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옳을까? 찬반논란이 심했던 이 문제에 대한 법원의 1차 판결이 나왔다. 결론은 영업시간 제한조치를 취소하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밤 12시~오전 8시 영업을 금지하고 매달 둘째·넷째 일요일에 의무휴업하도록 한 행정처분은 효력을 잃게 됐다.
#법원 "지자체장 재량권 침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서울 강동·송파구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조치에 반발해 롯데쇼핑 등 6개 대형마트·SSM 운영업체가 낸 소송에서 “영업시간 제한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 의회는 지난 3월과 4월 지역 내 대형마트와 SSM 영업을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못하게 제한하고 두 번째와 네 번째 일요일엔 의무적으로 휴업하도록 조례를 제정해 시행했다.
재판부는 지방자치단체장(구청장)이 영업시간을 재량에 따라 결정하도록 규정한 유통산업기본법을 어긴 조례는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영업시간 제한과 휴업일 지정권한을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주고 있는 한 지방의회가 만든 조례를 무조건 따르게 한 것은 무효”라고 지적했다. 또 “강동·송파구가 조례를 시행하기 전에 당사자(유통업체)에 그 내용을 알려주고 의견을 듣도록 행정절차법이 규정하고 있는데도 송파구는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대형마트·SSM업체는 매장이 있는 전국의 지자체를 상대로 모두 소송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서울시와 협의해 신속하게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며 항소의사를 밝혔고, 박춘희 송파구청장도 “판결문이 공식적으로 도착하면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영업자유 침해 여부는 판단안해
이번 판결은 조례가 만들어진 과정과 지자체장의 재량권 침해에 관한 것만 판단했을 뿐 당초 이 사건의 본질인 영업자유 침해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영업자유 침해 여부란 어떤 행정당국이 특정 업체나 업종의 영업시간을 강제로 제한하고 금지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대형마트와 SSM 영업시간 제한은 소위 동반성장, 즉 재래시장 보호라는 명분에서 나왔다. 국가나 지자체가 사유재산과 영업의 자유를 침해해도 되는지가 핵심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해당 조례를 만드는 과정부터가 문제였기 때문에 본질을 판단할 필요조차 없다는 게 법원의 입장인 듯하다. 대개 입법과정이 불법인 경우 해당 문제의 본질을 판단하지 않는 게 법원 판결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과연 법원이 본질 판단에 들어갔다면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
지난 1월 법제화된 대형마트, SSM 규정(유통산업발전법 12조2항)과 지자체 의회의 조례는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훼손하고 사업자의 권리를 제한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소비자의 권리보다 대형마트를 억제하면 재래시장이 산다는 포퓰리즘적 논리가 앞섰던 게 사실이다.
#영업제한의 후유증
대형마트 등의 영업제한은 뜻은 좋았지만 당초 설정한 목표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영업제한으로 대형마트의 손실이 커졌다는 것 외에 과연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으로 재래시장이 살아났느냐는 점도 연관성이 적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후유증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 납품하던 농민과 중소업체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야간영업 제한과 매월 두 차례의 의무휴업으로 납품 물량이 급감했던 것. 이마트에 납품하는 한 농가는 납품 물량이 15% 이상 줄어 웃자란 시금치나 다른 채소를 수확하지 못했다. 신선채소를 납품하는 주요 농가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납품에 맞춰 재배했지만 납품을 줄이라는 대형마트의 요구로 난처해졌다. 서둘러 의무휴업 대상에서 빠진 농협 하나로마트로 거래선을 옮기려 했으나 그마저도 기존 납품농가의 벽에 막혀 손을 놓았다.
협력 중소업체들도 피해를 호소했다. 롯데마트에 PB(유통업체 자체 브랜드)상품 어묵을 납품하는 늘푸른바다 측은 “연간 납품액이 3억원에서 2억원대 초반으로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이마트에 돼지고기를 가공·납품하는 도드람푸드도 “주말 나들이 수요가 몰리는 5월 성수기인데도 납품 물량이 20% 줄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알바'도 줄여
월 2회 의무 휴업·자정 이후 영업 제한에 따른 고용 감소 우려도 현실로 나타났다. 5월 말 기준으로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3개 대형마트의 총근무 인원은 3월 말보다 3000명 이상 줄어 들었다. 주말 아르바이트와 협력업체 판촉 사원, 보안·주차요원 등도 줄였다. 롯데마트는 6월 중 예정했던 만 56~60세 대상 무기계약직 사원 채용을 연기했고, 홈플러스 역시 영업규제 여파로 ‘실버사원’ 채용을 보류했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의무 휴무의 취지를 이해하지만 실질적인 불편함을 호소했다. 맞벌이 부부는 대개 주말에 몰아서 장을 보는데 둘째, 넷째 휴일 휴업으로 장보는 것을 놓치기 일쑤였다.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린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주말에 쇼핑할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부는 어차피 시장에 안 간다”는 입장이다. “대형마트에 식품만 사러 가는 게 아니다. 문을 닫으면 그냥 하루 기다리지, 먼 재래시장에는 안 간다”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특히 이미 대형마트가 생활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생활 수준도 높아져 깨끗하고 상쾌한 대형마트를 찾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형마트에 가면서 쇼핑만 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나가 커피도 마시고, 책방도 가고, 노점상에서 물건도 사기 때문에 대형마트를 닫는 것은 유동인구를 줄이는 조치라는 지적도 많다.
#엇갈리는 전통시장
전통시장 쪽은 일단 혜택을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장경영진흥원과 소상공인진흥원은 “대형마트와 SSM 주변 중소 소매업체 904개, 전통시장 내 점포 417개 대상 조사에서 의무 휴업이 시행된 5월 넷째 일요일 평균 매출이 1주일 전보다 12.4%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마다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 시장에선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후유증 때문에 손님발길이 줄었다고 한다. SSM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소규모 채소 과일 노점상들이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통 전문가들은 보완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오세조 연세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형유통점 규제는 한시(限時)적으로 정하고, 그동안 영세상인들을 체계화시키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유통업은 생물처럼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영세상인을 기존의 형태로 계속 보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학자는 “소비자 편의, 상품 신뢰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계속 불편을 느끼면 소비 자체가 줄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휴무일 더 늘리겠다"
민주통합당은 휴무일을 현행 월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영업시간 제한도 현행 밤 12시 이후에서 오후 9시 이후로 강화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새누리당도 중소도시 대형마트·SSM의 출점을 5년간 금지하는 방안을 공약하는 등 정치권은 규제 강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대형마트 임원은 “이런 법안이 추진된다면 협력업체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법원 "지자체장 재량권 침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서울 강동·송파구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조치에 반발해 롯데쇼핑 등 6개 대형마트·SSM 운영업체가 낸 소송에서 “영업시간 제한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 의회는 지난 3월과 4월 지역 내 대형마트와 SSM 영업을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못하게 제한하고 두 번째와 네 번째 일요일엔 의무적으로 휴업하도록 조례를 제정해 시행했다.
재판부는 지방자치단체장(구청장)이 영업시간을 재량에 따라 결정하도록 규정한 유통산업기본법을 어긴 조례는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영업시간 제한과 휴업일 지정권한을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주고 있는 한 지방의회가 만든 조례를 무조건 따르게 한 것은 무효”라고 지적했다. 또 “강동·송파구가 조례를 시행하기 전에 당사자(유통업체)에 그 내용을 알려주고 의견을 듣도록 행정절차법이 규정하고 있는데도 송파구는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대형마트·SSM업체는 매장이 있는 전국의 지자체를 상대로 모두 소송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서울시와 협의해 신속하게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며 항소의사를 밝혔고, 박춘희 송파구청장도 “판결문이 공식적으로 도착하면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영업자유 침해 여부는 판단안해
이번 판결은 조례가 만들어진 과정과 지자체장의 재량권 침해에 관한 것만 판단했을 뿐 당초 이 사건의 본질인 영업자유 침해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영업자유 침해 여부란 어떤 행정당국이 특정 업체나 업종의 영업시간을 강제로 제한하고 금지하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대형마트와 SSM 영업시간 제한은 소위 동반성장, 즉 재래시장 보호라는 명분에서 나왔다. 국가나 지자체가 사유재산과 영업의 자유를 침해해도 되는지가 핵심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해당 조례를 만드는 과정부터가 문제였기 때문에 본질을 판단할 필요조차 없다는 게 법원의 입장인 듯하다. 대개 입법과정이 불법인 경우 해당 문제의 본질을 판단하지 않는 게 법원 판결의 대체적인 입장이다. 과연 법원이 본질 판단에 들어갔다면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
지난 1월 법제화된 대형마트, SSM 규정(유통산업발전법 12조2항)과 지자체 의회의 조례는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훼손하고 사업자의 권리를 제한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소비자의 권리보다 대형마트를 억제하면 재래시장이 산다는 포퓰리즘적 논리가 앞섰던 게 사실이다.
#영업제한의 후유증
대형마트 등의 영업제한은 뜻은 좋았지만 당초 설정한 목표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영업제한으로 대형마트의 손실이 커졌다는 것 외에 과연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으로 재래시장이 살아났느냐는 점도 연관성이 적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후유증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 납품하던 농민과 중소업체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야간영업 제한과 매월 두 차례의 의무휴업으로 납품 물량이 급감했던 것. 이마트에 납품하는 한 농가는 납품 물량이 15% 이상 줄어 웃자란 시금치나 다른 채소를 수확하지 못했다. 신선채소를 납품하는 주요 농가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납품에 맞춰 재배했지만 납품을 줄이라는 대형마트의 요구로 난처해졌다. 서둘러 의무휴업 대상에서 빠진 농협 하나로마트로 거래선을 옮기려 했으나 그마저도 기존 납품농가의 벽에 막혀 손을 놓았다.
협력 중소업체들도 피해를 호소했다. 롯데마트에 PB(유통업체 자체 브랜드)상품 어묵을 납품하는 늘푸른바다 측은 “연간 납품액이 3억원에서 2억원대 초반으로 줄어들 것 같다”고 했다. 이마트에 돼지고기를 가공·납품하는 도드람푸드도 “주말 나들이 수요가 몰리는 5월 성수기인데도 납품 물량이 20% 줄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알바'도 줄여
월 2회 의무 휴업·자정 이후 영업 제한에 따른 고용 감소 우려도 현실로 나타났다. 5월 말 기준으로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3개 대형마트의 총근무 인원은 3월 말보다 3000명 이상 줄어 들었다. 주말 아르바이트와 협력업체 판촉 사원, 보안·주차요원 등도 줄였다. 롯데마트는 6월 중 예정했던 만 56~60세 대상 무기계약직 사원 채용을 연기했고, 홈플러스 역시 영업규제 여파로 ‘실버사원’ 채용을 보류했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의무 휴무의 취지를 이해하지만 실질적인 불편함을 호소했다. 맞벌이 부부는 대개 주말에 몰아서 장을 보는데 둘째, 넷째 휴일 휴업으로 장보는 것을 놓치기 일쑤였다.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린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주말에 쇼핑할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부는 어차피 시장에 안 간다”는 입장이다. “대형마트에 식품만 사러 가는 게 아니다. 문을 닫으면 그냥 하루 기다리지, 먼 재래시장에는 안 간다”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특히 이미 대형마트가 생활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생활 수준도 높아져 깨끗하고 상쾌한 대형마트를 찾는 게 하나의 문화가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형마트에 가면서 쇼핑만 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나가 커피도 마시고, 책방도 가고, 노점상에서 물건도 사기 때문에 대형마트를 닫는 것은 유동인구를 줄이는 조치라는 지적도 많다.
#엇갈리는 전통시장
전통시장 쪽은 일단 혜택을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장경영진흥원과 소상공인진흥원은 “대형마트와 SSM 주변 중소 소매업체 904개, 전통시장 내 점포 417개 대상 조사에서 의무 휴업이 시행된 5월 넷째 일요일 평균 매출이 1주일 전보다 12.4%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마다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 시장에선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후유증 때문에 손님발길이 줄었다고 한다. SSM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소규모 채소 과일 노점상들이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통 전문가들은 보완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오세조 연세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형유통점 규제는 한시(限時)적으로 정하고, 그동안 영세상인들을 체계화시키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유통업은 생물처럼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영세상인을 기존의 형태로 계속 보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학자는 “소비자 편의, 상품 신뢰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계속 불편을 느끼면 소비 자체가 줄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휴무일 더 늘리겠다"
민주통합당은 휴무일을 현행 월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영업시간 제한도 현행 밤 12시 이후에서 오후 9시 이후로 강화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새누리당도 중소도시 대형마트·SSM의 출점을 5년간 금지하는 방안을 공약하는 등 정치권은 규제 강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대형마트 임원은 “이런 법안이 추진된다면 협력업체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