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파산제도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기업 파산제도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부실기업 솎아내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는 장치
미국 3위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의 모회사 AMR이 29일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챕터 11)를 신청했다. 경기 침체와 연료비 상승이 겹치면서 실적 부진이 이어진 것이 원인이다. 토머스 호튼 AMR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항공사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11월30일 한국경제신문



☞ 시장경제의 큰 특징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태계처럼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기업들이 있는 반면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은 도태돼 사라진다. 이처럼 새 피가 수혈되면서 경제 전반적으로 활력을 유지한다. 기업이 흥할 것인가, 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이고 시장이다. 만약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규제 등의 영향으로 탄생하지 못하거나, 이미 생명력이 사라진 기업이 계속 생존할 경우 경제도 고인 물처럼 썩게 된다. 그래서 각종 규제를 최소화해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부실기업을 퇴출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시장경제는 원활하게 작동한다.

아메리칸항공은 2001년 9·11 테러로 큰 손실을 입은 뒤 구조조정에 나섰으나 노사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다른 항공사들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데 비해 구조조정이 지연돼 손실 규모가 커졌다. 지난 2분기 손실만 2억8600만달러에 달했다.

‘파산(bankruptcy)’이란 용어는 중세 이탈리아에서 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상인들이 장사하던 좌판을 부숴버리고(banca rotta)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음을 알렸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건실하지 못한 기업이 손실이 많아 도저히 빚도 갚지 못할 처지에 놓이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다. 파산을 선언하면 채권자들이 모여 빚잔치를 하게 된다. 파산 기업이 가진 자산을 채권 비율대로 나눠 갖는 것이다.

채권 보유자들은 우선적으로 돈을 돌려받는 데 비해 자본을 댄 주주들은 채권자들에게 돈을 돌려준 후 남는 자금이 있다면 일부나마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파산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주주다. 이처럼 주주들은 회사 경영의 최종 위험을 감수(risk taker)하는 까닭에 사업이 성공할 때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반면 실패할 경우엔 한푼도 건질 수 없다.

대부분 나라에서는 기업이 파산을 신청하면 바로 회사를 해체(청산)하는 대신 기업들이 채권자들에게 돈을 돌려줄 수 있도록 채권·채무 관계를 일시 동결하는 조치를 취한다. 일정 기간 동안 빚을 갚지 않고 기업 활동을 계속해 회사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를 법정관리라고 한다.

법정관리는 해당 기업이 법원에 신청하면 법원이 회생 가능성을 판단해 허용할지를 결정한다. 법정관리가 결정되면 법원은 새경영진을 임명해 해당 기업에 파견한다. 옛 경영진에 의한 도덕적 해이 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법정관리와 비슷한 기업회생 제도로는 워크아웃이 있다. 워크아웃은 법원이 아니라 채권단 주도로 빚을 재조정하고 회생작업을 벌인다. 채권단은 어떻게든 해당 기업을 회생시켜 대출자금을 회수하는 게 이익이다. 만약 파산 신청 기업의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법원은 파산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해당 기업은 청산 절차를 밟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파산 및 회생절차를 상법과 파산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파산법 11조(챕터 11)가 법정관리를, 파산법 7조(챕터 7)는 파산에 관한 절차를 담고 있다. 오늘날 파산은 시장경제의 한 부분이다. 사업가들은 파산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뛰게 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서는 파산이라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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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이야기 (16) 외환위기는 왜 발생하나?

통화가치 과대평가와 급격한 국제자본 유출입 때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부실기업 솎아내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는 장치
금융위기는 보통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이 자산의 가격이 치솟았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발생한다. 그런데 1990년 이후 세계 각국의 금융위기가 통화위기(외환위기·currency crisis)의 형태로 발전하는 일이 잦아졌다. 우리나라도 1997년 말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통화위기가 전염효과(contagion effect)를 일으켜 외환보유액이 고갈되고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는 수모를 겪었다.

통화위기는 왜 생기는 걸까? 외환위기는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균형 수준을 훨씬 벗어나 대폭락하는 현상을 뜻한다. 즉 환율이 일정 수준으로 고정돼 있는 고정환율제에서는 고정평가를 균형 수준으로 낮췄는데도 통화가치가 안정되지 않고 추가적인 하향 조정 압력이 거세게 일어나는 사태를 말하며, 환율이 시장에서의 외환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변동환율제에서는 통화가치가 충분히 내려갔는데도 이 통화를 팔자는 분위기가 없어지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통화위기의 역사는 오래됐다. 19세기 통화가치를 금에 연계시킨 국제 금본위제 아래선 금의 과다 유입 또는 과다 유출 현상이 빈번했으며, 2차 세계대전 후 달러의 가치를 금에 고정하고 다른 통화의 가치는 달러에 고정시킨 브레턴우즈 체제 아래서도 달러 파운드 프랑 등 주요국 통화가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곤욕을 치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1990년 이후 신흥시장에 속하는 나라에서 외환위기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데 이들 위기의 양상은 과거와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1997~1998년 동아시아 위기와 1998년의 러시아 루블화 위기, 그 이후의 브라질 터키 아르헨티나의 외환위기는 국제적인 자본 이동에 의해 위기가 촉발됐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를 ‘전통적 통화위기’와 비교해 ‘자본수지형 통화위기’ 혹은 ‘21세기형 통화위기’라고 부른다. 국제적인 자본 이동이 규제되었던 때 발생한 전통적 통화위기는 고정환율제가 문제였다. 위기가 발생한 개발도상국들은 물가상승률이 미국보다 높아 달러화 대비 자국통화 가치가 사실상 하락했는데도 고정환율을 고수해야 했으므로 자국 통화의 가치가 인위적으로 과대평가됐다. 달러 환율이 마르크나 엔, 파운드 등 여타 주요국 통화에 대해서도 실제보다 고평가됐다면 개도국 통화는 달러에 고정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타 통화에 대해서도 과대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개도국의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고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다가 끝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자본수지형 통화위기는 자본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국제자본이 경제 성장 전망이 높은 신흥 개도국에 대거 유입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글로벌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 신흥국 경제는 활성화되며 국내 수요도 확대돼 수입이 빠르게 늘면서 무역·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된다. 경상적자는 그 나라 경제 운용이 외국의 신뢰를 얻는 한 외국자본이 계속 유입돼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어떤 이유로 이 나라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조성되면 외국자본이 급격히 유출되고 사정이 돌변한다. 해당국은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하지만 환율제도의 전환은 더 극심한 통화가치의 불안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면 통화위기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중국처럼 자본자유화를 포기하고 자본 이동을 규제해 통화위기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게 바람직한 해법일까? 중국은 자본 이동을 규제하더라도 막대한 소비시장과 거대한 저임 노동력이라는 매력으로 인해 외국자본의 투자처로 선호되는 극히 예외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경제 개발을 위해 외자 유치를 희망하는 보통의 나라라면 자본자유화를 실시해야 한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체적으로 볼 때 자본자유화의 수혜국”이라며 “자본자유화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되돌리는 건 무리수이며 그보다는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정책이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