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死後 北어디로…

[Focus] 불안한 정치기반 · 최악의 경제난 …  김정은 체제 곳곳 암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69)이 지난 17일 중증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김 위원장 사망날짜와 발표일 사이에 이틀간의 시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위원장의 정확한 사망일자와 장소, 원인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의 시신은 죽은 지 3일 만인 20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유리관에 안치됐다.

# 2대 세습의 종말

북한 김씨 왕조의 2대 세습자였던 김정일의 철권통치는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지 37년 만에,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 북한 최고 권력 자리에 오른 지 17년 만에 막을 내렸다. 북한 매체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17일 오전 8시30분 현지 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사망했다. 중앙통신은 사망 원인에 대해 “17일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28) 등을 포함해 232명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중앙통신은 “(북한의) 군대와 인민은 후계자 김정은의 영도를 받들 것을 맹세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후계체제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장의위는 공보를 통해 김 위원장의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오는 28일 평양에서 영결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김정은 세습체제가 제대로 안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사망함으로써 북한 내부는 물론 한반도 전체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모색하던 남북관계 역시 당분간 얼어붙을 수밖에 없게 됐고 미국과 진행 중이던 식량지원 문제도 중단될 처지다. 북한 내부도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려면 고난의 겨울을 지나야 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을 중심으로 김정은 통치 체제를 구축하려고 할 것”이라며 “권력 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권력 투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시험대 오른 김정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는 ‘포스트 김일성’ 시대와 다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권력 투쟁과 정치적 업적을 통해 권력을 쟁취했지만 김정은은 권력을 그냥 물려받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권력투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주류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북한은 불투명하다. 경제난과 정치격변에 완전히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어떤 권력장악 과정을 거치든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김정은 체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경제문제를 떠나 당과 군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김정은의 공식 직함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다. 개정된 당 규약에 따르면 부위원장직만으로도 당권을 장악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돼 있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당중앙군사위원장의 권한대행을 맡으면 ‘당 총비서는 당중앙군사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을 실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국방위원장 자리다. 국가주권의 최고군사 지도기관으로 각광받았던 게 국방위원회다. 김정은은 이 국방위원장 자리를 아예 없애버리려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즉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받들면서 주석자리를 없앴듯이 국방위원장도 전례를 들어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없애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정은의 권력 장악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정은은 후계수업 시간을 3년도 못 채웠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아직 맡지 못한 요직에 앉기 위해서는 고모부이자 후견인인 장성택 등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힘겨루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군부 강경파 행보가 관건

이런 측면에서 일종의 과도적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1953년 소련 스탈린 사망 후에 3인 과두체제, 1976년 중국의 마오쩌둥이 쓰러진 뒤 4인 과두체제가 등장했듯이 북한도 김정은 체제 구축 때까지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러나 집단지도부 구성원이 권력을 균점하는 형태라기보다 김정은을 지도자로 내세운 채 실세 몇몇이 지분을 나눠 갖는 형태로 제한적일 공산이 더 크다는 시각도 있다.

장례기간이 끝난 뒤 북한은 장성택 당 행정부장 등 후견인 그룹을 주축으로 조선노동당 중심의 통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권력을 이어받을 시간과 경험, 업적이 부족한 김정은이 이른 시일 내에 북한 권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당’이라는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북한 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군부의 행보는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중요한 돌발변수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군 정찰총국 등 공안기관을 장악하고 이들로부터 충성을 다짐받았다고는 하지만 군부가 다른 마음을 먹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홍영식/조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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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28)은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인 고영희(1953~2004)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는 첫째 부인인 성혜림(1937~2002)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형 김정남(1971~)과 친형인 김정철(1981~)이 있다. 결국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 형들을 밀어내고 후계자가 된 것이다.

김정은은 16세 때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스위스 베른국제학교에서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생활했다. 유학 당시 마이클 조던과 장 클로드 반담을 좋아했다고 한다. 유학기간 중 독일어와 영어 등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는 게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의 증언이다.

2001년 귀국해 2006년 12월까지 김일성군사종합대에서 군사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김 위원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부르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빨리 달려갔다고. 아버지처럼 영화를 좋아하고 거침없는 성격이라는 얘기도 있다. 지지통신은 “자기 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부하들은 그를 두려워했다”며 “화가 나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승부욕은 강하다는 시각이 많다. 과거 농구경기 일화가 그의 승부욕의 단면을 보여준다. 농구경기 후 형 정철은 팀원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한 반면 정은은 팀원들과 오랜시간 반성회를 가졌다고 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