속 흘러들어 왔다. 그들의 눈 속에는 굶주림이 있었고,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주장도, 조직도 없었다. 그들이 엄청난 숫자로 몰려온다는 것, 그들에게 욕망이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일자리가 하나 생기면 열 명이 그 자리를 잡으려고 싸웠다. 낮은 품삯을 무기로 싸웠다. 저 사람이 30센트를 받는다면, 나는 25센트만 받겠다는 식이었다.
문제는 여러 개가 존재합니다만 우선 크게 보았을 때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화가 땅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다는군요. 윤작을 했다면 나았을 수도 있지만 돈이 되는 목화만 짓다 보니 땅의 양분이 쇠한 것이지요. (농사를 짓는 일을 막연히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을 테지만 농사를 짓는 일조차 결과적으로 보면 땅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농경지들이 지금 모두 사막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수경농업방식 자체가 땅의 염도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저 삭막한 모래바람이 부는 기후환경까지 겹치게 되면서 땅 주인들은 소작인들을 둘 수 없게 됩니다. 농사를 지어서 돈이 나와야 농사를 짓든가 할 텐데, 작황도 좋지 않고 소작인들은 아우성이니 소작인들을 모두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연환경적인 요인과 사회경제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요.
목화밭을 공장으로 비유해봐도 좋습니다.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팔아야 하지만 지진이 나고 폭우가 쏟아진 천재지변의 상황입니다. 정상적으로 공장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지요. 미리미리 이런 상황에 대비를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는 판매실적도 좋지 않고 하니 구조조정에 들어가려고 하지요. 생산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클테니까요. 다시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내려진 결정이겠지요. 하지만 대공황 시절이라 이런 구조조정이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일어납니다.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당해 다른 도시-캘리포니아-로 일을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의, 어마어마한 수의 이주민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제시문의 후반부는 임금을 스스로 깎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적지만 공급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물건이 팔린다는 전망이 있어야 고용을 하겠지만 대공황 시절이라 새롭게 투자할 여력이 없습니다. 임금은 30센트에서 25센트로 낮아집니다. 이와 반대로 노동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적을 때는 회사에서 애간장이 타게 될 것입니다. 1980년대 일본이 한창 잘나갈 때 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대기업들이 리크루팅을 나섰다는 이야기는 요즘 같은 불황기에 다시 들어보기 힘든 전설이겠지요. 자 어찌했든 대략 정리해보면 이렇게 원인과 문제 상황들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건조한 기후와 모래바람 : 작황 나빠짐
(2) 목화 단일 경작 : 땅이 피폐해짐
(3) 소작인을 통한 경작의 경제적 생산성 떨어짐 : 소작인을 내쫓음
(4) 노동 수요가 공급을 초과함 : 스스로 품삯을 깎음
물론 이를 정리해서 말하려면 (1)(2)를 자연환경적 요인으로 (3)(4)를 사회경제적 요인이라고 봐야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1번 논제의 2~3번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번 문제의 경우 답이 정해져 있는 편이지만 2번부터는 그렇게 정해진 형태는 아닙니다.
이용준 S·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
특히 빡빡한 수업, 보충수업, 자율학습, 학원, 내신 대비, 수행평가, 수능 준비 등에 정신없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도 미안합니다. 논술 문제를 풀기 위해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을 선뜻 권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생각해보면 독서는 매우 필요합니다. 교과서 지식만을 달달 외운 학생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기호에 맞게 꾸준히 자기 노력을 한 학생은 분명 책을 읽을 겁니다. 어떤 면접이든 책에 관한 질문이 한두 개씩 끼어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논술 문제 출제의 방향이라고 한다면 탄탄한 독서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풍부한 사유를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시험이 객관식 답을 맞히는 다소 테크니컬한 선택문항이라면 논술은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차별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서울대 정시의 1번 문제는 이런 점에서 매우 ‘정통적인’ 논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012학년도 서울대 정시 기출문제 중 1번
제시문은 존 스타인벡의 1939년작 <분노의 포도>에서 발췌된 것 하나뿐입니다. 아쉽게도 서울대에서 추천한 청소년 권장도서 100선에는 들어있지 않은 작품입니다. 제시문은 원작의 첫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중략이 들어있긴 하지만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발췌하고 있지요. 우선 문제조건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제시문은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일부이고, 위 그림은 제시문 전반부의 주요 배경이 된 지역의 기후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과 그림을 참고하여 다음의 논제에 답하시오. (세 논제를 모두 합하여 2200자 이내)
논제 1. 제시문에 나타난 상황들의 원인을 분석하여 설명하시오.
논제 2. 주민들이 원거주지에서 살기 어렵게 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근거를 들어 논하시오.
논제 3. 제시문에 나타난 ‘이주’와 ‘잔류’의 행위를 비교하여 논하시오.
그리고 문제는 해당 지역의 기후가 온난 반건조 기후(온대 스텝)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도 한 장을 통해 “건조한 계절에는 불모지로 변한다”는 지식까지 알려줍니다. 강수량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한 장 나오지만 들쭉날쭉 고저를 가로지르는지라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좀처럼 알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대공황이 1929년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1930년대 중반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강수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눈치챘겠지요. ‘아하, 비가 오지 않고 있구나’라고 말이지요.
첫 번째 논제는 제시문에 나타난 상황들의 원인을 분석하여 설명하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들>이라는 것에 있지요. 당연히 여기서 나타난 상황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제시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이 음울하고 비관적인 분위기는 딱 봐도 문제상황입니다. 상황과 원인을 보여주는 몇 부분을 보여드리지요.
그러나 빗기를 머금은 구름은 한두 방울 비를 떨어뜨리다가는 곧 다른 쪽으로 옮아갔다. 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햇살을 뿌렸다. 빗방울이 두들겼던 토사 위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곰보가 나고 옥수수 잎새마다 맑은 빗방울이 맺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바람은 벌판을 쓸었고 사방에 정적이 깔렸다. 먼지 섞인 공기는 안개나 구름보다도 들판의 소음을 더욱 완전히 감싸 버렸다. 집 안에 갇힌 채 누워 있는 사람들은 바람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지 폭풍이 멎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조용히 밤의 적막에 귀를 기울였다. 먼지는 하루 종일, 그리고 그 다음날에까지 걸쳐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것은 마치 부드러운 담요인 양 땅 위에 고루 깔렸다. 옥수수 위에도 울타리 위에도, 그리고 전깃줄 위에도 소복하게 쌓였다. 지붕마다 먼지가 입혀졌고 잡초와 나무들도 뿌연 담요에 감싸여 있었다. (중략)
지주 대리인들은 차 안에 탄 채 소작인들에게 설명을 해댔다.
“땅이 몹시 메말라 있다는 건 잘들 아실 거요. 목화가 땅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니까 이렇게 황폐해 가는 거요. 참 용케도 오래 버티셨소. 안 그렇소?”
쭈그리고 앉은 소작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어찌하면 좋을지를 아는 것은 아니어서 어리둥절한 채 그저 먼지 바닥에다 낙서만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만약 먼지만 날아가지 않는다면, 먼지가 그냥 땅바닥에 붙어 있어만 준다면 농사가 그렇게 안 되지는 않을 텐데.
“당신들도 알다시피 땅이 점점 피폐해 가지 않소? 목화가 땅으로부터 자양분과 피를 다 빨아먹으니 그럴 수밖에.”
쭈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도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작물을 윤작만 할 수 있어도 토양에 자양분과 기름기가 어느 정도는 유지될 수 있을 텐데. (중략)
“아, 놈들 얘기야 근사하지. 그동안 우리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알아? 먼지바람이 불어와서 모든 걸 죄다 망쳐버리는 바람에 농사가 형편없었지. 개미 똥구멍을 막을 만큼도 안 됐으니까. 그래서 다들 식품점에 외상을 지고 있었어. 너도 알잖아. 그런데 지주들은 소작인을 둘 여유가 없대. 소작인들하고 나눠 먹으면 자기들한테 남는 게 없다는 거야. 땅을 하나로 합쳐야 간신히 수지가 맞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놈들이 트랙터를 갖고 와서 소작인들을 전부 쫓아낸 거야. 나만 빼고 전부. 난 절대 안 떠날 거야. 토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태어날 때부터 날 봤으니까.” (중략)
이주민들은 도로를 타고 계속 흘러들어 왔다. 그들의 눈 속에는 굶주림이 있었고,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주장도, 조직도 없었다. 그들이 엄청난 숫자로 몰려온다는 것, 그들에게 욕망이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일자리가 하나 생기면 열 명이 그 자리를 잡으려고 싸웠다. 낮은 품삯을 무기로 싸웠다. 저 사람이 30센트를 받는다면, 나는 25센트만 받겠다는 식이었다.
문제는 여러 개가 존재합니다만 우선 크게 보았을 때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화가 땅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다는군요. 윤작을 했다면 나았을 수도 있지만 돈이 되는 목화만 짓다 보니 땅의 양분이 쇠한 것이지요. (농사를 짓는 일을 막연히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을 테지만 농사를 짓는 일조차 결과적으로 보면 땅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농경지들이 지금 모두 사막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수경농업방식 자체가 땅의 염도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저 삭막한 모래바람이 부는 기후환경까지 겹치게 되면서 땅 주인들은 소작인들을 둘 수 없게 됩니다. 농사를 지어서 돈이 나와야 농사를 짓든가 할 텐데, 작황도 좋지 않고 소작인들은 아우성이니 소작인들을 모두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연환경적인 요인과 사회경제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요.
목화밭을 공장으로 비유해봐도 좋습니다.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팔아야 하지만 지진이 나고 폭우가 쏟아진 천재지변의 상황입니다. 정상적으로 공장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지요. 미리미리 이런 상황에 대비를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는 판매실적도 좋지 않고 하니 구조조정에 들어가려고 하지요. 생산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클테니까요. 다시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내려진 결정이겠지요. 하지만 대공황 시절이라 이런 구조조정이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일어납니다. 여기저기서 구조조정(?)을 당해 다른 도시-캘리포니아-로 일을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의, 어마어마한 수의 이주민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제시문의 후반부는 임금을 스스로 깎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적지만 공급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물건이 팔린다는 전망이 있어야 고용을 하겠지만 대공황 시절이라 새롭게 투자할 여력이 없습니다. 임금은 30센트에서 25센트로 낮아집니다. 이와 반대로 노동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적을 때는 회사에서 애간장이 타게 될 것입니다. 1980년대 일본이 한창 잘나갈 때 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대기업들이 리크루팅을 나섰다는 이야기는 요즘 같은 불황기에 다시 들어보기 힘든 전설이겠지요. 자 어찌했든 대략 정리해보면 이렇게 원인과 문제 상황들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건조한 기후와 모래바람 : 작황 나빠짐
(2) 목화 단일 경작 : 땅이 피폐해짐
(3) 소작인을 통한 경작의 경제적 생산성 떨어짐 : 소작인을 내쫓음
(4) 노동 수요가 공급을 초과함 : 스스로 품삯을 깎음
물론 이를 정리해서 말하려면 (1)(2)를 자연환경적 요인으로 (3)(4)를 사회경제적 요인이라고 봐야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이어서 1번 논제의 2~3번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번 문제의 경우 답이 정해져 있는 편이지만 2번부터는 그렇게 정해진 형태는 아닙니다.
이용준 S·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