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목숨도 짓밟는 '얼굴없는 폭력'…인권보호 시급"

인터넷 실명제 찬성

인터넷의 온라인 공간은 ‘소통의 광장’이다. 한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때론 일정 부분의 사생활 정보까지도 공유한다. 하지만 인터넷의 익명성은 언제든 ‘악의의 글’로 온라인 공간을 오염시킬 수 있다. 인권이 치명적으로 훼손되고, 때론 사생활이 무참히 폭로된다. 일부에서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주장하지만 그로 인한 ‘사이버 인권침해’는 어떻게 막을지엔 속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비록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2007년 인터넷 실명제를 법제화한 것은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악플에 쓰러져 가는 희생자들

[Cover Story] "목숨도 짓밟는 '얼굴없는 폭력'…인권보호 시급"
최근 수년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연예인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2007년 가수 유니 씨는 무차별 악성 댓글 등으로 우울증을 앓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정다빈 씨도 네티즌들의 악플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준 톱스타 최진실 씨의 죽음도 악성루머와 무분별한 댓글이 주요 원인이었다.

지난해에는 야구선수와 스캔들에 휘말린 스포츠 아나운서가 악성 댓글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스탠퍼드대 영문과를 나온 인기 가수 타블로는 학력이 위조됐다고 주장하는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집요한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타진요의 주동자들은 결국 구속됐다. 최근엔 서울의 한 여고생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같은 또래 친구들의 무더기 비방에 시달리다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들의 자살 원인을 100% 악성 댓글로 보기는 어렵지만 악플은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바이러스라고 진단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공적인 자기의식이 강한 연예인들은 일반인들보다 악성 댓글에 더 상처를 받는다”며 “악성 댓글은 대인관계 기피증, 우울증으로 이어져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악플의 뿌리는'익명성'

인터넷 공간에 악플이 극성을 부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익명성’ 때문이다. 한마디로 ‘칭찬은 드러내놓고, 비난은 은밀히’라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이 부문별한 악성 댓글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 정치적 라이벌, 경쟁관계인 기업은 언제든 악플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기업들로터 보상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상품평을 올리는 ‘블랙컨슈머’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익명이 실명으로 바뀌면 악의적 댓글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된 이후 악성 댓글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포털사이트 3곳에 오른 악성 댓글은 시행 직후인 2007년 8월 13.9%로 이전(15.8%)보다 크게 줄었다. 2008년 2월에는 이 수치가 10.4%로까지 낮아졌다.

2007년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공기관이나 하루 방문 10만명이 넘는 인터넷 사이트에 의견이나 댓글을 올릴 때 실명을 사용하도록 법제화한 것은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무책임한 표현으로 개인과 사회가 입는 폐해를 막으려면 현실적으로 실명제 외에 뽀족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절실해진 인터넷 예의교육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실명제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명제 폐지 여부는 인터넷 포털이나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업체 자율에 맡겨진 상태다. 일단 이들 온라인 업체는 회원 가입이나 댓글, 상품평 등에 기존의 실명제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고 신규 가입자에 대해선 융통성을 부여한다는 방침이다.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위헌판결에도 선거법상 실명제, 도메인 네임 실명제, 게임 실명제 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선거기간 중 언론사 사이트 등에 의견이나 댓글을 올릴 때 실명을 사용하도록 한 선거법상 실명제는 이번 헌재 판결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네티즌들의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헌재가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둬 실명제 폐지 쪽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를 계기로 악플이 극성을 부리면 실명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언제든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예절교육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페이스북 등 해외 인터넷 사이트도 점차 실명제를 권유하는 분위기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인터넷 악성 댓글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사례를 토론해보자. 온라인 익명성의 부정적인 면을 공부해보자. 온라인 공간을 ‘품격있는 대화의 장’으로 만들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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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컨슈머를 막아라" …오픈 마켓 '악성 댓글과의 전쟁'

[Cover Story] "목숨도 짓밟는 '얼굴없는 폭력'…인권보호 시급"
온라인 쇼핑업계가 인터넷 실명제 위헌판결로 비상이 걸렸다. 구매한 상품에 대해 기업으로부터 보상금 등을 목적으로 의도적 악성글을 올리는 이른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들이 더 극성을 부릴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소수의 악의적 허위 상품평은 제품 판매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G마켓, 옥션, 11번가 등 오픈마켓은 블랙컨슈머의 악의적 댓글이나 상품평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명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분별한 악성 댓글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동장치인 실명제를 폐지하면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상품평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상품평을 임의로 삭제하면 전자상거래법상 과태료가 부과되고 조작 의혹 등으로 기업 이미지나 신뢰가 추락할 수 있다. 11번가 관계자는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물건을 살 수 없을 뿐더러 상품평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헌재가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실명제 폐지 적용 여부는 업계 자율에 맡겨진 상태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지는 전자상거래를 가리키는 소셜커머스도 비상이 걸린 건 마찬가지다. 소셜커머스 업계는 경쟁사의 동향을 파악해 가며 단계적으로 대응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지만 오픈마켓 업계와 비슷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로 온라인 쇼핑업계의 ‘악성댓글’과의 싸움은 더 힘겨워질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