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부자세 딜레마

“부자들이 앞다퉈 프랑스를 떠나고 있다. 세금(부자세) 부담이 클 뿐 아니라 반(反)부자 정서 탓에다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선에서 증세(增稅)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사회당(PS)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프랑스를 떠나려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고 르 피가로가 25일 보도했다.
- 2월 27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과도한 부자세는 자본 도피 불러 경제불안 초래
☞ 세금은 때론 한 나라의 정권을 바꿀 만큼 민감한 이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거를 살펴보면 세금이 쟁점이 된 때가 많았다. 세금을 얼마나 거둘지는 정부의 씀씀이에 달려 있다. 정부 지출이 늘어나면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하고, 정부가 씀씀이를 줄이면 세금을 덜 거둬도 되는 것이다. 보통 민간의 자율을 중시하는 보수층에서는 작은 정부와 세금 인하를 외치는 반면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진보집단에서는 큰 정부와 세금 인상을 주장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 정부의 지출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 돈은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를 확충하는 데 주로 쓰이고 있다. 이 와중에 나라 빚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또 다른 짐이 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으로선 어떻게 하면 세금을 늘려 재정적자를 줄일 것인지가 큰 고민거리다.

프랑스는 물론 한국 미국 등 적지 않은 국가가 부자세 인상을 추진 중인 건 늘어난 재정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진 때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 그 돈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자는 건 취지도 좋고 사회 정의에도 부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의(善意)의 정책이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듯 부자세는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 당초 취지와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부자들이 과도한 세금을 피해 외국으로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경제는 활력을 잃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오는 4월22일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연간 15만유로(2억22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최고 41%에서 45%로 높이는 ‘부자 증세’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르 피가로는 “부자들은 대통령 선거 전에 지금 당장 프랑스를 떠나는 게 좋다고 결론내리고 있다”며 “그들은 이민을 재산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벨기에에 20만명, 스위스에 16만명 등 수십만명의 프랑스인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가 있다”며 연예인과 예술가, 기업인에 국한됐던 이민 행렬이 의사와 금융인, 건축가, 법률가, 스포츠 스타는 물론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정치권도 너나없이 부자 과세 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말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8%로 높였다. 이에 따라 세금 부과의 기준인 과세표준 소득이 3억원을 초과할 경우 38%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또 민주통합당은 38%의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무겁게 물리는 소득을 1억5000만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법인세 최고 세율도 22%에서 25%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통합진보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30%까지 높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보유자산의 손실이 예상될 때 갖고 있는 돈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외국으로 옮기는 것을 자본도피(capital flight)라고 한다. 자본도피는 국제수지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통화가치를 불안하게 만들고 소비와 투자를 줄여 나라경제를 교란시킨다. 1980년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1990년대 러시아에서 자본도피 현상이 나타났으며 최근엔 그리스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에서도 부자들의 탈출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도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합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경제여건과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사유재산을 엄격히 보호하며,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게 중요하다.

세금을 올리려면 사회적 컨센서스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우선 국민의 혈세를 아껴서 제대로 쓰고 있고 있다는 걸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게 필요하다. 무상 보육에 무상 의료, 무상 교육, 미취업 수당 지원, 사병 월급 인상 등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세금으로 공짜 천국을 만들려는 지금과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 아래에서 누가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더 내려 할 것인가. 남는 건 국가 파산과 후대에 남겨진 빚뿐일 것이다. 한국은 이미 1%의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79%, 10%의 상위계층이 소득세의 90%를 부담하고 있다.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면세자 비율은 41.1%다. 국민 10명 중 4명이 세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부자들에게만 소득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라고 하는 게 과연 사회 정의에 합당한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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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이 물가 끌어올리겠다고 나선 일본의 비극
일본은행의 물가상승 목표제


일본 엔화 가치가 9개월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81.25엔에 이르렀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의 기록적인 무역수지 적자와 유럽 재정위기 진정 기미 등이 엔화 수요를 떨어뜨렸다”며 “‘시라카와 물가상승 목표제’도 엔화 가치 하락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2월 28일 연합뉴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과도한 부자세는 자본 도피 불러 경제불안 초래
☞ 대부분의 나라에서 ‘은행의 은행’인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타기팅(inflation targeting·물가안정 목표제)’은 통화정책의 궁극 목표를 물가안정에 두고, 중앙은행이 명시적인 인플레이션 목표를 사전에 설정해 이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후 각종 수단을 통해 이 목표에 도달하려는 통화정책 운용방식을 말한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불안할 경우 △기준금리 인상 △지급준비율 인상 △국공채 매각(공개시장조작) △대출 회수 등을 통해 시중 통화량을 줄여 총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펴게 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해 물가가 뛰면서 물가 안정은 중앙은행들이 직면한 큰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일본은 물가 상승이 아니라 물가 하락이 경제의 큰 짐이 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물가를 안정시키는 게 아니라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공식 발표했다. 시라카와 마사하키 BOJ 총재는 지난달 14일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연 1% 오르도록 금융통화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기금을 55조엔(760조원)에서 65조엔(890조원)으로 늘려 국채 등을 매입하겠다고 설명했다. 수요를 늘리기 위해 시중에 자금을 대규모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고공행진을 하던 엔화 가치가 최근 하락한 것은(즉 엔화 환율이 상승한 것은) 이처럼 BOJ가 엔화 공급을 늘렸기 때문이다.

시라카와 총재의 물가상승 목표제는 ‘물가안정 목표제(인플레이션 타기팅)’와 정반대다. 왜 중앙은행이 물가를 일정선 이상으로 끌어올리려 하는 것일까? 일본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물가가 하락하는 것은 소비와 투자 등 수요가 없기 때문이고, 가계나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하지 않는 건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누가 돈을 쓰려 할 것인가.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서까지 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건 ‘고립된 섬’의 처지로 전락한 일본 경제가 처한 현재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