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까지 배웠다면 이제 우리는 분량이 길더라도 쓸만한 내용만 있다면 충분히 그 칸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제시문의 조건에 따라서 길이를 충분히 늘려쓸 수 있지요. 논술 문제의 조건이란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공통점을 찾거나 비교하거나, 설명하거나 비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 생각을 붙인 것이 바로 ‘변증법’이었고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어떤 조건들이 몰려나오더라도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입니다. 조건이 더 늘어난다면 당연히 분량도 더 늘어나겠지요? 그리고 제시문의 수도 당연히 늘 것입니다.
이것이 2012년부터 강화된 유형이지요. 30분에 500자를 요구하던 기존 유형과 달리, 이렇게 자잘하게 있던 문제를 모두 모아서 긴 분량의 한 두 문제로 바꾸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꾸 ‘논술이 너무 어렵다. 쉽게 해라. 논술의 비중을 줄여라’는 요구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속임이지만, 4문제 2500자(2시간30분)를 2문제 2000자(2시간),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문제 수나 시간이 적으면 더 쉬워보이나 봅니다. 대신 난이도는 더 높아졌지요. 실례로 재작년 성균관대나 외대, 이화여대 문제와 작년 기출된 그 대학들의 문제를 비교해보세요. 체감난이도가 상당히 차이납니다. 어찌됐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기존의 문제들을 압축한 것이다보니 조건이 연결되어있다 뿐이지요. 자 우선 중급에서 우리가 다루었던 복합문제 유형(기초)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보통 제시문이 3개, 조건 2개였지만, 마무리를 <설명하고, 비판하고>와 같은 식으로 만들어버리면 제시문이 추가되거나 조건이 하나 더 등장하게 되지요. 즉 고급형태의 복합문제 유형이라하면 <a하고, b하고, c하시오>와 같이 조건이 더욱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미 쓴 글에 분량이 추가되는 정도입니다. 다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조건이 많다보니 그 조건을 모두 맞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뭐야? 뭘 어떻게 쓰라는거지?”라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답안을 작성한 후에도 자신이 작성한 답안이 문제가 요구하는 바로 그 답들과 일치하는지 검토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문제가 어려운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매우 귀찮아지는 셈이지요.
▨ 문제조건의 확인 (1)
이런 복합문제유형을 봅시다. 정형화된 패턴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작년에 기출된 광운대학교 상경계열 기출문제입니다. (광운대는 학생들의 예상보다 항상 문제가 어렵습니다. 알아두세요!)
“문제 1. ①글 (마)의 밑줄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은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②글 (가), (나)를 참고하여 이에 대하여 설명하되, ③글 (다)의 인도의 힌두화 사례와 글 (라)의 이븐 할둔의 문명론을 활용하여 논하시오.”
우리가 익숙히 봐왔던 복합문제유형과는 다릅니다. 조건이 3개나 붙어있지요. 우선 ①번 질문이 전체적인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답을 할 때, 2가지 조건이 붙은 셈이지요. 어찌했든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답안 포인트가 정리될 수 있습니다.
“전근대→근대의 전환과정을 (가) (나)를 참고하여 정확히 설명하였는가?”
“전환과정에 대해 (다)와 (라)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논하였는가?”
물론 <논하라>는 조건은 정확한 요구조건이 아니므로, 제시문이 맥락에 따라 결정될 수 있습니다. 즉, 설명-비판-의견쓰기가 모두 가능한 것이지요. 이것은 채점자가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지를 시험해보려는 것입니다. <논하라>는 조건은 정말 괴로운 조건이죠.
먼저 첫 번째 조건인 (가) (나)를 바탕으로 (마)의 전환과정을 설명해보죠. 조건이 설명이므로 (가) (나)는 모두 (마)에 포함된 내용이어야 합니다. 제시문이 한 개이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해 제시문이 2개나 들어가죠. 아하, 그렇습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이니만큼, (가)와 (나) 중 하나가 전근대, 다른 하나가 근대일 수 있겠지요? 보통 1 대 1의 설명관계가 되어야 하지만, 1 대 2이니 포함관계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이 전환과정을 논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머리를 미리 굴려야 하는 부분은 (가) (나)와 (다) (라)의 관계입니다. 가령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 (나)와 (다) (라)가 1 대 1로 연결되는구나?!” (즉, 설명관계-예시관계)
정확히 그 관계가 연결된다면 그렇겠지만, 제시문을 읽다보니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문제조건을 다시 읽게 됩니다. (즉, 연결되지 않을 때!) 그러므로, 애초에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해두어야 하지요. 이런 능력은 문제를 얼만큼 풀어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능력입니다. 문제조건만 보더라도, (마)의 한국적 정체성의 문제를 인도의 문제나 이븐 할둔의 문명론으로 다시 ‘설명’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구요?! 이미 <설명하되>라는 조건을 써먹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다) (라)의 맥락상 메시지는 (마)와 관련이 깊습니다. 즉, (마)에서 등장하는 문화적 정체성이란 것이 이미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면, (다) (라)는 자동적으로 이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을 마련하겠지요. 그렇게 될 경우, 이 문제는 다시 이렇게 정리됩니다.
“글 (가) (나)를 참고하여 (마)에 드러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과정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해 (다)와 (라)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시오.”
저 위에 있는 원래조건과 비교해서 읽어보세요. 결과적으로 답안은 같겠지만, 중간에 많은 학생들이 ‘헛발질’(?)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급형태의 복합문제유형은 이렇듯, 조건을 다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문제의도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이런 류의 문제를 내는 대학은 대표적으로 동국대, 국민대, 광운대, 경기대입니다. 경기대의 경우 복합유형의 문제만 내다보니까 난이도 조절을 위해서 꼬거나, 혹은 풀거나 하지요.
▨ 문제조건의 확인 (2)
이번엔 경기대의 작년 기출 문제를 하나 보지요. 같은 복합유형이긴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하지?’를 요구하는 위 문제와 유형이 다릅니다. ‘뭘 쓰라는 거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이지요.
“제시문 (다)와 (라)를 참조하여 (나)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시오.”
흔치 않은 조건입니다. 쉽게 바꿔서쓰면 <a를 바탕으로 b를 바탕으로 c를 논술하시오>가 됩니다. 애초에 이중조건이므로 ‘애매함’을 노린 것 같습니다. 즉 (다)와 (라)를 참조하여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도 중간에 끼어넣으라는 것인지, (다)와 (라)를 참조하여 (나)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쓰고, 이를 바탕으로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라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읽는 것도 헷갈리지요? 쉽게 정리하면 이 문제는 <무엇하고, 무엇하시오>류의 복합문제처럼 문제조건 2개가 붙은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토대로 무엇하시오>류의 문제처럼 그냥 1개짜리 문제인지 헷갈리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말 ‘별로’인 조건입니다. 이는 마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돈”이란 표현과 같이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인지 ‘돈’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중수식이란 이래서 곤혹스럽습니다.)
자, 이런 류의 문제를 맞닥뜨린다면 역시나 제시문간의 관계를 토대로 파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와 (라)와 ㉠, ㉡이 1 대 1로 매칭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것을 연결시키고, 이를 토대로 소설적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마 정석이겠지요. 전 문제를 풀지 않고도 어떻게 매칭되는지 알았을까요? 당연히 제시문의 짝이 맞으니까요. 만일 ㉠, ㉡이라는 조건이 없었으면 (나)안에서 (다)와 (라)와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 찾아봤을 겁니다.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not A but B>와 같은 구조가 반드시 들어있을테니까요.
결과적으로 위 문제는 이렇게 바꾸면 한결 더 이해가 빠릅니다.
“제시문 (다)와 (라)를 바탕으로 (나)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시오.”
지금까지 본 내용을 토대로 종합해보자면, 고급 수준의 복합문제유형은, 혹은 이제부터 풀게 될 문제들은 이렇듯 문제조건만으로 대략의 구조나 문제의도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가시적으로 요구사항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내가 뭐를 요구했는지 맞혀보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는 물론 어느 정도 기본기가 쌓인 학생이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들에게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노린 중위권 대학들이 주로 써먹는 수이지요.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조건은 깔끔하게 떨어집니다. “무엇을 쓰라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는 반응이 나와야 하거든요.
▨ 연재본의 배포에 관하여
연재는 pdf파일 형태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3~5월분의 생글연재분을 정리해서 보실 분들은 연락주세요. 이론뿐만 아니라 문제와 해설, 예시답안이 담긴 교재형태로 보실 분들도 연락주시고요.
신청시에는 이름 / 소속학교명 / 전화번호를 기재해서 sgsgnote@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이번주에는 연재에 소개해드린 2012년 경기대 수시기출문제 <사씨남정기>문제에 대한 해설과 예시답안도 신청시 보내드립니다. (5p 분량)
이용준 S·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어떤 조건들이 몰려나오더라도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입니다. 조건이 더 늘어난다면 당연히 분량도 더 늘어나겠지요? 그리고 제시문의 수도 당연히 늘 것입니다.
이것이 2012년부터 강화된 유형이지요. 30분에 500자를 요구하던 기존 유형과 달리, 이렇게 자잘하게 있던 문제를 모두 모아서 긴 분량의 한 두 문제로 바꾸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꾸 ‘논술이 너무 어렵다. 쉽게 해라. 논술의 비중을 줄여라’는 요구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속임이지만, 4문제 2500자(2시간30분)를 2문제 2000자(2시간),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문제 수나 시간이 적으면 더 쉬워보이나 봅니다. 대신 난이도는 더 높아졌지요. 실례로 재작년 성균관대나 외대, 이화여대 문제와 작년 기출된 그 대학들의 문제를 비교해보세요. 체감난이도가 상당히 차이납니다. 어찌됐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기존의 문제들을 압축한 것이다보니 조건이 연결되어있다 뿐이지요. 자 우선 중급에서 우리가 다루었던 복합문제 유형(기초)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보통 제시문이 3개, 조건 2개였지만, 마무리를 <설명하고, 비판하고>와 같은 식으로 만들어버리면 제시문이 추가되거나 조건이 하나 더 등장하게 되지요. 즉 고급형태의 복합문제 유형이라하면 <a하고, b하고, c하시오>와 같이 조건이 더욱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미 쓴 글에 분량이 추가되는 정도입니다. 다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조건이 많다보니 그 조건을 모두 맞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뭐야? 뭘 어떻게 쓰라는거지?”라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답안을 작성한 후에도 자신이 작성한 답안이 문제가 요구하는 바로 그 답들과 일치하는지 검토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문제가 어려운 것도 어려운 것이지만, 매우 귀찮아지는 셈이지요.
▨ 문제조건의 확인 (1)
이런 복합문제유형을 봅시다. 정형화된 패턴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작년에 기출된 광운대학교 상경계열 기출문제입니다. (광운대는 학생들의 예상보다 항상 문제가 어렵습니다. 알아두세요!)
“문제 1. ①글 (마)의 밑줄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은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②글 (가), (나)를 참고하여 이에 대하여 설명하되, ③글 (다)의 인도의 힌두화 사례와 글 (라)의 이븐 할둔의 문명론을 활용하여 논하시오.”
우리가 익숙히 봐왔던 복합문제유형과는 다릅니다. 조건이 3개나 붙어있지요. 우선 ①번 질문이 전체적인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답을 할 때, 2가지 조건이 붙은 셈이지요. 어찌했든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답안 포인트가 정리될 수 있습니다.
“전근대→근대의 전환과정을 (가) (나)를 참고하여 정확히 설명하였는가?”
“전환과정에 대해 (다)와 (라)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논하였는가?”
물론 <논하라>는 조건은 정확한 요구조건이 아니므로, 제시문이 맥락에 따라 결정될 수 있습니다. 즉, 설명-비판-의견쓰기가 모두 가능한 것이지요. 이것은 채점자가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지를 시험해보려는 것입니다. <논하라>는 조건은 정말 괴로운 조건이죠.
먼저 첫 번째 조건인 (가) (나)를 바탕으로 (마)의 전환과정을 설명해보죠. 조건이 설명이므로 (가) (나)는 모두 (마)에 포함된 내용이어야 합니다. 제시문이 한 개이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해 제시문이 2개나 들어가죠. 아하, 그렇습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전환이니만큼, (가)와 (나) 중 하나가 전근대, 다른 하나가 근대일 수 있겠지요? 보통 1 대 1의 설명관계가 되어야 하지만, 1 대 2이니 포함관계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이 전환과정을 논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머리를 미리 굴려야 하는 부분은 (가) (나)와 (다) (라)의 관계입니다. 가령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 (나)와 (다) (라)가 1 대 1로 연결되는구나?!” (즉, 설명관계-예시관계)
정확히 그 관계가 연결된다면 그렇겠지만, 제시문을 읽다보니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될 때, 우리는 문제조건을 다시 읽게 됩니다. (즉, 연결되지 않을 때!) 그러므로, 애초에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해두어야 하지요. 이런 능력은 문제를 얼만큼 풀어봤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능력입니다. 문제조건만 보더라도, (마)의 한국적 정체성의 문제를 인도의 문제나 이븐 할둔의 문명론으로 다시 ‘설명’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구요?! 이미 <설명하되>라는 조건을 써먹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다) (라)의 맥락상 메시지는 (마)와 관련이 깊습니다. 즉, (마)에서 등장하는 문화적 정체성이란 것이 이미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면, (다) (라)는 자동적으로 이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을 마련하겠지요. 그렇게 될 경우, 이 문제는 다시 이렇게 정리됩니다.
“글 (가) (나)를 참고하여 (마)에 드러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전환과정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해 (다)와 (라)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시오.”
저 위에 있는 원래조건과 비교해서 읽어보세요. 결과적으로 답안은 같겠지만, 중간에 많은 학생들이 ‘헛발질’(?)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급형태의 복합문제유형은 이렇듯, 조건을 다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문제의도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이런 류의 문제를 내는 대학은 대표적으로 동국대, 국민대, 광운대, 경기대입니다. 경기대의 경우 복합유형의 문제만 내다보니까 난이도 조절을 위해서 꼬거나, 혹은 풀거나 하지요.
▨ 문제조건의 확인 (2)
이번엔 경기대의 작년 기출 문제를 하나 보지요. 같은 복합유형이긴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하지?’를 요구하는 위 문제와 유형이 다릅니다. ‘뭘 쓰라는 거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문제이지요.
“제시문 (다)와 (라)를 참조하여 (나)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시오.”
흔치 않은 조건입니다. 쉽게 바꿔서쓰면 <a를 바탕으로 b를 바탕으로 c를 논술하시오>가 됩니다. 애초에 이중조건이므로 ‘애매함’을 노린 것 같습니다. 즉 (다)와 (라)를 참조하여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도 중간에 끼어넣으라는 것인지, (다)와 (라)를 참조하여 (나)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쓰고, 이를 바탕으로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라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읽는 것도 헷갈리지요? 쉽게 정리하면 이 문제는 <무엇하고, 무엇하시오>류의 복합문제처럼 문제조건 2개가 붙은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토대로 무엇하시오>류의 문제처럼 그냥 1개짜리 문제인지 헷갈리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말 ‘별로’인 조건입니다. 이는 마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돈”이란 표현과 같이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인지 ‘돈’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중수식이란 이래서 곤혹스럽습니다.)
자, 이런 류의 문제를 맞닥뜨린다면 역시나 제시문간의 관계를 토대로 파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와 (라)와 ㉠, ㉡이 1 대 1로 매칭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것을 연결시키고, 이를 토대로 소설적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마 정석이겠지요. 전 문제를 풀지 않고도 어떻게 매칭되는지 알았을까요? 당연히 제시문의 짝이 맞으니까요. 만일 ㉠, ㉡이라는 조건이 없었으면 (나)안에서 (다)와 (라)와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 있는지 찾아봤을 겁니다.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not A but B>와 같은 구조가 반드시 들어있을테니까요.
결과적으로 위 문제는 이렇게 바꾸면 한결 더 이해가 빠릅니다.
“제시문 (다)와 (라)를 바탕으로 (나)의 ㉠, ㉡이 (가)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의 소설적 가치를 논술하시오.”
지금까지 본 내용을 토대로 종합해보자면, 고급 수준의 복합문제유형은, 혹은 이제부터 풀게 될 문제들은 이렇듯 문제조건만으로 대략의 구조나 문제의도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가시적으로 요구사항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내가 뭐를 요구했는지 맞혀보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는 물론 어느 정도 기본기가 쌓인 학생이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들에게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노린 중위권 대학들이 주로 써먹는 수이지요.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조건은 깔끔하게 떨어집니다. “무엇을 쓰라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는 반응이 나와야 하거든요.
▨ 연재본의 배포에 관하여
연재는 pdf파일 형태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3~5월분의 생글연재분을 정리해서 보실 분들은 연락주세요. 이론뿐만 아니라 문제와 해설, 예시답안이 담긴 교재형태로 보실 분들도 연락주시고요.
신청시에는 이름 / 소속학교명 / 전화번호를 기재해서 sgsgnote@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이번주에는 연재에 소개해드린 2012년 경기대 수시기출문제 <사씨남정기>문제에 대한 해설과 예시답안도 신청시 보내드립니다. (5p 분량)
이용준 S·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