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52) 80일간의 세계일주와 소비자 잉여
때는 1872년 10월2일, 언제나 계산을 한 것처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영국의 신사 필리어스 포그는 화씨 86도의 면도 물을 가져오는 대신 화씨 84도의 물을 가져온 하인 제임스 포터를 해고한다. 포그는 그날 프랑스인 장 파스파르투를 새로운 하인으로 고용한 후 평소와 마찬가지로 혁신클럽으로 향한다. 혁신클럽에서 카드게임을 하던 포그는 우연찮게 세계일주와 관련된 논쟁에 휩쓸리고 만다. 포그는 세계일주를 하는 데 80일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회원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결국 포그와 혁신클럽 회원들은 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2만파운드(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약 20억원) 내기를 하게 되고, 포그는 저녁에 바로 파스파르투와 함께 런던을 출발한다.

세계일주에 나선 영국 신사

포그의 세계일주는 인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순조로웠다. 계획보다 이틀이나 빨리 인도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포그는 곧 첫 번째 큰 위기에 봉착한다. 영국 신문에서는 인도 횡단 철도가 완전히 개통되었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약 50마일 정도의 구간에 철길이 놓여 있지 않았다. 대체 교통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인도인으로부터 코끼리를 빌려 길을 재촉하려 한다.

시간당 40파운드라는 금액을 제시해도 코끼리 주인이 꿈적도 하지 않자 포그는 1000파운드(약 1억원)를 주고 코끼리를 아예 사겠다고 제안한다. 포그 일행과 동행한 영국 육군 준장은 코끼리 주인이 값을 더 올리기 전에 신중히 고민하라고 충고하지만 포그는 2만파운드를 건 내기가 관건이고, 코끼리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제값의 20배를 주고서라도 꼭 살 것이라고 대답한다. 계속된 흥정 끝에 코끼리 값은 무려 2000파운드로 정해진다. 거액을 주고 코끼리를 산 포그는 인도 밀림을 헤쳐 나가던 도중 브라만교도들에 의해 화형당할 위험에 처한 아우다 부인을 만나게 된다. 끊어진 철길 때문에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그 일행은 그녀를 구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용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아우다 부인은 영국식 교육을 받은 아름다운 인도 여인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포그의 호의에 감동하여 그와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아우다 부인을 포함한 포그 일행은 인도를 떠난 이후에도 갖가지 장애에 부딪힌다. 홍콩에서 요코하마로 가는 배를 놓치는 두 번째 큰 위기에 봉착했을 때 포그는 하루에 100파운드를 주는 조건으로 수로 안내선을 빌려 가까스로 태평양을 건너는 배를 따라잡는다. 그리고 미국을 횡단하는 도중 인디언들의 공격으로 기차를 놓쳤을 때는 돛을 단 썰매를 빌려 위기를 모면한다. 세계일주의 막바지라 할 수 있는 대서양 횡단 때에는 증기선의 연료가 떨어지자 20년 이상 된 배를 6만달러에 구입하여 배의 윗부분을 연료로 쓴다. 이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국에 도착한 포그는 약속된 시간인 12월21일 오후 8시45분 직전에 기적적으로 혁신클럽 홀에 들어선다.

지불용의가격과 소비자잉여

이상의 이야기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의 고전 모험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대략적 줄거리이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주인공 포그는 세계일주를 떠나기에 앞서 상세한 계획표를 작성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포그는 대체 교통수단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장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하여 여행을 지속해 나간다. 2만파운드 내기에서 이겨야 하는 포그로서는 시장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경제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포그의 교통수단에 대한 지불용의가격은 다른 일반 여행객들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포그는 과감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지만 그가 항상 높은 가격을 지불했던 것은 아니다. 일정에 차질이 없을 때 포그는 당연히 다른 일반 여행객들과 같은 가격을 내고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즉, 포그는 굉장히 높은 지불용의가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과 같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 마셜(Alfred Marshall)은 어떤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소비자가 얻는 이익을 ‘소비자잉여’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는데, 소비자잉여는 지불용의가격에서 실제로 지불한 가격을 뺀 금액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포그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큰 소비자잉여를 누린다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이 모든 소비자의 지불용의가격을 정확히 알고 이에 맞춰 상품가격을 달리 책정(가격차별)한다면 소비자잉여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여객선이 같은 등급의 좌석 요금을 개인의 지불용의가격에 따라 달리 책정한다면 탑승객들은 강하게 반발하며 다른 여객선을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기업이 독점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품질이 같은 동일한 상품은 소비자들에게 같은 가격으로 팔린다. 각 소비자에게 가격을 달리 받을 수 없을 때 소비자잉여가 발생한다는 것은 경쟁적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포그는 결국 80일 만에 세계를 완주하고 2만달러를 상금으로 번다. 그러나 여행 중에 약 1만9000파운드를 써버리고 나머지 1000파운드는 파스파르투와 자신을 오해해 여행을 방해했던 픽스 형사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실제로 얻은 금전적 소득은 없었다. 혹자는 포그가 세계일주로부터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80일간의 여행을 통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익을 얻었다. 런던으로 돌아와 아우다 부인과 결혼을 약속한 것이다. 쥘 베른은 소설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은 이보다 더 작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일주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우리에게 던지면서 펜대를 내려놓는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



제용어 풀이

지불용의 가격(willingness to pay)

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 가격

소비자잉여(consumer surplus)

지불용의가격에서 실제 지불한 가격을 뺀 금액(지불용의가격-실제 지불가격)으로,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는 이익의 크기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