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안정·남북관계 개선 위해 필요"...

"무자비한 독재자에 조의 표하는 건 넌센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도 3주가량 지났고 그의 장례식도 지난해 이미 끝났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북한 권력체제의 변화는 물론 향후 남북한 관계에도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김 위원장의 사망 직후 국내에서 불거졌던 조문 찬반 논란은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느냐와 관련해 두고두고 논란거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사망 후 우리 사회에서 벌여졌던 조문 논란은 일반 민간인의 조문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 허용할 경우 어느 범위까지 이를 용인할 것인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되었다. 정부는 결국 정부 차원의 조문단은 보내지 않았고 민간 조문단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대해서만 답방 형식의 형태로 방북 조문을 허용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 전 회장 장례식 때 북한에서 조문단이 왔었던 만큼 이에 대한 답방만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새로운 남북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좀 더 포용력 있게 조문을 허용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않는 북한인데 단지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종전과 다른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 위원장 조문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정부 차원의 조문단을 보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이유야 어쨌든 남북정상회담의 당사자였고 향후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해서 정부가 조문단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주장한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김 위원장 사망 직후 “정부 조문단 파견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니라 그쪽에서 왔으니 우리도 간다는 상호주의 맥락에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상례에 지나지 않는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한 것은 김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에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우리 정부가 북한의 안정을 지원할 의사가 있음을 적극 표명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공식 조문단 파견이라는 통큰 결단을 내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단체 평화네트워크는 “김 위원장은 두 차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을 했던 인물이며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인 관리와 평화유지는 남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조선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총 6명의 조문특사단을 보낸 것처럼 우리 정부도 조문단 파견을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는 주장을 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민간 부문 조문은 대북 사업과 관련된 기업인이나 민간단체 등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가시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고려해 민간 부문에서 국제사회보다 반 발짝 정도 앞서 갈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반대

보수단체들은 지구상에 유례를 찾기 힘든 독재자의 사망에 정부가 조의를 표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입장이다.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의 주적이 죽었는데 정부가 조의를 표명하고 조문을 허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방북 조문을 하려는 이가 있다면 끝까지 싸워서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자유총연맹도 “무자비한 폭정으로 수백만 북한 동포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독재자 김정일에 대한 조문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보수 진영 단체들도 “종북 세력들의 추모 조문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 대북 관계 전문가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정부가 조문을 일절 불허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에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등 김 전 대통령과 정 전 회장 유족들에게 답방 형태의 조문을 허용한 것은 그나마 진일보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또다시 일반인의 민간 조문 허용을 요구하며 사회적 논쟁을 초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에 조문단을 보내자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 조문하고 분향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고한 우리 국민들의 넋을 기리는 데는 소극적이던 사람들이 정작 천안함 폭침의 주역인 김 위원장이 죽자 그에게는 조문을 가겠다고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밖에 대한민국 고엽제 전우회, 탈북자 단체 등도 독재자에 대한 조문은 말이 안 된다며 정부가 부분 조문을 허용한 것도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생각하기

김 위원장 조문 문제는 단순히 김정일 개인에 대한 조의 표명 차원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번에 조문을 주장했던 사람들 중에도 김정일 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독재자 개인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향후 남북관계 개선과 궁극적으로 통일이라는 민족의 과업까지 가기 위해서는 상호 교류와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잘 알려진 대로 현 정부는 대북 강경론을 기조로 유지해왔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북측의 해명과 사과 없이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했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대북 유화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정부의 이 같은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이 북한을 자극,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무력 도발을 야기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부는 최근 이 같은 목소리를 의식해서인지 소위 ‘유연한 대북 정책’을 선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얼마든지 대북 관계를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며 “북한도 우리가 이 정도까지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대북 관계에서 우리가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언제나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을 앞당긴다고 속단하는 것 또한 금물이다. 오히려 우리가 일정한 원칙 없이 그때 그때 대북정책 기조를 바꾼다면 북한은 더욱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강경한 대남 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 늘 큰 원칙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연합뉴스 2011년 12월27일자 기사

이희호 여사 측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7일 김정은 북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별도 면담은 없었으며 “순수 조문이었다”고 말했다. 북측의 특별한 대남 메시지도 없었고, 대북사업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여사와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에서는 6·15 남북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정신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사와 현 회장 등 조문단 일행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1박2일간의 조문 방북을 마치고 이날 오후 3시30분께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귀환해 이같이 밝혔다. 이 여사 측 윤철구 김대중평화센터 사무총장은 취재진에게 2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의 조문을 설명하며 김 부위원장이 “멀리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윤 사무총장은 “40~50분 이상 기다렸다가 10분 정도 면담을 할 수 있었다”면서 “이 여사는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강조했다. 윤 사무총장의 발언은 고령인 이 여사(89)를 대신해 이뤄졌으며, 기자회견 동안 이 여사는 윤 사무총장과 함께했다.

대북 정책에서

중심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