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보편적 가치는 지지


#현실선 자율보다 개입 지지


#자본주의는 긍정적 평가
·KDI·시장경제硏 조사
KDI·시장경제硏 조사
[Focus] 흔들리는 시장경제… 머리는 '자율'   현실은 '개입'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시장경제를 보는 시각도 이중적이다. 이론적으론 경제를 시장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믿지만 실제 상황에선 정부의 개입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경쟁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데에는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개발연구원(KDI)·시장경제연구원과 공동 기획해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시장경제 인식조사에서 드러났다.

응답자들은 시장경제의 보편적 가치는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다만 점수는 4.27로 7점 만점에서 중간값인 4를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시장경제 시스템이 우리 경제가 단기간에 초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본적인 토대가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낮은 평가가 나왔다는 게 연구자들의 판단이다. 문항별로는 ‘자유로운 경쟁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질문만 5.05로 5점대를 기록했을 뿐 ‘경쟁은 결과적으로 사회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거나 ‘사유재산권의 보호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다른 질문은 모두 4점대에 머물렀다.

직업별로는 생산직 근로자와 농어민, 미취업자보다는 경영자나 기업의 간부, 고위직 공무원 등의 시장지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Focus] 흔들리는 시장경제… 머리는 '자율'   현실은 '개입'
특히 관리직 직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시장지향성은 5.41로 상당히 높았다. 이는 소득수준이 높고 연령대가 높을수록 시장주의적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반면 월 소득이 300만원 미만인 경우 시장지향성 지수가 평균 이하, 300만원 이상인 경우 평균 이상으로 나타났다. 시장과 기업 신뢰도는 7점 만점에 각각 3.56점과 3.67점에 불과했다. 이는 100점으로 환산하면 시장 신뢰도는 50.8점, 기업 신뢰도는 52.4점으로 낙제 수준이다. 경쟁 보장과 사유재산권 보호 등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기본 가치에 대해서는 4.27점으로 중간값인 4점을 넘었지만 이 같은 원칙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지향성을 실제 상황과 접목시킨 질문에서는 결론이 다르게 나왔다. 시장 자율보다는 정부의 개입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다. 시장 신뢰도를 이론적으로 묻는 질문에는 평균값이 4.74로 중간값을 넘었지만 실제 상황을 대입한 질문에서는 3.56으로 중간값 밑으로 떨어지면서 1점 이상 차이가 났다. 이론과 실제 간 가장 큰 차이는 가격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났다. 이론적으로는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지만 실제상황을 묻는 질문에서는 ‘홍수로 물량이 줄어 채소값이 급등할 경우 정부가 나서서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답변 성향이 훨씬 컸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아가는 가격의 기능을 신뢰하기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저숙련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가 감소해 이들의 임금이 낮아질 경우 정부가 최저임금을 설정해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는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높게 나타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조사에 참가한 이영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론적인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지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정부의 개입으로 메워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우리 국민은 자본주의 경제를 비교적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제현실에 대해서는 상당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경제 인식과 함께 자본주의에서도 현실과 인식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의 자본주의 신뢰도는 7점 만점에 평균 4.27점이었다. 이 수치가 4점 이상이면 국민이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중간값을 넘어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예상보다 점수가 높지 않다는 것이 조사를 맡은 연구원들의 반응이다.

자본주의 신뢰도는 이론적, 원론적 측면에서 특히 높았다. 우리 국민은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다른 경제보다 경제성장이 높고(4.99점), 소득 불평등이 작을 것(4.32점)으로 생각했다. 자유시장경제가 경제성장은 물론 소득 분배 측면에서도 사회주의나 정부 주도형 경제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다는 의미다. 연령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뚜렷했다. 60대 이상의 자본주의 신뢰도가 4.41로 가장 높았고 이어 50대(4.35) 30대(4.19) 20대(4.08) 순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진보 모두 자본주의 신뢰도가 보통(4)을 넘었다.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현실적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할 체제가 사라진 덕분이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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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장경제 인식 점수는?

아래 문항은 이번 시장경제 인식 조사 전체 40개 중 대표적인 것이다. 각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경우 7을 최고치로,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경우 1을 최저치로 놓고 각자의 의견을 받았다. 중립을 뜻하는 중간값은 4이다. ( )은 응답자 평균.

-자유로운 경쟁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 (5.05)

-경쟁을 하면 결과적으로 사회와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4.86)

-사유재산권의 보호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 (4.80)

-경제 활동 주체 간의 자발적인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4.35)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 (4.75)

-세금도 법대로 내고, 환경오염도 발생시키지 않은 기업이 이윤을 냈을 때, 사회에 기부할 것인지 여부는 기업이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 (4.03)

-홍수로 물량이 줄어들어 채소 값이 급등하더라도 정부가 나서서 가격을 낮춰서는 안 된다 (3.12)

-원하는 가격에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고, 경쟁이 보장되며 내 재산이 보호되는 경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제에서보다 ‘경제성장’이 높을 것이다 (4.99)

-운과 배경이 좋아야 성공한다 (4.17)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 주체(개인 기업) 간의 공정한 경쟁이 잘 이뤄지고 있다 (3.65)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에 대한 법적·제도적 규제 수준은 높은 편이다 (4.41)

서보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