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즐기려던 농장주가 들여와

10년 후 통제 불능… 모든 대책 실패

[경제사 뒤집어 읽기] 영국산 토끼 12마리, 호주를 점령하다
북아메리카의 오지브와족 신화에는 나나보조(혹은 마나보조)라는 거대한 토끼 모양의 신이 등장한다.

위닌와라는 인간 어머니와 에방기시목이라는 아버지의 영혼 사이에 태어난 네 아들 중 한 명인 나나보조는 이 땅에 보내져서 인간을 교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모든 동식물의 이름을 지어줬고,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줬다.

최근에는 이 신화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돼 나나보조가 폴 버니언(Paul Bunyan)이라는 거인 벌목꾼과 40일 동안 싸워 그를 죽이고 숲을 지켜낸 것으로 그려졌다.

세계를 창조하는 데 공헌하고 자연을 지켜내는 토끼 신이 이채롭다.

토끼는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이처럼 생명과 풍요의 상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토끼는 한 배에 4~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이 새끼들은 금방 자라 6~7개월 후면 임신할 수 있다.

토끼가 구애 작업에 돌입해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30~40초면 충분하다.

임신 기간 30일이 지나면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

이처럼 번식 속도가 빨라 이론상 한 쌍의 토끼가 1년에 최대 800마리의 집단으로 자랄 수 있다.

그러므로 고기나 가죽을 얻는 용도로 토끼는 아주 좋은 가축이다.

그렇지만 역사상 토끼의 번식력이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일찍이 1420년에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의 마데이라제도(諸島)에 유럽인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온 토끼가 환경 재앙을 초래한 적이 있다.

마데이라(Madeira)라는 이름이 포르투갈어로 '나무'라는 말인 것처럼 이 섬은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름답던 섬은 인간과 토끼 때문에 황폐화됐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원재료와 땔감으로 사용했고,토끼는 그곳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식생을 파괴했다.

'나무로 된 보석'이라 칭송받던 마데이라의 일부 섬은 사람이 살기 힘든 흉물스러운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몇 백 년 후 호주에서 더 큰 규모로 토끼의 재앙이 반복됐다.

19세기에 들어온 유럽산 토끼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자연과 인간 모두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토끼가 처음 들어온 곳은 호주 남동쪽의 태즈메이니아섬이다.

여러 기록을 볼 때 19세기 초 이 섬에 유럽산 토끼가 들어와 큰 수로 불어난 것은 분명하다.

주민들이 기르던 토끼들이 사육장에서 벗어나 야생으로 돌아가 번식하기 시작했다.

수천마리씩 떼지어 다니는 토끼들이 풀을 먹어치웠고 나무껍질을 갉아먹는 통에 많은 나무가 죽었다.

그렇지만 나중에 호주 본토에서 일어난 사태와 비교하면 피해가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이 섬의 생태계가 파괴되거나 논밭이 망가질 정도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토끼를 잡아먹는 포식동물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토에서는 문제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토끼가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859년에 토머스 오스틴이라는 농장주가 12마리의 회색 토끼를 들여온 것이 그 시초다.

이 사람은 영국에서 이주해왔는데,떠나온 고향에서 주말마다 즐겼던 토끼 사냥을 이곳에서도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국에 있는 조카에게 토끼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조카는 원하는 만큼 토끼를 구하지 못하자 집토끼를 몇 마리 함께 보냈다.

아마도 이처럼 다른 종 사이에서 생겨난 잡종이기 때문에 더 강한 적응력을 지녔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론한다.

역사는 때로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원인에 의해 크게 굴절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의 농장이 있는 빅토리아주는 겨울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기 때문에 토끼들은 1년 내내 번식할 수 있었다.

10년 후부터는 매년 200만마리씩 사냥을 해도 토끼 수가 계속 불어났다.

20세기에 들어서는 급기야 5억~6억마리에 달했다.

양 목장이 큰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생태 환경 전체가 파괴될 위험까지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토끼 수를 통제해야 했다.

토끼 굴을 갈아엎기도 하고 불도저나 트랙터를 동원해 깔아뭉개기도 했다.

폭약으로 날려버리기,연기 집어넣기,덫이나 독약 풀어놓기,여우나 흰담비 같은 천적 풀어놓기 등 가능한 모든 일을 했지만 토끼의 가공할 번식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1907년에는 토끼가 호주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1600㎞에 이르는 펜스를 설치했지만,이는 토끼의 점프 능력과 땅파기 능력을 모르고 한 일이었다.

토끼들은 물과 풀을 찾아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갔다.

1950년에는 토끼에게 치명적인 다발성 점액종(粘液腫) 병균을 퍼뜨리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브라질 토끼가 보유한 이 병균은 유럽산 이종(異種) 토끼에게는 치사율이 99.8%나 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이때 80%의 토끼가 죽어서 개체 수는 1억마리로 감소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천성적으로 이 병에 내성을 가진 토끼 수가 불어나 점차 치사율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91년에는 다시 2억마리 이상으로 불어났다. 오늘날에도 호주에선 토끼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통제되지 않는 힘은 자칫 큰 병폐를 가져올 수 있다.