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학생은 훈육 대상 아닌 인권의 주체"

반 "교실 붕괴와 교권 추락 가속화될 뿐"

동성애 등 성적 지향과 임신 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교내 집회 자유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19일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경기도 광주광역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다. 조례는 총 51개 조항 1개 부칙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해 온 단체들이 ‘4대 독소조항’으로 꼽았던 교내 집회의 자유(제17조 3항), 성적 지향(제5조 1항),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제5조 1항), 종교의 자유(제 16조) 등에 대한 내용이 모두 포함됐다. 또 간접체벌 금지, 두발·복장 전면 자율화, 학내 정치활동 허용, 소지품 검사·압수 금지, 휴대폰 허용,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수업 등 학습 선택권 보장, 교내외 행사 참석 강요 금지 등도 담겼다. 다만 학생의 복장에 대해서는 학교 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고, 학생의 집회는 학습권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학교 규정으로 시간, 장소, 방법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례가 공포, 시행되면 학교 현장에는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조례가 통과하자 당초부터 이를 반대해 온 단체들과 교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반면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학생조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을 발의했던 김형태 서울시 교육위원은 미국 일본 방글라데시 등의 사례를 들어 “학생이라는 이유로 체벌이 정당화되고 두발 규제 등도 당연한 것처럼 인식돼 왔는데 이는 학생을 인권의 주체인 사람이라기보다는 훈육과 관리, 통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인권조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학생 일탈 우려 등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넘어질까 염려된다고 아이의 걸음마 연습을 안 시키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며 “정착하기까지 다소의 갈등과 혼란은 부모와 학교와 교육청과 시민사회가 나서 함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을 마련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의 열망이 결집된 결과”라고 이번 조례 통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헌법과 국제인권 기준을 잣대로 위헌적 교칙의 족쇄로 인해 그동안 질식돼 온 학생인권의 현실로부터 써내려간 시민 입법의 결실”이라고 자평했다. 배경내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공동집행위원장은 “학생 인권을 좀 더 명확하게 보장할 수 있는 상위법 개정 운동으로 이어져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시한 방향이 모두 맞고 환영한다”며 “조례가 실제로 의미가 있으려면 학교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학생시절 인권 체험은 미래 민주시민을 기르는 토대”라며 “일정 부분이나마 인권조례 제정에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대
한국교총 등 63개 교원·학부모·시민단체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 저지 범국민연대’는 학교 현장의 요구에 반하는 비교육적인 처사와 교육적 사안을 정치적 사안으로 둔갑시켜 강행시킨 것이라고 규탄했다. 또 “조례 시행은 교육현장을 더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며 “찬성 의원들을 명확하게 파악해 낙선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반대 측은 서울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권리만 담고 있을 뿐 의무와 책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교권 추락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교총 등은 헌법소원을 강구하고, 본격적인 무효화 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교실의 붕괴, 교권 추락 현상이 경기도에서처럼 서울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교총 관계자는 “조례 자체가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 구조인 만큼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학생인권조례 헌장 또는 선언’ 수준으로 해야 한다”며 “학칙으로 정하는 것이 당연한 사안들을 강제성을 가진 조례로 정하는 것 자체가 교육현장에 대한 자주성, 중립성 부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인해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교사의 지도권 역시 위축돼 학교에서 학생지도의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학부모와 교육 현장의 우려가 많으므로 조폐 추진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중학교 교사는 “광우병이나 FTA 집회 때 몇몇 아이가 방과 후에 간다고 했을 때 신변도 보장이 안 되고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는데, 앞으로는 통제할 방법이 없어졌다”며 인권조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생각하기

학생인권조례 찬반 측의 이야기는 사실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막상 교육현장에서는 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지, 판단 내리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많다는 것이다. 폭력교사가 문제될 때는 인권조례가 필요한 듯하다가도 교사가 어린 학생들에게 보기 민망할 정도로 놀림감이 되는 동영상을 접하면 또 생각이 달라지는 게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학생들이 학교 이외 장소에서 한명의 시민으로서, 집에서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전부를 학교에서도 모두 당연히 누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학교와 학생의 관계는 공법상 소위 ‘특별권력관계’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사립학교의 경우 공법상 특별권력관계로 볼 수는 없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다니는 학교가 국공립학교이든, 사립학교이든 큰 차이는 없다. 특별권력관계란 일정한 목적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일방이 상대방을 지배하고 상대방은 복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관계인데 교육이라는 목적을 위해 학생들은 학교의 방침이나 교사의 지도를 일정 부분 수용해야 하는 범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서울시 학생조례도 그런 점을 의식해 복장 등 일정 부분은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번 조례에서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정한 학생 인권의 범위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학칙으로 위임하는 범위를 넓히고 학칙의 제·개정에 학교 측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육전문가들도 참여하는 방안이 건설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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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2월20일자 A33면

서울시의회는 19일 본회의에서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례는 내년 3월부터 서울시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시행된다. 이 같은 학생인권조례가 시·도 의회를 통과한 것은 경기 광주에 이어 세 번째다. 전북도의회는 지난달 학생인권조례를 부결시켰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학교 교칙이나 학교장의 권한에 의해 각급 학교에 맞게 개별적으로 규율해왔던 사항을 전문성이 떨어지는 시의회가 정한 조례로서, 시내 학교 전체를 일괄 강제한다는 점에서 공교육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간접체벌 금지, 두발·복장 전면 자율화, 학내 정치활동과 집회의 자유 허용, 소지품 검사·압수 금지, 휴대폰 허용, 동성애와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 등 찬·반 논란이 극심했던 내용들을 그대로 담고 있어 교육 현장에서 갈등이 더 커질 전망이다.

학부모·교원 단체의 반응은 엇갈린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환영의사를 밝힌 뒤 “조례가 실제로 의미가 있으려면 학교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교총은 “앞으로 학교 질서가 붕괴되고 교권 추락도 가속화될 것”이라며 “헌법소원과 찬성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 등 법적·정치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우/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