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제시문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에 대한 의문

[생글 논술 첨삭노트] (67)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한 독해력을 키워야”
논술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물론 초창기 논술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태였기 때문에 굳이 지금의 논술과 비교하기 어렵겠지만,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2000년대 초 · 중반의 문제들을 보고 있노라면,확실히 문제 유형 자체가 단조롭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유형뿐만 아니라 주제들도 지금 보기엔 '전혀 신선하지 않은' 그렇고 그런 주제들이 많지요.

대학의 출제본부 측에서도 계속 고민을 할 겁니다. 변별력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운 시험도구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하고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제시문이 다소 전문적으로 변하고,유형 또한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기존에 알던 특정한 배경지식만으로 풀 수 있던 초창기 논술과는 다른 형태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제대로 '읽어야' 하지요.

하지만 읽는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생소한 어휘나 개념,단어들은 여전히 발목을 잡습니다.

예전에도 자주 말씀드렸지만 어차피 출제자는 고등학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를 '쉽게 풀어보라며' 문제를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독해력을 키운다고 하더라도,기술적인 측면과 함께 배경지식에 대한 측면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독해만으로 답을 맞추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면,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배경지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특히 경제 주제 문제들이 그렇습니다.

다음 문제는 최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화두가 되고 있는 공리주의에 관한 것입니다.

(고급교재 6번 문제입니다. )



⊙ 2010학년도 경기대학교 수시기출문제 (편집)

<문제> 제시문 (가)의 상황에서 (나)의 입장을 가진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다)를 토대로 논술하시오. (500자 내외)



시민 사회에서 개인은 경제 활동의 주체이자 단위이며 자유 경쟁을 하는 경제인이다.

따라서, 시민 사회가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는 경제 체제는 경제 활동이 자유로운 시장 경제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 자유의 원칙,자기 책임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자본주의는 소유권의 절대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소유물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장소를 제공한다.

이러한 자유 시장 경제를 통하여 형성된 개인의 이기심은 창의성과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으며,시장은 누가,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자율 체계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본을 소수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였다.

자본의 집중은 투자 효율성을 높였지만,결과적으로는 부의 편재를 초래하여 사회 전체의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켰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가 점차 발전해 가던 영국에서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일이 문제가 되었는데,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그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벤담(Bentham · 1748~1832)은 행복이란 다름 아닌 쾌락이고,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개개인의 행복은 사회 전체의 행복과 연결되며,더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른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과 입법의 원리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모든 쾌락이 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한 벤담은 쾌락과 고통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계산법까지 제시하였다.



효용이란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소비하면서 얻는 만족도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다.

<중략>

한계효용이란 사람들이 마지막 추가분 재화를 소비할 때 얻는 효용이다.

그리고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란 소비단위가 커지면서 각 단위의 재화로부터 얻는 만족 정도가 점점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총효용체감은 의미를 구별해야 한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서 총효용은 계속 증가한다. 다만 한계효용이 체감함에 따라 총효용 증가율이 점점 낮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임의로 가정한 특수 상황이 아니라,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규칙을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주 굶주린 상황에서 먹은 최초의 빵은 말할 수 없이 큰 희열을 안겨줄 것이다.

그 빵이 이 세상의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 개째 먹을 때,역시 맛있다는 생각은 들겠지만 첫 번째 빵과 비교하면 만족도가 훨씬 적을 것이다.

세 개째를 먹을 때는 아마도 '빵맛이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할 것이다.

세 번째 빵의 효용(만족도)은 두 번째보다 훨씬 못하며,첫 번째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화폐를 하나의 상품으로 본다면,화폐의 한계효용도 분명히 체감한다.

똑같은 100원이라도 거지와 백만장자에게는 그 중요도가 크게 다르다.

부의 재분배를 중요시하는 정부정책은 대부분 부자들에게서 조금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사회복지사업을 통해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을 나누어 준다.

이 사업의 이론 근거가 바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 문제 해설

공리주의(功利主義 · utilitarianism).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이익을 위해 쓸모가 있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하는 사고방식'이 됩니다.

영어로 해석했을 경우,utility라는 말 자체가 이미 쓸모,효용이라는 뜻이지요.

이것은 공공의 이익(公利)과는 다르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다들 모르더라구요!)

이미 '양적 공리주의자'로 윤리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는 벤담은,그래서 밀에 비해 한단계 아랫수준으로 오해받고 있는 경제학자지만,사실 '효용'이란 개념을 이용하여 부의 재분배를 주장했던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학자이기도 합니다.

즉, 제시문 (나)와 (다)는 모두 벤담의 아이디어입니다. 초기에는 양적 쾌락의 증가 연구에 집중했지만,나중에는 자기 의견에 효용이론을 더하면서 일정한 부라면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효용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공리주의에 한해서는 벤담이 밀(J.S.Mill)보다 해놓은 일이 더 많은 셈이지요).

부의 재분배 이론에 있어서, 롤즈 못지 않게 자주 등장하는 이론인 만큼 확실히 익혀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제시문을 보겠습니다. 제시문 (가)는 우선 특정한 문제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not A but B구조의 제시문으로서,장점을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단점에 방점을 찍고 있군요.

익히 피부로 느끼고 있는 문제상황인지라,오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그렇다면 정부는 이때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보지요.

[생글 논술 첨삭노트] (67)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한 독해력을 키워야”
(나)의 정부는 공리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고,제시문은 그 속성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속성은 잠시 후 (다)의 내용에 의해 분배정책을 지원(정부의 대응)하게 되므로 유의해서 기억해야 합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로그함수 그래프(왼쪽)와 유사합니다.

결국,총효용 증가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함수의 기울기가 작아진다는 뜻이지요.

예에도 보이지만,부자들과 빈자의 금액에 대한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100만원은 클지 모르지만,어느 정도 재산이 있다면 100만원은 '그냥 그렇게 참고 넘길 수 있는 금액'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다)는 그러므로, 부자에게 좀 더 많은 세금을 매겨도 그 고통(?)이 빈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문제를 다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빈부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공리주의 정부라면,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아,그리고 물론 이런 문제를 풀더라도 우리의 의심과 문제제기는 사라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이론의 문제는 없는가?

부자는 돈이 많으니 가난한 이에게 돈을 그냥 줘도 상관이 없나? 우리도 사실 그런 말을 자주 하지요.

"돈 많은 네가 밥을 사라" 하지만,돈이 많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마땅히 돈을 주머니 밖으로 꺼내놓아야 한다는 주장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지요.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 첨삭 안내에 관하여

위 문제를 7월31일 밤 12시까지 써서 sgsgnote@gmail.com으로 보내주시면,선택된 분들에게 첨삭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내주실 때는 이름과 주소,전화번호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모를 소정의 상품(?)이 있습니다).

물론 그 답안의 내용 중 괜찮은 것이 있다면,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보내주신 분들께는 해설과 예시답안을 pdf 파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연재분을 따로 제본해서 받고 싶으신 분들은 위의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용준 S · 논술 선임 연구원 sgsgnot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