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트_경영학카페
벙어리 한 사람이 못을 사고 싶었지만 말을 못해 고민이었다. 만물상에 이르러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손가락을 진열대 위에 세우고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어 망치로 치는 듯한 시늉을 한 것이다. 점원은 금방 알아차리고 망치 하나와 못을 내왔다. 벙어리가 나가고 장님 한 명이 상점에 들어왔다. 그는 가위를 사고 싶어했다. 장님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 두 손가락을 벌리고 자르는 시늉을 했을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천재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거만한 아시모프를 놀리기 위해 자동차 수리점을 하는 그의 친구가 낸 문제다. 장님은 가위를 사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손으로 의사소통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이큐가 160으로 알려진 아시모프조차 그런 바보스러운 대답을 한 이유는 ‘클라이맥스 효과’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판단할 때는 시간 순서상 가장 마지막에 각인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행동경제학에서는 ‘클라이맥스 효과’라고 한다. 첫 번째 문제에서 벙어리가 등장해 수화를 보여준 장면이 너무 강하게 뇌리에 남은 나머지 아시모프는 장님도 수화를 할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2011년 11월 중국 저장성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노인이 사고를 당해 쓰러져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노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때 현장을 지나가던 한 목격자가 노인 옆을 지나가던 빨간 자동차가 노인을 치었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경찰이 용의자를 잡아 상황을 조사했는데, 용의자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오히려 자신은 쓰러진 노인을 발견해서 차를 세우고 노인을 도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과연 목격자와 용의자, 누구의 말이 맞을까? 마침 사거리에 설치된 교통 감시용 카메라에 사고 상황이 녹화됐다. 테이프를 확인한 결과 노인을 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함께 지나가던 오토바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용의자는 본인 말대로 쓰러진 노인을 도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목격자는 현장에서 상황을 보았다면서 왜 그렇게 기억했을까. 여기에도 클라이맥스 효과가 작용했다. 아마도 목격자는 현장 옆을 지나가고 있었기에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기억을 더듬다보니 현장에서 가장 극적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빨간 차였던 것이다. 게다가 구급차가 도착하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빨간 차를 보니, 분명 뺑소니라고 확신한 것이다.

클라이맥스 효과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올해 최고의 히트상품 중 하나인 ‘나는 가수다’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공연 순서를 정할 때 서로를 견제한다. 제비뽑기로 결정된 순서가 가장 마지막일 때 마치 1등을 한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클라이맥스 효과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클라이맥스 효과를 경영에 활용한다. 장기간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팀원들을 지치게 한다. 다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기억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때 즐거운 ‘쫑파티’를 열어 프로젝트에서 보람있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면 팀원들이 어려움을 잊고 다음 프로젝트에 도전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성과평가 면담에서도 클라이맥스 효과는 유용하다. 면담의 마지막 부분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에 따라 평가를 받는 직원의 마음은 전혀 달라진다. 먼저 칭찬을 하고 나중에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면 평가를 받는 직원은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칭찬받은 부분은 잊고, 자신의 잘못만 지적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먼저 좋지 못한 실적이나 부족한 대목을 지적하고 나서 부하직원이 잘한 점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언급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부하직원은 자신이 면담에서 칭찬을 받았다고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을 대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상대방이 클라이맥스 효과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은 쉬워질 수 있다. 상대방에게 항상 ‘개운한 뒷맛’을 주도록 노력하자.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

이계평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