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동물 보호하고 관광객도 늘어"...

"장기적으로 야생본능 없애 毒이 될 수도"

겨울철은 사람뿐 아니라 야생동물에게도 지내기 어려운 계절이다. 특히 초식 야생동물들은 겨울이 되면 풀이나 나무 등 먹이가 되는 식물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굶주림에 노출되기 아주 쉽다. 육식동물 역시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들이 추위 때문에 땅속이나 덜 추운 굴 등에 숨어 지내면서 먹이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겨울이 되면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철새에게 먹이를 주는 행사는 주요 철새도래지에서 매년 주기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철새뿐 아니라 폭설이라도 내릴 경우 고라니나 산양 등에게 먹이를 주는 행사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에 사는 비둘기와 같은 새나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도 적잖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당장은 아름다운 행동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일단 주린 배를 채워주는 최소한의 먹이주기는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야생동물 먹이주기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찬성하는 쪽은 야생동물들이 겨울철에 먹이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 데는 사람들에 의한 서식지 파괴의 영향도 큰 만큼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먹이주기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멸종위기 동물일 경우 먹이주기조차 하지 않을 경우 자칫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어 멸종을 재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꼽는 것이 강원도 철원군 일원에 겨울철마다 찾아오는 독수리떼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243호인 독수리는 먹이주기 덕분에 최근 개체 수가 크게 늘었다. 1989년 100여마리 정도가 관찰됐지만 매년 수가 급증해 올해는 5000마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독수리가 늘어나면서 이를 구경하기 위한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물론 관광객들이 야생동물 관찰 체험 등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수입도 올릴 수 있는 등 여러가지 긍정적인 파급효과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요즘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일대에는 독수리떼를 보기 위해 하루에 100명 이상의 탐방객이 몰리고 있는데 이로 인해 식당과 숙박업소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독수리 이외에 역시 천연기념물인 산양도 개체 수 보호를 위해 겨울철에 먹이를 주는 것이 같은 맥락에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동물보호협회 등 관련 단체 종사자 중에는 멸종위기 동물은 아니지만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나 비둘기 등 조류도 인간과 함께 도시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인 만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먹거리는 제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반대

반대하는 사람들은 외국 국립공원에 가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흔히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먹이를 주다가 관광객이 야생동물과 지나치게 가깝게 접촉하다보면 혹시 모를 사고가 날 수도 있는 데다 더 큰 이유는 야생동물이 인간의 먹이에 길들여지면 그야말로 야생 본능을 잃고 자연에서 혼자 생존해나가는 방법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 익숙해진 야생동물은 사람을 봐도 피하지 않게 되는데 이 경우 밀렵 등에 희생될 확률도 그만큼 많아진다고 지적한다.

또 야생동물이 민가 등에 자추 출몰하게 되면 사람과 야생동물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굶는 야생동물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무작정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희영 철새연구센터장은 “지난해 구제역으로 독수리에게 줄 동물 사체가 부족해지자 독수리들이 굶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며 “독수리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보존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수리의 경우 조류독감(AI) 등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도 있는 만큼 먹이를 줘서 개체 수를 증가시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늘어난 독수리들이 양계장 주변 등으로 모여들어 닭의 사체를 먹는 과정에서 조류독감 등 유행성 가축질병이 전파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국립환경과학원이 철새에 인공위성 추적기를 부착해 이동경로를 분석한 결과 조류독감이 발생한 축사 주변에는 야생조류의 접근이 많았다고 한다.

생각하기

야생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을 경우 사람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멸종의 원인을 사람 때문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냐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논란거리가 있고 그에 대한 해답도 찾기 쉽지 않다. 사실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전에도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지구상에 등장했다가 멸종의 길을 걸었다는 점은 화석을 통해 잘 알려진 바이다. 따라서 현재 멸종위기인 동물 중 어느 것이 자연도태의 결과이고, 어느 것은 인간에 의한 서식지와 먹이 파괴 때문인지 가려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인간의 간섭이 없어도 최소한의 종을 보존할 정도의 개체 수가 확보된 동물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면 바로 멸종으로 이어질 동물도 있다. 또한 야생동물은 멧돼지의 예에서 보듯이 너무 많을 경우 사람에게는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결국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문제는 일률적으로 주는 것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고 판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사례별로 다르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동물에 대해 과학적인 방법에 근거한 철저한 개체 수 파악과 서식지 조사, 먹이활동과 먹이의 분포 등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것들이 체계적으로 이뤄진 후에 특정 동물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하고 있는 야생동물 먹이주기 캠페인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이런 과학적 근거에 따라 시행 여부를 결정할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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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 2011년 12월27일자 기사

강원도 내 일부 지자체가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을 이유로 야생동물 겨울철 먹이주기 예산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폐지, 환경단체 등의 반발을 사고 있다. 27일 도내 각 시·군에 따르면 겨울철 야생동물 먹이주기 사업을 실시하지 않고 있는 지자체는 원주, 속초, 평창, 횡성, 고성 등 5개 시·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홍천과 영월, 정선, 화천 등 4개 지자체는 멧돼지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반발과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시행을 잠정 보류하고 있다.

먹이주기 사업을 폐지하거나 축소 또는 보류하는 지자체가 늘어난 이유는 올해 급증한 멧돼지로 인한 인명 피해와 농작물 피해 등으로 인해 지역주민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자체도 몇 년 전부터 도비 지원이 끊긴 이후 예산 규모가 100만~500만원에 불과해 소요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독수리 등의 철새도래지인 철원과 천연기념물 217호 산양의 집단서식지인 양구만 각 1500만원과 2000만원 상당의 예산을 확보해 먹이주기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과학적 조사 토대로

사례별로 대처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