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탐구=김경수 에몬스가구 회장
에몬스가구의 역사는 곧 한국 가구의 역사다. 창업한 지 32년 된 국내 장수 가구회사의 하나인 에몬스가구는 매출 1000억원의 회사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초창기 국내 가구산업을 이끌었던 유명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지만 에몬스는 여전히 가구업계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17일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에몬스가구 본사에 들어서니 ‘우수디자인(GD) 국무총리상 수상’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방문객을 먼저 맞는다. 이 상에 대한 임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가구업계 최고의 디자인 실력을 갖고 있다는 공인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수상은 12년 연속 수상이다. 가구업계에서 유례없는 성과다.

본사 2층 집무실에서 만난 김경수 회장(58)은 대뜸 디자인 얘기부터 꺼냈다. “디자인만큼은 에몬스가 글로벌 수준에 올라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의 디자인에 대한 고집은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표정 있는 가구’를 슬로건으로 내건 에몬스가 만드는 가구 디자인의 상당수는 김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단순히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에 머물지 않고 편의성도 함께 갖춘 디자인을 추구한다. 장롱 하단부에 서랍장을 따로 만들어 장롱 문을 열지 않고도 편리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나 강화유리를 장롱 문의 소재로 적용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김 회장은 “제아무리 품질이 좋고 친환경 소재를 썼더라도 디자인이 나쁘면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마련”이라며 “디자인이 가구의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가 디자인을 얼마나 챙기는지는 사무공간 배치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김 회장은 집무실 바로 옆에 디자인팀을 배치했다. 수시로 디자인 작업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디자이너도 25명으로 전체 직원의 10%에 이른다. 대다수가 국내 유명 미술대를 나온 재원이다. 그렇다보니 디자이너들에 대한 대우도 각별하다. 인근 송도에 대형 아파트 두 채를 디자이너들의 숙소로 내줬다. 디자인 분야 투자액만 해마다 매출의 5%를 넘는다.

에몬스의 차별화된 디자인은 국내 중소 가구업체들에 벤치마킹 대상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신제품을 내놓으면 으레 업계 관계자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살펴보기 위해 직영점 등 매장을 두리번거리곤 한다. 그렇다보니 에몬스 디자인을 카피한 제품이 시중에 나돌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낼 때마다 반드시 의장등록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디자인 관련 의장등록 건수는 500여건에 이른다. 가구업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인탐구=김경수 에몬스가구 회장
김 회장의 디자인 감각은 에몬스가구 성공의 열쇠이기도 했다. 1979년 목화가구란 이름의 개인공방을 세운 김 회장의 첫 작품은 ‘아이보리 백색장’이었다. 비싼 자개장을 장만하기 어려웠던 서민들은 당시 이사할 때 들고 다니기 편한 비닐로 된 비키니장을 많이 썼다. 주니어 가구처럼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저렴한 가구가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김 회장은 백색장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더니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물량을 대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당시의 경험으로 김 회장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깊이 각인했다. 그는 지금도 소비자 취향에 맞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품을 팔고 다닌다. 아침 저녁으로 백화점이나 전시장을 둘러보며 판매직원들의 소비자 상담 내용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김 회장의 주요 일과 중 하나다.

에몬스는 가구업계의 친환경 트렌드도 주도하고 있다. 2004년 시작한 그린필링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환경 경영 기법이 출발점이다. 당시 새집증후군 등 환경호르몬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될 때였다. 에몬스는 발빠르게 친환경 자재를 사용해 고객이 믿고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차별화에 나섰다. 김 회장은 당시 친환경이 가구산업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는데 2000년대 초반 들어 값싼 중국 가구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어요.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3년가량 힘든 시기를 거쳤죠. 그때 친환경 제품으로 차별화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에몬스는 이때부터 환경 최고등급인 E1 제품만을 자재로 쓰고 무독성 친환경 수성타입접착제를 사용했다. 모든 장롱 제품에는 참숯볼과 천연 옥, 황토를 쓰고 소파 가죽도 천연가죽만 고집하고 있다. 식탁 대리석도 천연석만을 쓴다.

에몬스는 국내에서 제품을 전량 생산한다. 주요 자재는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조달하지만 품질 관리를 위해 국내 제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김 회장은 “경쟁사들이 중국에 공장을 지어 나갈 때 국내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 가지 않았다”며 “지금은 국내 제조기반을 유지한 게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 회사의 제품 가격은 착하다. 비앙카 장롱 가격은 99만원대에 불과하다. 비브랜드 제품 가격과 차이가 없다. 자재 가공에서 조립, 포장까지 모든 공정이 자동화돼 균일한 품질의 가구를 낮은 원가로 생산할 수 있는 게 비결이다.

에몬스는 해외 시장에도 승부수를 던졌다. 중국 시장이 타깃이다. 2007년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1호점을 시작으로 3개의 대리점을 선양에 개설했고 네이멍구와 광둥성 둥관에도 잇따라 대리점을 냈다. 아직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월 수출액은 1억원 남짓이다. 김 회장은 “장롱 등 가정용 가구는 문화 상품 성격이 있어 수출이 쉽지만은 않다”면서도 “중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향후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에몬스는 내년 중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강화유리를 실크코팅 처리해 장롱 문으로 채택한 신제품 앙뜨와네트 가구세트의 수출 협상도 진행 중이다.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유럽 미국 시장도 넘보고 있다. 김 회장은 “2020년에는 연간 1억달러 수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997억원의 매출을 올린 에몬스는 올해 1100억원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 2020년에는 5000억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비전도 내놨다.

그렇다고 에몬스가 외형 성장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니다. 나눔경영에도 적극적이다.에몬스는 창업 30주년이던 2009년 창립기념식 때 그 흔한 화환 하나 받지 않았다. 한번 쓰고 버려질 화환 대신 복지재단에 기부할 성금을 모으자는 김 회장의 뜻에 따라 행사장 입구에서 성금을 모금했고 3000여만원의 성금을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에몬스는 장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 해마다 12명 안팎의 장학생을 선발해 각각 5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인천골프협회와 함께 골프 꿈나무장학금도 전달하고 있다. 노인복지시설 장애인시설 등에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2008년 풍작으로 과일값이 폭락했을 당시 전남 나주와 경북 안동 등 과일 산지에서 사과와 배 500상자를 구매해 대리점과 협력업체 사회복지단체 등에 전달하기도 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과일 농가를 돕자는 취지에서였다. 메세나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예술문화단체인 베세토 오페라단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