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54) 조세 피난처 활용해 지중해 장악한 로마인들
작은 도시 국가로 시작한 로마가 유럽대륙을 장악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다. 점령지역의 사람들로 하여금 로마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평등정책과 정치력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도 있으며, 도로 등을 정비해 점령지의 모든 지역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한 데서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로마가 지중해 지역을 장악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시칠리아 지역을 조세피난지역으로 삼은 데 있다.

조세피난지역이란 조세피난처라고도 하는데 세금이 전혀 없거나 아주 낮은 세율(통상적으로 발생 소득의 15% 이하)을 적용하는 지역이나 국가를 말한다. 오늘날에는 세제상의 혜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외환거래, 회사 설립 등의 절차 또한 함께 완화해 기업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장애 요인을 줄여준 지역이나 국가를 말한다. 기업들은 세금 절감과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찾아 이러한 조세피난처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국가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 등을 설립하고 자금 돈세탁을 위해서 혹은 본국의 세금 징수를 회피하기 위해서 조세피난처를 이용하기도 한다.

낮은 세율로 시칠리아 통치

기원전 2세기 무렵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 지역으로의 진출을 꾀한다. 특히 지중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반도와 아프리카 사이의 해상 교역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시칠리아 섬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 지역은 지중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를 비롯해 메시나, 시라쿠사 등 세 개의 국가가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다. 기원전 265년 시라쿠사가 메시나를 침략하자 메시나의 왕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기에 이르고, 로마 역시 메시나의 요청을 거절할 경우 자칫 카르타고가 시칠리아 섬 전체를 장악할 경우 지중해 해상 무역의 패권은 완전히 카르타고로 넘어간다고 판단해 메시나에 지원군을 파견한다. 이것이 제1차 포에니 전쟁이다. 이 전쟁은 결국 로마의 승리로 귀결되고, 시칠리아 섬의 서쪽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로마는 통상 전쟁을 통해 새로이 확보한 도시국가에 대해서 자치권을 부여해 로마연합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방식을 추구해 왔지만, 지중해 해상 패권의 절대적인 위치에 놓인 시칠리아 섬 지역에 대해서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로마의 속주로 편입시킨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이들 지역을 로마의 속주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우려했는데, 그것은 원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라쿠사와 메시나 두 나라가 자신들보다는 옛 그리스에 가까운 독립국가였으며, 아직도 시칠리아 섬의 서쪽 지역에는 카르타고라는 무시 못 할 국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역 민심이 로마가 아니라 카르타고로 돌아설 것을 우려한 것이다.

로마는 바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시칠리아의 지역을 조세피난지역으로 삼는다. 당시 카르타고 본국의 세율은 25~50%에 가깝게 부과하고 있었다. 반면, 로마는 시칠리아 섬 지역에 대해서 10%의 세금만을 부과하기로 결정한다. 이것은 기존에 시칠리아 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카르타고가 아니라 로마가 점령한 지역을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을 더욱 선호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 됐으며, 결국 옛 카르타고 영토인 시칠리아 섬의 서쪽 지역마저 로마로 편입되면서 로마는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조세피난 방식 ‘각양각색’

오늘날 조세피난지역의 형태는 자신들의 특수성과 필요에 따라 보다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크게 3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택스 파라다이스(tax paradise), 택스 셸터(tax shelter), 택스 리조트(tax resort)가 그것이다. 먼저 택스 파라다이스(tax paradise)는 조세를 거의 과하지 않는 나라나 지역을 의미하는데 주로 바하마, 버뮤다, 케이먼 군도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택스 셸터(tax shelter)는 외국에서 들여온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하지 않거나 극히 낮은 세율을 부과하는 형태로 홍콩, 라이베리아, 파나마 등의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택스 리조트(tax resort)는 특정 사업 활동이나 기업에 국한해 세금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형태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위스 등이 이러한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세피난처가 몰려 있는 케이먼 군도 지역은 원래 해양스포츠 천국이자 세계적인 휴양지로만 활용되는 작은 섬 지역이다. 이런 곳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은행과 보험회사, 자산운용사를 포함한 8만여개의 현지법인이 현재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라부안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은 고무와 과실류를 주산물인 제주도의 20분의 1 크기밖에 되지 않는 섬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섬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이 섬을 조세피난처로 활용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800여개의 국내 기업이 라부안 섬에 1000여개의 현지법인 또는 지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조세 피난처의 탈세 유혹

오늘날 이들 조세피난처는 탈세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자리잡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통해 조세정보 공개를 촉구하는 세계 각국이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또한 관세청, 금융감독원, 금융정보분석원 등과 합심해 ‘역외금융협의체’를 설립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를 적극 차단하기 위해 노력한 바 있다.

조세피난처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많은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거점 지역과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지역에 법인을 설립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세금’ 때문이다. 앞서 조세피난처를 지칭하는 이름에 ‘Heaven’ ‘Paradise’ 라고 단어를 붙여 표현하는 사실만 보더라도 많은 경제 주체들이 얼마나 세금을 피하고자 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놀라운 것은 기원전의 로마인들은 이미 이러한 경제 원리를 간파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세율을 낮출 경우 많은 경제 주체들을 유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활용해 지중해 해상의 패권을 장악하고 유럽 대륙을 지배하는 하는 교두보로 삼았다는 점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용어 풀이

조세피난지역

조세피난처라고도 하는데 세금이 전혀 없거나 아주 낮은 세율(통상적으로 발생 소득의 15% 이하)을 적용하는 지역이나 국가를 말한다.

택스 파라다이스(tax paradise)

조세를 거의 과하지 않는 나라나 지역을 의미하는데 주로 바하마, 버뮤다, 케이먼 군도 지역이 대표적이다.

택스 셸터(tax shelter)

외국에서 들여온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하지 않거나 극히 낮은 세율을 부과하는 형태로 홍콩, 라이베리아, 파나마 등의 지역이 해당한다.

택스 리조트(tax resort)

특정 사업 활동이나 기업에 국한해 세금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형태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위스 등이 이러한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