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회사 키운 '닮은꼴' 절친… 구찌 잡을땐 007 뺨쳤다
[세기의 라이벌] 베르나르 아르노- 프랑수아 피노
“피노는 부부 동반으로 우리 집에 놀러올 정도로 나와 친한 사이입니다. 그의 아들 결혼식 때는 내 아내가 그 사람 바로 옆에 앉을 정도로 가까웠다니까요. 그런데 참 어떻게….”

글로벌 명품업계 1위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Louis Vuitton-Moet-Henessy)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그는 1999년 3월 ‘절친’이던 프랑수아 피노 피노프랭탕르두트그룹(PPR·Pinault-Printemps-Redoute) 회장이 자신이 눈독을 들였던 ‘구찌’(GUCCI)를 인수하자 서운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노는 무려 10년 가까이 구찌를 지켜보며 때를 기다려왔다. “구찌는 좋은 브랜드다. 그들이 나와 함께 하길 바란다”고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던 터다.

아르노는 피노의 경영권 인수가 발표나기 두 달 전 14억달러를 들여 구찌 주식 34.4%를 은밀히 매수해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선 곧장 피노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PPR이 우리 LVMH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고 한 것. 그래도 쓰린 속을 쉽사리 달랠 길이 없었다.

과정은 이랬다. 평소 ‘M&A(기업 인수·합병) 큰손’인 아르노에게 구찌를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도메니코 데 솔레 구찌 대표이사(CEO)가 피노를 찾아갔던 것이다. 솔레는 “아르노가 구찌를 훔쳐가려 한다”며 피노에게 ‘백기사’가 돼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고 뼛속까지 철저한 사업가인 피노 역시 구찌의 잠재력을 보고 기꺼이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그리고 1999년 3월19일 구찌 경영권 매각이 전격 발표된 것이다. 바로 그날은 아르노가 파리 외곽의 디즈니랜드에서 고위 경영진 회의를 주재한 날이었고 아르노는 회의가 끝나면 바로 솔레를 만나려던 참이었다. 결국 아르노는 간발의 차이로 구찌 측을 설득할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아르노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피노 회장이 사전에 자신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불쾌해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피노 회장은 “그러면 내가 그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보게 친구, 내가 자네에게서 구찌를 훔쳐가려 하네’라고 말해야 했겠냐”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그만큼 둘은 개인적인 친분과 관계없이 사업 일선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라이벌이었다.

그 후에도 피노의 승리는 계속됐다. 입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부셰론, 세르지오 로시, 발렌시아가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모두 피노 회장의 수중에 떨어졌다. 구찌를 놓친 아르노 회장은 좀처럼 반전의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룹 규모가 커지고 브랜드 성장세도 가팔라지면서 PPR은 명품업계에서 LVMH에 필적하는 최대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이런 PPR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탓인지, 2003년 아르노는 “LVMH의 진정한 경쟁자는 샤넬과 에르메스 정도”라며 구찌그룹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았다. 경영이 악화된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여 정상화시키는 방식을 애용했고 일단 판단이 내려지면 주저없이 밀어붙이는 스타일 등이 그렇다.

피노 회장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제재소에서 일을 돕다 27세에 소시에테피노라는 이름으로 목재 유통회사를 세웠는데 이 회사가 PPR그룹의 모태가 됐다. 1991년 가구가전 유통업체 콩포라마 인수를 시작으로 유통업에 진출한 그는 프랑스 1위 백화점 프랭탕백화점과 통신판매회사 라 르두트, 그리고 아르노 회장이 그토록 원하던 구찌까지 잇따라 손에 넣어 피노-프랭탕-르두트 그룹을 만들었다. 1993년에는 영국 피어슨그룹으로 넘어갔던 와이너리 샤토 라투르의 소유권을 프랑스로 되찾아왔다. 2007년엔 아디다스와 나이키 사이에서 힘을 잃어가던 독일 스포츠 브랜드 푸마도 손에 넣었다. 그 여세를 몰아 피노는 ‘2011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115억달러의 재산으로 67위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아르노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LVMH그룹은 명품 1위 브랜드 루이비통은 물론 마크제이콥스, 로에베, 크리스찬디올, 지방시, 겐조, 셀린, 펜디, 도나카란 등 60여개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공룡 그룹이다. LVMH의 2010년 매출은 전년보다 19% 증가한 203억유로에 달했고 순이익은 73% 증가한 30억3000만유로(4조7661억원)를 기록했다. 아르노는 이에 힘입어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1 세계 갑부’에서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과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에 이어 세계 4대 부자로 꼽혔다. 그의 순재산은 410억달러 정도다. 1949년 프랑스 북부 루베시에서 태어나 프랑스 최고 명문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조기 진학한 아르노는 국립행정학교(ENA)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크리스찬디올, 루이비통, 지방시, 로에베 등 최고급 패션 브랜드를 줄줄이 인수한 그는 2009년에는 프랑스 주얼리 디자이너 로렌스 보머를 크리에이티브로 영입했다. 자사 브랜드 루이비통의 하이엔드 주얼리 라인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피노는 40년에 걸쳐 쌓은 PPR그룹의 경영권을 2003년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에게 넘겼다. 그리고 자신은 미술업계로 발길을 돌렸다. 파블로 피카소, 피에 몬드리안, 제프 쿤스 등의 작품이 포함된 2000점 이상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고 1998년에는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인수했다. 크리스티는 미국 유럽 홍콩 등 39개국에 15개 경매장과 85개 사무소를 두고 있는 최정상급 경매회사다. 2010년 경매 성사 금액은 전년도보다 53%가량 늘어 245년 역사상 최고 수준인 52억달러를 기록했다. 피노 명예회장은 2007년 영국의 저명한 미술잡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 1위’에 꼽힐 만큼 예술계에서 명망을 얻었다. 가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모은 예술품을 전시하는 컬렉션을 열기도 한다.

반면 아르노 회장은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다. 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소비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럭셔리 브랜드’의 컨셉트에 맞는 매장을 확보하고 이미지 마케팅을 강화해 나갔다. 특히 매장 건물의 외관과 인테리어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를 위해 뉴욕에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피터 마리노에게 전화를 걸어 파리 몽테뉴 가의 크리스찬디올 오리지널 매장을 보수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아주 럭셔리한 매장이 탄생했고 크리스찬디올 경영진은 만족했다. 딱 봐도 사치스러운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건축물은 관광객과 여러 계층의 소비자들을 불러들였고 이는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마리노는 크리스찬디올에 이어 샤넬, 도나카란, 캘빈클라인, 펜디, 루이비통의 화려한 매장을 디자인했다. 2005년 마리노가 약 2000만달러를 들여 파리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매장을 두 번째로 보수한 뒤 그 매장의 연매출은 9000만~1억1500만달러에 이를 정도로 뛰었다.

아르노와 피노는 명품업계의 양대산맥으로 후기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첨단을 지배한 경영자들이었다. 한국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명품이지만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제품을 대중들의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솜씨는 후세 경영자들에게도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민지혜 한국경제신문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