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 못올리고 학원들 배만 불려"

"실효성 없을 뿐더러 지나친 기본권 침해"

[시사이슈 찬반토론] 선행 학습 금지 옳을까요
교육과학기술부가 ‘선행학습 해소를 위한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1학기 고교 수학에만 국한됐던 ‘선행학습 유발학교 점검’ 대상은 2학기부터 중학교 주요 교과로 확대된다. 각 시·도 교육청은 매 학기 ‘교육과정 운영 점검단’을 꾸려 중·고교 수업 및 내신시험이 해당 학기 편성된 교육과정과 일치하는지 조사한다. 특히 학원들이 밀집한 서울, 경기, 대구, 부산, 대전, 광주, 경남 등 7개 교육청은 지역 내 중·고교의 10% 이상을 점검해야 한다. 정상 교육과정대로 운영하지 않은 학교는 1차 적발시 기관 경고나 주의 등의 조치를 받게 되고, 2차 때는 교사 및 학교장까지 징계하도록 했다. 또 내년 고교 대학 입시부터는 전형요소에 선행학습 영향평가도 추가된다. 교과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과도한 선행학습이 사교육비 지출의 주범일 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력 및 정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예 선행학습 금지법까지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반론도 적지 않다. 자율의 영역이 돼야 하는 공부의 범위까지 규제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것이다. 선행학습 금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선행학습 금지에 가장 적극적인 단체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이다. 이 단체는 단순히 사교육을 제한하는 교과부의 지침을 넘어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률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사걱세는 선행학습 금지법 시안도 발표했는데 교과 과정이 명확한 수학과 사회, 과학분야에서는 정규 교과 과정보다 1개월 이상 앞서는 학교 학원 과외 등의 교습 프로그램을 금지하고 초등학생 이하 학생들이 성인용 어학시험인 토익과 토플 텝스 중국한어수평고시 등에 응시하는 것을 제한하자는 것 등을 담고 있다. 이 단체는 선행학습 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는데 지난 5월부터 현재까지 1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걱세는 여론조사에서도 선행학습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7.6%가 사교육기관의 선행학습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고 학교교육을 파행시키고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학부모 중에도 선행학습이 정작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올리지 못하고 학원들의 배만 부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행학습 금지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교육적 효과도 없을 뿐더러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방해한다는 지적이다.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선행학습 금지에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소수 우수한 아이들만 이애하는 선행학습은 교육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반대

선행학습 금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취지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드는 경우가 많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선행학습이 실제로 학업성취도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법제화는 지나치다”며 “규제 기준을 획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현실성도 없다”고 말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도 “단속을 해도 사교육기관들이 창의력수학 등 교과과정과 무관한 이름으로 얼마든지 선행학습을 할 수 있어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부를 좀 앞서서 하겠다는 걸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도 많다. 지나친 선행학습이 사교육 열풍을 불러오고 학업성취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별 효과가 없고 다소간 부작용이 있는 학습방식이라고 이를 법으로 못하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선택권과 학습권을 침해하는 결과라는 얘기다. 또 스스로 선행학습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까지 이를 강제로 못하게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 지방 자율고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한 것에 대해서도 “수월성 교육을 기대하고 자녀를 자율고에 진학시켰는데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당초의 약속을 위반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반발하는 학부모도 있다.


생각하기

선행학습 금지 논란은 과거 과외금지 조치를 둘러싸고 벌어진 찬반 논란과 그 기본에 있어서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도 과거 과외금지 조치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돌이켜보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과외전면금지법을 만들었다. 재학생의 과외 교습은 물론 학교 보충수업까지 전면 금지시켰다. 물론 음성적인 과외를 모두 없앨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과외라는 이름의 사교육은 원칙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선행 학습 금지 옳을까요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2000년 헌법재판소는 ‘과외금지법이 비록 공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고 기본권을 함부로 제한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선행학습 금지도 마찬가지다. 필요성이 있고 당위성도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법에서 금지시키는 것은 개인의 학습권과 선택권 등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행학습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대안을 찾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인 답안이다.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없애고 금지하는 게 만사는 아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