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사용자들의 공익 증진위해 필요"

"한 명의 소비자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우여곡절을 겪었던 KT의 2G(2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결국 없어지게 됐다. 서울고법이 지난해 12월26일 KT 가입자 900여명이 2G 서비스 폐지를 승인한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집행정지를 받아들였던 1심을 깨고 신청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2G 서비스를 계속 제공받지 못해 생기는 손해는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로 보상될 수 있고, 기존 휴대전화 번호를 계속 유지할 수 없어 생기는 손해는 010 번호통합정책에 따른 것으로 2G 사업 폐지 승인으로 발생하는 직접적 불이익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앞서 KT가 7월25일 2G 사업 폐지를 신청하면서 9월30일을 폐지 예정일로 사용자들에게 알렸으므로, 유예기간을 더 연장한 12월8일을 폐지예정일로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KT는 지난해 3월 2G 서비스 종료 방침을 정한 뒤 방통위에 폐지승인 신청을 했으나 2G 가입자 수가 많다는 이유로 승인이 유보됐다. 이에 KT는 폐지예정일을 9월30일로 늦춰 다시 신청했고, 방통위는 신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12월8일부터 2G망 철거를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이에 2G 가입자 900여명은 “KT가 가입자를 인위적으로 줄이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음에도 폐지를 승인한 것은 위법을 묵인한 것”이라며 폐지승인 취소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냈으며, 1심은 가입자들의 손을 들어줬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런 폐지 방침이 옳은지 여부를 둘러싸고 손해배상과 관련해 여전히 치열한 찬반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찬성 1%의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99%의 사용자가 보다 나은 서비스를 선택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KT를 비롯, 2G 서비스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2G 서비스 이용자는 16여만명으로 2G 종료 지연에 따라 1600만명에 이르는 대다수 3G 가입자가 상대적인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파수가 공공이 사용하는 공공재라는 이유를 들어 2G 폐지에 찬성하는 견해도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선 시스템 전환 등이 필요한 데 소수라고 무시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로서 전체가 얻을 수 있는 공익이 더 크다면 어느 정도 선에서 소수가 타협을 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다. 물론 2G 종료가 기존 사용자에게는 불편과 미련도 남을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로서 주파수를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전체 사용자의 공익을 증진시킨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입장으로 기존 2G 사용자들에게 적정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서비스 폐지를 하는 것이 꼭 가혹한 처사라고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1심을 깬 서울고법은 KT의 4G 시장진입이 늦어지는 것은 공공복리를 저해한다며 결과적으로 2G 서비스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4G 부문에 KT의 시장진입이 늦어질 경우 기업의 이익 감소 외에도 SKT와 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사업자의 과점구조를 고착화해 시장의 경쟁구조가 악화되면서 소비자 후생이 저하돼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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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한 녹색소비자연대는 “KT 측이 2G 사용자를 줄이기 위해 이용자들에게 하루에도 10여통 이상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내 정상적인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고 거부 의사를 밝혀도 반복적인 전화 문자 공세를 했다”고 주장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는 이에 따라 최근 2G 서비스 종료에 따른 소비자들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단 분쟁조정 신청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했다. 지난달 법원이 비록 2G 서비스 종료를 인정했지만 당시 재판부도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 생기는 손해는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는 점을 들어 통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 중에는 2G 서비스 강제종료가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팔 때는 언제이고 이제 더 이상 생산하지 않으니 AS고 뭐고 팽개치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다수 이용자를 이야기하지만 한명 한명의 소비자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기업문화가 아쉽다는 이야기다.

KT의 2G 서비스 종료를 허용한 방송통신위원회 내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위원이 있었다. 김충식 상임위원은 “KT는 지금껏 하루라도 빨리 2G를 털고 LTE로 가려는 전략을 구사했고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불러왔다”면서 “현재 15만명에 달하는 가입자가 있고 대다수는 선의의 피해자일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서둘러 폐지를 승인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양문석 상임위원도 “KT의 3G 전환과 관련, 1000건 이상 민원이 발생했고 사실상 불법 탈법으로 볼 수 있는 조치로 인해 가입자를 1% 미만으로 낮췄다는 것에 인정해 줄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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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가전제품이 고장 나서 AS를 의뢰하면 부품이 없다며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가전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점점 더 짧아지면서 제조업체들이 특정 모델의 부품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보관하지도, 공급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를 접하는 소비자들은 흔히 일본의 감동적 사례를 인용하곤 한다. 10년도 훨씬 지난 가전제품이 고장나자 제조사가 해당 부품을 찾아 일본 전역을 뒤져 결국은 AS를 해줬다는 그런 식의 얘기다. 이런 이야기에 비춰보면 ‘한번 팔면 그만’이라는 식의 기업 태도에 소비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KT의 2G 폐지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통신사의 주파수와 가전제품과 같은 일반 상품의 고객사후 관리 문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봐야하는가 하는 것이다.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에서 일반 상품과 완전히 똑같이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배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그 경우에도 소비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KT의 2G 폐지는 당위성이 없지는 않지만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소비자의 피해가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노력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소비자들에게 상응하는 피해보상 조치도 충분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공기업 또는 민간기업이 공공재나 준공공재를 공급하는 경우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또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정부가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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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1월2일자 보도기사

2G 가입자 500여명이 “KT에 대한 PCS 사업폐지 승인을 취소하라”며 본안소송을 냈다. 2일 법원에 따르면 김모씨 등 501명은 이날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KT에 대한 PCS사업 폐지 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방통위는 지난해 11월 KT에 대한 PCS 사업폐지를 승인했다.

김씨 등은 “전기통신사업법 19조에서는 기간통신망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폐지예정일 60일 전까지 이를 알려야 하는데 KT는 이용자들에게 폐지예정일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앞서 지난달 KT 2G 가입자 900여명이 2G 서비스 폐지를 승인한 방통위의 결정에 대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본안판결 선고 시까지 폐지승인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임도원 한국경제신문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