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중국은 '성장' 앞으로… 한국은 '복지' 앞으로?
'충칭 모델'과 중국의 이념투쟁

중국이 소위 ‘충칭 모델’을 버리고 시장경제 중심의 개혁·개방을 가속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는 지난 18일 한 포럼에서 “중국의 개혁은 어려운 시기에 진입해 있다”며 “그러나 중국은 개혁·개방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3월 20일 한국경제신문

☞ 올 가을 예정된 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 지도부의 이념투쟁이 한창이다. 물밑에서 이뤄져 자세한 내용까진 알 수 없지만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해임 여부를 둘러싸고 중국 최고 지도부가 격렬한 사상투쟁을 펼쳤다는 정황이 여기저기 드러나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이념투쟁은 보시라이의 이른바 ‘충칭 모델’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좌파적 ‘충칭 모델’로의 전환이냐, ‘광둥 모델’로 일컬어지는 시장경제체제 지속이냐가 이념투쟁의 쟁점이었으며, 결과는 보시라이의 해임과 ‘광둥 모델’의 승리였다. 이는 중국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추진해갈 것임을 시사한다.

‘충칭 모델’은 보시라이 전 서기가 2007년 충칭에 부임한 이래 추구한 좌파적 정책을 뜻한다. 그는 국유기업 육성과 분배중시, 사회주의 사상 고취 등을 추진했다. 사회적으론 부패 척결, 문화적으론 문화대혁명을 연상케 하는 홍색(紅色) 가요 부르기 등 정신문명 건설을 외쳤다. 보시라이는 이 과정에서 ‘조직폭력배 퇴치’를 명분으로 무자비한 공안 정치를 펴 원성을 샀다.

개혁·개방 이후 고속성장에서 소외된 일부 시민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이래 중국을 크게 발전시켜온 시장중심 모델에 큰 위협이 됐다. 중국이 죽의 장막을 걷고 미국과 나란히 어깨를 견줄 만큼 대국굴기(大國堀起)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가고 있는 마당에 ‘창훙다헤이(唱紅打黑,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하고 부패를 척결한다)’와 ‘성장보다는 분배를’이란 구호를 내세우고 마오쩌둥의 어록을 외우게 한 충칭 모델은 중국 최고 지도층에겐 대중을 현혹하는 달콤한 마약으로 비쳐졌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리커창 부총리가 “중국의 개혁·개방은 경제구조 고도화와 현대화 건설을 달성하기 위한 근본 동력”이라며 개혁·개방을 강조한 것은 충칭 모델로 대표되는 좌파적 이념에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남순강화(南巡講話) 2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초 광둥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다”고 밝힌 이래 연일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국가발전과 진보도 없고 중국의 오늘도 없었다”면서 “개혁·개방은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14일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한국의 국회에 해당) 폐막 연설에선 “정치 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개방과 대척점에 있는) 문화대혁명이 재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이념투쟁 끝에 보시라이는 지난 15일 서기직에서 전격 해임됐다. 오른팔인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부시장이 2월6일 미국 대사관으로 망명을 시도한 사건이 일어난 지 38일 만이다. 보시라이의 해임은 표면적으론 왕리쥔의 망명 시도에 상관으로 책임을 지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뒤편에는 지도부 간 권력투쟁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에 의해 지배되는 체제다. 공산당원은 8000만명이 넘는다. 최고 지도부는 9명으로 구성된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상무위원은 25명인 정치국원 가운데 선발한다. 현재 중국 정가는 태자당과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으로 양분돼 있다. 태자당은 공산혁명 원로나 고위 관료 자녀 출신 정치세력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보시라이도 태자당에 속한다. 후진타오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 계열로는 리커창 상무부총리와 왕양(汪洋) 광둥성 당서기 등이 있다.

덩샤오핑은 1989년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톈안먼 사태 이후 개혁·개방 노선이 비판받자 1992년 1~2월 선전, 상하이 등 남부지역을 시찰한 뒤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남순강화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지도부의 이념투쟁에서 ‘광둥 모델’이 승리한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좌파의 유혹을 뿌리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중국이 상당 기간 개방에 기반한 성장정책을 추진해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주의면서 개방과 성장 정책을 밀고 나가는 중국과 시장경제면서 개방에 반대하고 복지에 모든 걸 쏟아부으려는 대한민국, 10년 후 두 나라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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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서 부실기업 솎아내는 '상장 폐지'

상장폐지와 자본시장 건전성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중국은 '성장' 앞으로… 한국은 '복지' 앞으로?
3월 증시에 ‘상장 폐지’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지난해 경영 악화로 실적이 나빠진 기업이 속출할 전망이다. 지난 12일에는 코스닥 상장사인 아이스테이션이 자본 전액 잠식으로 상장 폐지 위기에 처했다고 공시했다.

- 3월 20일 한국경제신문
☞ 일정 자격을 갖춘 기업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주식이나 채권을 증권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도록 이름을 올리는 것을 상장(listing)이라고 한다. 증시에서 주식이 매매되려면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추는 등 거래소가 제정한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래야 부실기업 주식이 거래돼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전체 자본시장의 건전성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장 당시 요건을 충족한 우량 기업일지라도 경영이 부실해질 수 있다. 상장 폐지는 이처럼 부실해진 기업을 증시에서 솎아내 투자자들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고, 기업들도 필요한 자금을 자본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상장 폐지는 상장된 유가증권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상장자격이 취소되는 것을 뜻한다. 상장 폐지는 △상장 폐지 기준에 해당돼 한국거래소(KRX)가 상장을 폐지시키는 경우와 △상장회사가 스스로 상장을 폐지하는 경우가 있다. 상장사가 스스로 상장을 폐지하는 것은 대부분 외부의 경영간섭을 받기 싫어서다.

상장 폐지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거래소 직권에 의한 것이다. 상장 폐지 기준에는 △사업보고서 미제출 △감사의견 거절 △영업정지 △부도 발생 △주식분산 미달 △자본잠식 등이 있다. 감사인이 기업이 작성한 회계보고서가 믿을 수 없다며 ‘의견 거절’과 ‘부적정’ 감사의견을 낼 때도 상장 폐지 사유에 해당한다. 상장 폐지가 결정되면 거래소는 투자자에게 최종 매매 기회를 주기 위해 일정 기간 정리매매를 할 수 있도록 한 후 상장을 폐지한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중국은 '성장' 앞으로… 한국은 '복지' 앞으로?
상장 폐지는 자본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사망신고나 다름없다. 비상장사로 영업활동은 영위할 수 있지만 증시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혜택이 사라진다. 자금 조달이 힘들어지고 주식의 유동성도 제약을 받게 된다.

투자자들이 입는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0년에는 사상 최대인 94개가, 올 들어서만도 6개사가 상장 폐지의 고배를 마셨다. 2001년 이후 지난 15일까지 증시에서 사라진 기업은 582개에 이른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