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섭의 신나는 수학여행 - 이 세상에 각도가 없었다면…

백억대 부자인 김주연 여사가 금고에 돈을 넣기 위해 금고의 다이얼을 돌리고 있다.

김주연 여사 : ‘일단 오른쪽으로 5/16바퀴 돌리고, 이번엔 왼쪽으로 3/32바퀴 돌….’

금고 : 삐이익~! 다이얼이 너무 많이 돌아갔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주연 여사 : ‘에구구, 다시~! 먼저 오른쪽으로 5/16바퀴 돌리고, 왼쪽으로 3/32바퀴, 다시 오른쪽으로 7/45바퀴... 조심해야지 지나칠라….’

금고 : 삐빅! 드르륵!

김주연 여사 : ‘휴~, 30분 만에 열었네. 이거 금고 한 번 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쩝~’
[영·수야! 놀자] 최문섭의 신나는 수학여행-박희성의 맛깔난 잉글리시
사실 금고의 다이얼엔 각도가 쓰여 있지 않다. 다만 다이얼의 원둘레를 100개 전후의 눈금으로만 나눠 놓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각도를 언급하고 있는 이 글과 금고의 다이얼이 어떤 관계가 있기에 대표적인 예로 언급된 걸까?

각도란 하나의 원을 360등분하여 나타내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즉, 1°란 원둘레의 1/360에 해당하는 중심각의 크기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원을 360등분했을까? 그건 천문학적으로 1년이 365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원을 360등분하지 않고 50등분, 100등분, 200등분 했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맞다, 천문학적인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됐었다. 다만 원이 납득될 만큼의 세밀한 등분은 되어 있어야 ‘각도’로서의 의미가 있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즉, ‘이 세상에 각도가 없었다면?’이라는 말은 곧 ‘하나의 원을 세밀하게 나누는 방법이 없었다면?’이라는 말과 같은 뜻인 것이다.

이제는 질문이 이해됐을 것이므로 ‘각도’가 없을 때의 상황을 살펴보자. 사실 ‘각도’란 것이 없어도 ‘바퀴’라는 말로 회전의 정도를 대신 표현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문은 오른쪽으로 30°이상 돌리면 열립니다.’와 ‘이 문은 오른쪽으로 1/12바퀴이상 돌리면 열립니다.’라는 두 표현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후자는 뭔가 정확도가 떨어진다. 더구나 이런 식으로 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모든 각도들을 ‘바퀴’라는 단위로 대신 표현한다면 아무리 분수를 사용하여 표현한다고 한들 ‘각도’를 사용할 때의 정확도와 편의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전문적으로 ‘각도’를 사용하는 것은 더하다. 즉, 수학에서는 각종 다각형과 부채꼴 등을 정확히 그리기 힘들 것이고, 삼각함수라는 단원은 아예 존재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활용하는 과학 전반은 현재보다 어마어마하게 퇴보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수학의 개념 하나만 없어도 지구의 과학은 지금과 같을 수는 없으며, 원래 있었던 수학의 개념이나 이론이 하나만 없어져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바꿔 생각해보자. 원래 없었던 개념이 새로 하나 만들어지면 그로 인해 우리 생활은 엄청나게 나아질 것 같지 않은가? 예를 들면 스마트폰, 페이스북, 카톡, 의류관리기, 날개없는 선풍기….

그런데 다음은 누가 뭘 만들라나? 혹시 여러분이? ^^


[영·수야! 놀자] 최문섭의 신나는 수학여행-박희성의 맛깔난 잉글리시
최문섭

‘신나는 수학여행’ 집필은 ‘수학나눔연구회’ 소속 서울 대치동 유명 강사들이 맡는다. 수학나눔연구회(회장 최문섭)는 20명의 유명 강사들이 교육기부 및 재능기부를 통해 교육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의 수학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단체다. 이를 위해 현재 무료 수학 인터넷 강의사이트인 ‘수제비넷(www.sujebi.net)’을 운영하고 있다. 대입설명회, 교육불모지의 방과후수업 강의지원, 중·고교 교재 집필, 각종 온라인 교육업체 출강 등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수학나눔연구회 소속 강사들의 저서로는 『최상위 수학』『최고득점 수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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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의 맛깔난 잉글리시 - Do I know you?…내가 당신을 아나요?

영어 표현 중에 “Do I know you?”라는 표현이 있다. 그대로 직역하면 대단히 이상한 표현이다. “내가 당신을 알고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상대방보고 자신을 아냐고 물어야지, 내가 상대방을 아는지 여부를 대체 왜 상대방에게 묻는 걸까? 물론 영어로 Do you know me?라고 표현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럴 경우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은 기분이 좀 상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영·수야! 놀자] 최문섭의 신나는 수학여행-박희성의 맛깔난 잉글리시
의외의 장소에서 지인을 만났을 경우, 한국어로는 “여기는 웬일이세요?”라고 상대방에게 묻는다. 즉 본질적으로는 상대방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묻는 것인데, 이를 영어로 하면 “Why are you here?”혹은 “Why did you come here?” 정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영어에선 you를 주어로 하여 질문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마치 그 행위의 이유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Why are you here?”라고 할 경우 우리말의 “여기는 웬일이세요?”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 여기는 왜 왔어요?”하고 따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에선 여기에 왜 왔냐고 물을 때 “What brings you here?”라고 묻는다. 우리말로 하자면 “무엇이 당신을 여기로 데려왔나요?”라고 묻는 셈이다.

“왜 그렇게 생각해?”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Why do you think so?”라고 할 경우 “Why are you here?”처럼 “아니, 대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따지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영어에선 you를 주어로 사용하지 않고, “What makes you think so?”(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나요?)”라고 돌려 묻는다.

“Do you know me?”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어렴풋이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사람에게 “Do you know me?”라고 물어보면 상대방은 굉장히 당황할 수 있다. 상대방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누가 와서 “너 나 알아?”라고 묻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Have we met before?(우리 만난 적 있나요?)”라고 묻거나, 우리말로는 좀 이상해 보이지만 “Do I know you?(내가 당신을 알고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다. 즉 영어의 “Do I know you?”를 제대로 번역하자면 “우리 혹시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또는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정도가 되어야 한다.


회화 한마디

A: Excuse me, do I know you from somewhere?

B: No, I don’t think so.

A: Sorry, I must have mistaken you for someone else.

B: That’s fine. Those things happen.



A: 실례지만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B: 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요.

A: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과 착각했나봐요.

B: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영·수야! 놀자] 최문섭의 신나는 수학여행-박희성의 맛깔난 잉글리시


박희성

‘맛깔난 잉글리시’ 필자 박희성 씨는 고려대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현재 메가유티 편입학원에서 다양한 온·오프라인 강의를 하고 있으며 7년째 에몽잉글리시(EmongEnglish.net)를 운영해 오고 있다. 국내 최대 수험생 커뮤니티인 <오르비>와 <네이버 카페 수만휘>에서 ‘에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어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멘토이자 칼럼니스트로 많은 도움도 주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에몽의 수능영어 독해기술』『에몽의 영문법의 재발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