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변동성 줄이려면 반드시 필요”

“자본통제국 낙인 찍히고 금융거래 위축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지 몇해 되지 않아 유럽발 재정위기로 또 다시 글로벌 시장이 크게 출렁거리자 토빈세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국내외에서 모두 활발히 일고 있다.

토빈세란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금융거래세로, 이를 처음 주장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대학교의 제임스 토빈(James Tobin) 교수의 이름을 땄다.

소위 핫머니로 불리는 국제 투기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각국 통화가 급등락해 통화위기가 촉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다.

2009년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의 도입을 거론하면서 이슈화됐고 브라질이 토빈세와 유사한 단기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특히 토빈세 도입이 이슈화되고 있는 것은 우리 금융시장이 유독 변동성이 높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이번 유럽발 재정위기 와중에도 국내 증시가 정작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이나 미국의 주식시장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환율은 폭등하는 현상이 재연됐다.

토빈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이다. 토빈세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토빈세 도입에 찬성하는 쪽은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여서 작은 외부 충격에도 큰 충격을 받고 그 결과 금융과 외환뿐만 아니라 실물경제까지도 타격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1997년 외환위기도 갑자기 달러화가 급속하게 빠져나가면서 우리나라가 사실상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더욱이 당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IMF의 처방에 따랐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을 더 취약하게 만든 측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도 한다.

우리 금융시장을 지나치게 대외에 개방하는 꼴이 되어 최근까지도 외부 투기세력에 의해 시장이 크게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가 함께 실시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지만 토빈세 도입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대기업 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경제계에서도 토빈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미국 신용등급 하락 이후의 국내외 경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조건부 금융거래세(토빈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외국인 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채권시장에 조건부 토빈세를 우선 도입하고 필요할 때는 주식시장에 확대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성근 연세대 교수도 “우리증시는 개방도가 높은 만큼 핫머니의 유출입에 따른 부작용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게 나타난다”며 토빈세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대

토빈세 반대론을 펴는 쪽에서는 만약 이를 도입할 경우 국제적으로 자본통제국으로 인식되고 국제 자본은 토빈세가 없는 국가로 빠져나가게 된다는 주장을 편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화 유출입 문제는 거시건전성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지 규제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며 “개방체제를 거스를 수 없는 한 토빈세 논쟁은 철 지난 얘기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지낸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즉각적인 토빈세 도입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형적인 규제론자로 분류되는 그는 토빈세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이를 도입하는 것도 적절한 시기를 보아가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외환시장이 비교적 안정돼 있는 상황에서는 모르지만 최근처럼 비교적 크게 출렁거리는 때에는 토빈세의 즉각적인 도입보다는 은행 부분의 건전성을 관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거래 위축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보다는 주로 유럽 쪽에서 이런 주장이 많다. 영국을 대표하는 경제신문인 FT(파이낸셜타임스)는 토빈세 도입이 금융산업과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

이 신문은 또 각국 정부마다 토빈세를 둘러싼 입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세금 징수가 쉽지 않다는 점도 내세운다.

생각하기

토빈세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이 세금의 징수가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다투는 것은 아니다. 토빈세에 대한 찬반은 각국이 처한 현실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유럽처럼 금융산업이 발달하고 다양한 지역으로 해외 투자를 많이하는 지역에서는 토빈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나라를 위시한 아시아나 남미 등 신흥국들은 아직 금융시장이 구미 선진국 만큼 발달하지 못한데다 국내 금융시장이 대외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해 토빈세 도입에 좀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토빈세 찬반은 철저하게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에 입각해서 따져봐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의 주식소유 제한이 없어지면서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대까지 높아졌다.

아시아 최고 수준인 것은 물론 미국(13.6%) 일본(26.7%)에 비해서도 높다.

거기에 국내 증시의 유동성은 세계 그 어느 시장보다 높다. 필요하면 주식 등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환금성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이렇다보니 외국투자자들은 조금만 글로벌 경제가 불안해지면 우리나라에서 급격하게 자금을 빼내가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 ‘아시아의 현금인출기’(ATM)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대외에서 오는 충격이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도 토빈세의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를 도입하는데는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경제의 특성상 기업과 은행 등 금융회사는 불가피하게 많은 외환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토빈세는 이런 외환거래에 직·간접적인 제한을 가하고 결과적으로 높은 환 헤지비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상대국이 상호주의를 들고 나올 경우 과세를 둘러싼 마찰은 물론 외환거래와 상품교역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치밀한 준비를 통해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서울경제신문 10월 9일자 보도기사>

다음달 주요20개국(G20) 칸 정상회의를 앞두고 금융거래세(토빈세) 도입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국내 금융계에서는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강 회장은 9일 “해외에서도 한국 증시는 아시아의 자동입출금기(ATM)나 다름 없는데 왜 방치하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면서 “외국인들은 한국이 좋은 투자처이면서 빠져나갈 때 아무런 걸림돌이 없어 금방 이익을 챙겨 나간다”고 말했다.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강 회장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장기적인 과제이기는 하지만 토빈세 도입이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정부는 자체적으로 토빈세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글로벌 경제주체들과 공조가 이뤄진다면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말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토빈세 도입은 현 단계에서는 신중해야 한다”면서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토빈세는 한 나라에만 도입하면 효과가 없고 오히려 자본유출이 심화되는 부작용이 있는 만큼 글로벌 공감대가 형성되면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토빈세는 시기적으로 볼 때 재원이 많이 들어올 때 논의되는 게 중요하다”며 “요즘처럼 자본유입을 촉진해야 할 때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