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재정통합으로 위기 벗어난다고? … "글쎄!"
유럽연합(EU)이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신(新)재정협약’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독일 등 EU 정상들은 지난 8~9일 재정위기 해법을 논의한 뒤 회원국의 연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누적 채무가 60%를 넘어서면 자동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새 협약을 마련했다. 이번 협약으로 EU는 중장기적으로 통합을 공고히 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장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기대했던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 확대 등이 빠져 협약의 효과가 반감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 EU가 회원국 예산 점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재정동맹으로 EU는 각국의 재정을 관리 감독하는 데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합의는 1999년 출범한 통화동맹인 유로존이 재정 통합으로 가는 첫 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새 협약은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의 예산안을 사전 심사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회원국들은 국채 발행 계획도 제출해야 한다. 회원국 재정 주권의 상당 부분을 EU 공동체에 넘기는 셈이다. 해체 위기를 겪을 때마다 통합을 진전시켜온 EU의 역사를 되풀이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EU는 앞으로 3개월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만들어 내년 3월 이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협약에는 17개 유로존 국가와 덴마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6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 헝가리와 스웨덴 체코는 참여 가능성을 내비쳤다. 영국만이 반대했다. 주권을 일부 양도해야 하고 국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EU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체해 2013년 출범할 예정이던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을 1년 앞당겨 내년 7월부터 가동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EFSF(4400억유로)와 ESM(5000억유로)은 2013년 중반까지 1년간 병행 운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0억유로를 추가 대출하기로 했다.
# 유로채권 발행 물건너가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거론돼온 유로존 공동채권(유로본드) 발행 방안이 논의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독일 등의 반대가 거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본드 도입이 유로존의 재정적인 결합을 더욱 단단히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유로본드 발행의 이점을 담은 보고서를 내년 3월 발행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협약에서는 제외됐지만 유로본드 발행안을 계속 추진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유로본드를 도입하면 유로존 회원국들에 적용되는 이자율이 같아져 그리스 등 재정 불량국이 지금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ECB가 재정 불량국 국채를 무제한 사들이는 방안도 나오지 않았다. ECB는 9일에도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였지만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8일 “EU 조약은 ECB가 회원국에 직접 재정을 지원해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BGC파트너스의 루이스 쿠퍼는 “이번 발표가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라며 “시장은 ‘빅 바주카포(확실한 위기대응 수단)’를 기대했으나 한참 못 미쳤다”고 말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의 자크 카이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유일한 질문은 ECB가 국채시장에 더 강력하게 개입할 것인가였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 시장 반응은 냉담
신재정협약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무디스 등 3대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한목소리를 냈고, 협약 체결 직후 큰 폭으로 상승했던 글로벌 증시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에 처한 나라의 국채금리도 다시 상승하고 있다. 유로존 등 EU 23개국은 신재정협약에 대해 “유럽 통합을 향한 결정적 발걸음”이라고 자평했지만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디스는 12일 “신재정협약이 위기 상황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내년 초 EU 국가의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S&P도 “EU 위기를 해결하려면 더 강력한 부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재정협약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구속력이 부족한 탓이다. 협약이 발효되려면 각국 의회의 찬반투표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부담 증가와 재정 주권 약화를 우려하는 국가들이 쉽사리 동의할 리 없기 때문이다.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결정적 조치가 빠져 있어 시장은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협약이 재정적자 비중을 GDP의 3% 이내, 누적 적자는 60% 이내로 유지하게 하는 등 건전성은 지키도록 했지만 재정 위기국의 ‘곳간’을 채워줄 단기 처방 마련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FSF와 ESM의 기금에 IMF 지원금을 더하면 총 1조1400억유로의 실탄이 마련되겠지만 위기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WSJ에 따르면 재정위기 진화에는 ‘2조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IMF의 지원이 계획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0일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IMF의 기금 출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기 침체가 시작된 중국이 유럽을 도울지도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장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jas@hankyung.com
---------------------------------------------------------
' 등 돌린' 영국...EU, 둘로 쪼개지나
영국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EU 재정통합에 반대하며 ‘유럽의 아웃사이더’가 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 보도했다. FT는 영국의 이탈을 시작으로 EU가 두 개로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의 이탈은 지난 9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뜻밖의 제안을 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다. 그는 EU 정상회의에서 영국 금융회사들에 적용하는 자기자본비율을 완화해 달라고 주장했다. EU 재정통합에 동의하는 대가로 영국 금융사에 대한 특혜를 요구한 것이다. 다른 정상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정상들은 제안을 거절했다. 이어진 회의에서 캐머런 총리는 EU 재정통합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캐머런 총리가 영국 금융사에 대한 특혜를 요구한 것은 EU 재정통합에 반대하기 위한 명분 쌓기였던 셈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유럽의 운명을 얘기하러 모인 자리에서 영국은 엉뚱한 것을 요구했다”며 “(캐머런 총리 발언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국 출신인 크리스 데이비스 유럽의회 의원은 “캐머런 총리가 영국을 유럽의 2부리그로 격하시켰다”며 “앞으로 유럽 내에서 영국의 발언권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을 무릅쓰고 캐머런 총리가 재정통합을 반대한 이유는 세계 금융중심지였던 런던의 위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 파운드화는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주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퇴색했다. 영국은 유럽이 재정통합을 통해 더 강한 통화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FT의 설명이다.
유럽연합(EU)이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신(新)재정협약’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독일 등 EU 정상들은 지난 8~9일 재정위기 해법을 논의한 뒤 회원국의 연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누적 채무가 60%를 넘어서면 자동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새 협약을 마련했다. 이번 협약으로 EU는 중장기적으로 통합을 공고히 하는 기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장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기대했던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 확대 등이 빠져 협약의 효과가 반감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 EU가 회원국 예산 점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재정동맹으로 EU는 각국의 재정을 관리 감독하는 데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합의는 1999년 출범한 통화동맹인 유로존이 재정 통합으로 가는 첫 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새 협약은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의 예산안을 사전 심사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회원국들은 국채 발행 계획도 제출해야 한다. 회원국 재정 주권의 상당 부분을 EU 공동체에 넘기는 셈이다. 해체 위기를 겪을 때마다 통합을 진전시켜온 EU의 역사를 되풀이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EU는 앞으로 3개월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만들어 내년 3월 이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협약에는 17개 유로존 국가와 덴마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6개국이 참여하기로 했다. 헝가리와 스웨덴 체코는 참여 가능성을 내비쳤다. 영국만이 반대했다. 주권을 일부 양도해야 하고 국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EU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대체해 2013년 출범할 예정이던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을 1년 앞당겨 내년 7월부터 가동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EFSF(4400억유로)와 ESM(5000억유로)은 2013년 중반까지 1년간 병행 운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0억유로를 추가 대출하기로 했다.
# 유로채권 발행 물건너가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거론돼온 유로존 공동채권(유로본드) 발행 방안이 논의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독일 등의 반대가 거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본드 도입이 유로존의 재정적인 결합을 더욱 단단히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유로본드 발행의 이점을 담은 보고서를 내년 3월 발행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협약에서는 제외됐지만 유로본드 발행안을 계속 추진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유로본드를 도입하면 유로존 회원국들에 적용되는 이자율이 같아져 그리스 등 재정 불량국이 지금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ECB가 재정 불량국 국채를 무제한 사들이는 방안도 나오지 않았다. ECB는 9일에도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였지만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8일 “EU 조약은 ECB가 회원국에 직접 재정을 지원해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BGC파트너스의 루이스 쿠퍼는 “이번 발표가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라며 “시장은 ‘빅 바주카포(확실한 위기대응 수단)’를 기대했으나 한참 못 미쳤다”고 말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의 자크 카이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유일한 질문은 ECB가 국채시장에 더 강력하게 개입할 것인가였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 시장 반응은 냉담
신재정협약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무디스 등 3대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한목소리를 냈고, 협약 체결 직후 큰 폭으로 상승했던 글로벌 증시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에 처한 나라의 국채금리도 다시 상승하고 있다. 유로존 등 EU 23개국은 신재정협약에 대해 “유럽 통합을 향한 결정적 발걸음”이라고 자평했지만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무디스는 12일 “신재정협약이 위기 상황을 끝낼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내년 초 EU 국가의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S&P도 “EU 위기를 해결하려면 더 강력한 부양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재정협약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구속력이 부족한 탓이다. 협약이 발효되려면 각국 의회의 찬반투표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부담 증가와 재정 주권 약화를 우려하는 국가들이 쉽사리 동의할 리 없기 때문이다.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결정적 조치가 빠져 있어 시장은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협약이 재정적자 비중을 GDP의 3% 이내, 누적 적자는 60% 이내로 유지하게 하는 등 건전성은 지키도록 했지만 재정 위기국의 ‘곳간’을 채워줄 단기 처방 마련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FSF와 ESM의 기금에 IMF 지원금을 더하면 총 1조1400억유로의 실탄이 마련되겠지만 위기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WSJ에 따르면 재정위기 진화에는 ‘2조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IMF의 지원이 계획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0일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IMF의 기금 출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기 침체가 시작된 중국이 유럽을 도울지도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장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jas@hankyung.com
---------------------------------------------------------
' 등 돌린' 영국...EU, 둘로 쪼개지나
영국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EU 재정통합에 반대하며 ‘유럽의 아웃사이더’가 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 보도했다. FT는 영국의 이탈을 시작으로 EU가 두 개로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의 이탈은 지난 9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뜻밖의 제안을 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다. 그는 EU 정상회의에서 영국 금융회사들에 적용하는 자기자본비율을 완화해 달라고 주장했다. EU 재정통합에 동의하는 대가로 영국 금융사에 대한 특혜를 요구한 것이다. 다른 정상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정상들은 제안을 거절했다. 이어진 회의에서 캐머런 총리는 EU 재정통합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캐머런 총리가 영국 금융사에 대한 특혜를 요구한 것은 EU 재정통합에 반대하기 위한 명분 쌓기였던 셈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유럽의 운명을 얘기하러 모인 자리에서 영국은 엉뚱한 것을 요구했다”며 “(캐머런 총리 발언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국 출신인 크리스 데이비스 유럽의회 의원은 “캐머런 총리가 영국을 유럽의 2부리그로 격하시켰다”며 “앞으로 유럽 내에서 영국의 발언권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을 무릅쓰고 캐머런 총리가 재정통합을 반대한 이유는 세계 금융중심지였던 런던의 위상이 무너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 파운드화는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주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퇴색했다. 영국은 유럽이 재정통합을 통해 더 강한 통화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FT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