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치솟는 원화 환율 … 外風에 시달리는 한국경제
외환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초만 해도 1050원을 밑돌던 환율이 지난달 22일 장중 1196원까지 뛰었다.

두 달도 안 돼 14%나 급등했다.이후 정부의 대규모 시장 개입으로 주춤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안심하기는 이르다.시장에선 “2008년 금융위기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시 환율은 하루 20~30원씩 뛰며 1600원 근처까지 올랐다.

환율 상승은 원화가치 하락을 뜻한다. 예컨대 달러당 1000원 하던 환율이 1100원으로 오르면 원화가치는 10% 떨어진 것이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만 놓고 보면 환율이 가파르게 오를 이유가 별로 없다.

최근 위기에 빠진 미국,유럽보다 한국은 경제가 탄탄한 데다 외환보유액도 지난달 말 3212억달러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2397억달러)보다 훨씬 많다.

문제는 대외 불안이다.유럽 국가들의 과도한 부채 문제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로 옮겨붙었다.

그리스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탈리아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미국도 지난 8월5일 7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신용등급이 최상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떨어졌다.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빅3’ 은행의 신용등급도 잇따라 추락했다.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유럽 경기는 단기간 내 회복되기 어렵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도 앞으로 피해가 불가피하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54%나 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이 공격적으로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

한 외환딜러는 “최근 싱가포르 홍콩 등 외국계 은행의 해외 은행 현지법인에서 5억달러 안팎의 역외 달러 매수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가 많다”며 “하루 100억달러 안팎인 서울 외환시장 거래량 중 많을 때는 그 비중이 20~30%에 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그동안 환율이 하락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최근 대외 불확실성 때문에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외환딜러들의 설명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자금의 이탈 가능성도 환율 급등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외국인은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주식시장에서만 7조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채권시장에선 아직까지 본격적인 자금 이탈이 없지만 유럽계 자금은 꾸준히 빠져나가고 있다.

외국인이 주식이나 채권 매각 대금을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바꿔 나가면 환율이 뛰게 된다.

한 외환딜러는 “소규모 개방 경제라는 한국의 특성상 원·달러 환율은 펀더멘털보다 외국인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자가 향후 환율 전망을 물으면 상당수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환율 전망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은 중장기 환율 전망이 무의미하다”(이진우 NH선물 금융공학실장)는 답변이 많다.

전문가들은 향후 환율은 결국 유럽 위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보고 있다.

시나리오는 크게 봐서 두 가지다.첫째,유럽 위기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낙관적 시나리오다.

이 경우 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해 지금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선 1100원 선 또는 1070~1090원 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둘째는 유럽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비관적 시나리오다.

[Focus] 치솟는 원화 환율 … 外風에 시달리는 한국경제
‘제2의 금융위기’가 현실화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환율은 1200원을 넘는 게 시간문제라는 게 외환딜러들의 전망이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도 변수다.

원·달러 환율이 결정되는 서울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은 보통 100억달러 안팎이다.

3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들고 있는 정부는 ‘큰손 중의 큰손’이다.

정부가 마음먹고 시장에 개입하면 환율을 단기적으로나마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다만 무턱대고 시장에 개입할 수는 없다.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데다 환율 방어를 위해 너무 많은 달러를 팔게 되면 나중에 필요할 때 ‘달러 부족’으로 낭패를 볼 수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 당장 물가가 걱정이다.

수입 물가가 오르고 이것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경제분석 모델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연간 0.8%포인트 상승한다.

소비자물가는 이미 올 들어 8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 올랐다.

정부와 한은이 함께 정한 물가 억제 목표 상한선(4% 이내)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하반기 평균 환율이 1070원 정도일 것으로 보고 올해 물가 상승률을 4.3% 정도로 예상했는데 최근 환율 상승으로 올해 물가 전망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수입업체도 울상이다.

단기적으로는 수입물가 상승분을 곧바로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 이익이 줄어든다는 점에서다.

반면 수출업체는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달러로 수출하는 금액이 같더라도 원화로 환산하면 더 많은 금액을 수출하는 셈이어서 이익이 늘어나게 된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

정부는 왜 외환 시장에 개입할까?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하지만 급격한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환율에 대한 정부의 기본 시각이다. 환율이 급등락할 때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명분이기도 하다.

개입은 보통 미세조정이라 불리는 ‘저강도 개입’ 위주지만 환율이 한쪽 방향으로 심하게 쏠릴 때는 하루 수십억달러를 퍼붓는 ‘고강도 개입’도 단행된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9월23일이다.

유럽 위기 확산으로 원·달러 환율이 열흘도 안 돼 1077원에서 1196원까지 뛰자 정부는 35억달러를 시장에 풀어 환율을 1166원까지 끌어내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에도 환율이 단기간에 900원대에서 1030원대까지 치솟자 정부는 점심 시간에만 40억달러가량을 처분, 장중 한때 환율을 996원까지 떨어뜨렸다.

점심 시간에 대규모 개입 물량이 나왔다는 점에서 당시 ‘도시락 폭탄’이란 말이 회자됐다.

2003~2004년에는 환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시장개입이 이뤄졌다.

개입 방법도 서울 외환시장이 아닌 뉴욕에 개설된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을 통해서였다.

NDF는 일종의 선물 환율로 투기성 자금이 자주 기웃거리는 곳이다.

해외에선 1992년 9월 영국의 ‘파운드화 방어전’이 유명하다.

당시 유명 헤지펀드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가 파운드화 약세를 노리고 파운드화를 대규모로 팔아치우면서 영국 정부와 한바탕 ‘환율 전쟁’을 치렀다.

시장 개입의 효과는 대개 일시적이다.

단기간에는 정부의 목적이 달성되지만 길게 보면 환율은 결국 원래 방향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서 정부의 환율 방어전은 대부분 실패했고,소로스와 일전을 벌인 영국 정부도 얼마 뒤 백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