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국, 무역 1조달러 클럽 가입…  수출 强國  '명성'
우리나라의 연간 무역(수출+수입) 규모가 지난 5일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것은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9번째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4만달러에 달하는 통상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선진국 반열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산업 불모지에서 출발해 반세기 만에 1조달러 반열에 오른 건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쾌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역 1조달러 클럽’에 새롭게 가입한 국가는 한국이 처음이다. 또 2차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무역 1조달러 고지를 밟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부터 작년까지 세계 무역은 6.2% 감소한 반면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는 수출 기업들의 과감한 시장 개척에 힘입어 4.0% 늘어났다. 1960년대부터 줄기차게 추진해온 수출 주도형 경제개발 전략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 선진국 진입의 발판이 됐다. 1970년대 1, 2차 오일쇼크는 물론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경기 회복을 이끈 건 언제나 수출이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수출 5570억달러, 수입 5230억달러로 무역 규모가 1조800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한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1988년 1000억달러를 돌파한 뒤 1조달러까지 오는 데 23년이 걸렸다. 미국(20년)과 중국(16년)을 제외하고, 프랑스(31년) 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30년) 영국(29년) 독일(25년) 등을 앞질렀다. 지난 10년간(2001~2010년) 연평균 무역 규모 증가율도 10.4%로 세계 평균(8.8%)을 웃돌았다. 우리나라를 10대 무역파트너로 삼고 있는 국가는 1980년 7개국에서 지난해 52개국으로 7배 이상 늘어났다. 글로벌 무역시장 한복판에 우리나라가 서있다는 얘기다.

수출만 놓고보면 우리나라는 올해 세계 7강에 속한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400만달러에 불과했던 연간 수출액 규모는 지난달 5570억달러로 14만배 이상 커지며 세계 8번째로 수출 5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앞선 7개국은 수출 1000억달러 달성 이후 5000억달러까지 평균 20.1년이 소요됐지만, 한국은 이보다 4년 적은 16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경부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1조달러 달성에 대한 전망이 엇갈렸지만 철강 자동차 석유제품 등 주력 제품의 수출 선전에 힘입어 조기 달성에 성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수출 주력제품 변천사를 보면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경공업 제품으로 달러를 벌어들였다. 섬유류(40.8%)와 가발(10.8%)이 전체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980년대에도 의류(11.7%), 신발(5.2%), 인조장 섬유직물(3.2%) 등 노동집약적인 제품들이 주로 팔려나갔다. 수출 품목이 다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 들어서다. 중화학공업에 투자가 이뤄지면서 선박(3.5%) 음향기기(3.4%) 등으로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전자와 자동차 분야 등에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수출 품목에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나타났다. 의류(11.7%)가 여전히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반도체(7.0%) 영상기기(5.6%) 컴퓨터(3.9%) 자동차(3.0%) 등이 수출 상위 10위권에 진입했다.

2000년대에는 고부가치 정보기술(IT) 제품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반도체(15.1%)가 수출 1위 품목으로 올라섰다. 컴퓨터(8.5%)가 바로 뒤를 이었다. 올해는 선진국들의 경기불황과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수출 주력품목에 변화가 생겼다. 올 들어 11월까지 수출실적을 들여다보면 반도체(9.0%)가 3위에 내려앉았다. 대신 선박류(10.3%)가 1위로 올라섰다. 석유제품(9.3%)과 자동차(8.0%)도 선전했다.

수출은 오일쇼크와 외환위기 속에서 국가 경제를 떠받친 견고한 버팀목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수출 덕분이었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1980년 14.4%에서 2000년 50.4%까지 높아졌다.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를 동반했던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시기엔 해외건설 수주에 따른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차 오일쇼크 역시 정부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과 강력한 수출확대 정책이 성장세를 이끌었다. 외환위기 때에도 정보기술(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이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의 기본 토대를 만들었다.

외환위기 전후 5년간 무역수지 추이를 보면 1993~1997년 470억달러 적자에서 1998~2002년 944억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지난 40년간 경제성장에 수출이 평균 36. 5% 기여했다는 통계가 있다”며 “무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세계적인 산업 인프라는 미래 성장을 준비하는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이정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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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높은 무역 의존도...내수산업 함께 키워야

풀어야 할 숙제는...

[Focus] 한국, 무역 1조달러 클럽 가입…  수출 强國  '명성'
세계 교역무대에 본격 진출한 지 반세기도 채 안돼 무역 1조달러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지만 지속적인 교역 규모 확대를 위해선 아직 풀어야할 숙제가 남아있다.

우선 지나치게 높은 우리 경제의 무역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비중은 1980년 31.7%에서 1990년 51.1%, 2010년엔 84.6%까지 치솟았다. 일본(22.3%)이나 미국(18.7%), 중국(45%)은 물론 세계 최대 수출국인 독일(74.8%)에 비해서도 높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높은 무역의존도를 가진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해외 악재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며 “내수산업을 확대해 수출과 내수가 국가 경제를 함께 떠받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수 품목에 대한 수출 집중도 역시 문제다. 선박 석유제품 반도체 승용차 액정디바이스 등 상위 10대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었다. 10대 수출 품목의 비중이 28.8%, 34.5%에 불과한 중국 일본보다 훨씬 높다. 이들 10대 품목은 대부분 대기업들의 생산품목이어서 대기업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와 같다. 이와 관련,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R&D 투자 비중을 늘려 연간 450개 정도인 수출창업 기업을 내년에는 600개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다발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주력 시장의 시장선점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