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窓
커피와 미녀의 나라로 알려진 콜롬비아는 오랜 기간 마약과 테러로 점철된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장 뼈아픈 경험은 ‘비올렌시아(La Violencia)’로 불리는 1948년부터 약 10년에 걸친 폭력 시대다. 이 기간 좌우익으로 나뉜 이념 갈등으로 콜롬비아 국민은 약 30만명이 사망하는 준 내전 상황을 경험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좌익 무장혁명군(FARC)의 반(反)정부 투쟁,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 등으로 수만명이 살해당하고 100만명 이상의 국민이 외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세력은 약해졌지만 이들은 여전히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수도 보고타는 만일의 테러 공격에 대비한 다양한 보안검색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첨단 보안기술을 적용한 제품부터 기발한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안전을 지켜줄 모든 아이디어가 망라돼 있다. 출근시간 공공건물은 물론이고 일반 사무동 건물의 주차장 입구는 폭발물 탐지견과 검색요원이 진을 치고 진입 차량의 내·외부를 하나씩 검색한다.

방문객들은 건물 입구에서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뒤 사진 촬영과 지문 채취 등을 거쳐 내부 인사와의 약속까지 확인이 돼야 출입할 수 있다. 건물 내에서는 엘리베이터, 복도, 사무실 입구 등이 CCTV를 통해 감시받는다.

콜롬비아에는 이 밖에 외국인에게 특이하게 비쳐지는 다양한 보안 시스템이 있는데, 그중 두 가지가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해가 진 이후 특이하게 생긴 번호판 조끼를 착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조끼 뒤쪽에 차량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으며, 헬멧에도 차량번호가 적혀 있다. 차량번호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해 오토바이가 범죄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콜롬비아에는 연간 1만5000건 이상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이 ‘시카리오(Sicario)’라는 청부업자에 의한 사건이다. 청부살인의 특징이 도주에 용이한 오토바이를 이용한다는 것과 법적으로 처벌이 어려운 미성년자를 고용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오토바이 탑승자를 제약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고타 시내의 콜택시 서비스다. 보고타 시민들은 일반택시보다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보안 기능을 갖춘 콜택시를 선호한다. 휴대전화로 콜택시를 호출하면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잠시 후 차량번호 ×××-××× 차량이 도착합니다. 비밀번호는 ××입니다.” 차량이 도착하면 승객은 차량번호로 차량을 확인하고 택시기사는 비밀번호로 승객을 확인한다. 기사와 승객이 서로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파세오 미조나리오(Paseo Millonario·백만장자의 드라이브)’라고 불리는 택시강도 사건이 보고타 시내에서 하루 평균 2건씩 발생한다. 파세오 미조나리오는 택시기사가 강도로 돌변, 현금과 금품을 빼앗고 현금카드 잔액이 바닥날 때까지 시내를 돌아다니며 현금을 인출한 뒤 풀어주는 납치강도 범죄다.

콜롬비아 정부가 발표하는 납치, 살인, 테러 등 치안지표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우(右)하향 그래프를 그려왔다. 지금은 오히려 다른 중남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끔찍한 경험과 아직도 남아 있는 치안 불안으로 콜롬비아 국민들은 안전에 대한 경계심리를 늦추지 않고 있다.콜롬비아의 치안 불안은 거주자나 출장 기업인에게는 커다란 위험 요소지만, 다른 한편으로 첨단기술을 이용한 보안산업 분야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콜롬비아에서는 한국보다 먼저 지문인식 출입통제 시스템이 보편화했으며, 치안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보안 시스템과 기술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김기중 < KOTRA 보고타 무역관 부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